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rah Kim Dec 03. 2023

고흐의 푸른 밤

아를, 밤의 카페테라스 앞에서

검푸른 밤하늘,

카페테라스에서는 커다란 가스등이 켜져 있었다. 그 위쪽으로는 별이 반짝거리는 푸른 하늘이 보였다. 바로 이곳에서 밤을 그릴 때마다 나는 놀라곤 한다. 나는 이 그림을 그릴 때 검정을 전혀 쓰지 않았고, 아름다운 파랑과 보라, 초록만을 써서 밤하늘을 그렸다. 그리고 그 아래 밤을 배경으로 빛나는 광장은 아주 밝은 노랑으로 그려보았지. 특히 이 밤하늘에 별을 찍어 놓는 순간은 정말 행복했다. <반 고흐, 여동생에게 쓴 편지 중에서>

The Cafe Terrace on the Place du Forum, Arles
크뢸러 뮐러 미술관, 밤의 카페테라스 앞에서


특히 이 밤하늘에
별을 찍어 놓는 순간은 정말 행복했다.

편지 속 고흐의 문장이 참 아름답다. 수많은 복제품으로 흔하디 흔해빠진 그림이지만 직접 그 생생한 감동을 마주하고 싶었다. 막상 그림 앞에 서니 이제야 오롯이 이해가 된다. 고흐의 말마따나 밤하늘에 노란 물감을 꾹 짜서 별을 찍어 놓는 그 순간만큼은 정말 행복했을 거 같다. 편지의 활자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 그림의 색감과 붓터치들이 내 맘속에 반짝이는 별처럼 '콕' 박힌다.

밤의 카페테라스의 반짝이는 별들

아, Holland 홀랜드! 빈센트 반 고흐의 나라. 이 멋진 컬렉션을 보러, 트램을 타고, 기차를 타고, 두 번의 버스를 타고 마지막엔 자전거까지 탔다. 휴-;; 머나먼 여정이지만 내 맘속에 영원히 젊은 화가, 고흐에게로 떠나는 특별한 여행이니까! 기꺼이 한 걸음에 달려온 보람이 있다. 화가를 사랑한 한 개인이 평생 동안 사모은 소장품들이 이토록 훌륭할 수 있을까! 많은 미술관에 가보았지만 이곳은 Must go 미술관 중에 하나이다. 크뢸러 뮐러 미술관 가는 길! 내 마음은 하늘 위로 통통 튀어 오르는 오색찬란한 열기구들처럼 아스라이 떠올랐다.


화가는 자신의 그림 뒤에 숨어 있어도 사람들이 그를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고 그랬는데, 고흐의 그림은 항상 그 자신만의이야기가 오롯하게 담겨있다. 그의 그림이 아주 특별한 이유다. 늘 그랬던 것처럼 미술호구인 나는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가 보였다. 오늘도 어김없이 미술관 내 기념 샵에서 그림 몇 장을 샀다. 그림이 구겨지지 않도록 소중하게 돌돌 말아 상자에 담았다.

The Cafe Terrace on the Place du Forum, Arles
크뢸러 뮐러 미술관가는 길
나는 예술로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싶다.
그들이 이렇게 말하길 바란다.

그는 마음이 깊은 사람이구나.
마음이 따듯한 사람이구나. 빈센트 반 고흐


마음이 깊은 사람이길, 마음이 따듯한 사람이길 그토록 바랬던 이 화가가 오랫동안 난 참 좋았다. 온통 짙은 노랑과 파랑, 아름다운 색의 향연으로 가득할 것 같던 아를에 가고 싶었던건 어쩌면 당연했다. 밤의 카페테라스의 배경이 되었던 그 아를에 말이다.


푸르른 어느 5월 나는 파리에서 아를로 향했다. TGV를 타고 한참을 달리고 또 달려, 아비뇽에서 내렸다. 아비뇽 한적한 기차역에서 아를로 향하는 또 다른 기차를 기다렸다. 인생은 참 기다림의 연속이다. 기차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리는 동안 난 고흐를 생각했는데 예쁜 집시 소녀들의 표적이 되어 소매치기를 당했다. 여권까지 털린 간담이 서늘한 경험을 하고나서야 마침내 도착한 아를. 아!

아를, 밤의 카페테라스의 배경이었던 그 카페 앞에서

아를의 노란 카페는 그림과는 달리 특별함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촌스럽고 투박한 여느 소도시의 카페와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어쩌면 나는 분명 이럴 느낌이라고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던 거 같다. 그렇지만 100여 년 전 별이 빛나는 어느 밤. 소박하고 평범하기 그지없는 이 카페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카페로 만들어버린 한 화가의 재능이, 밤하늘의 별을 찍는데 가슴떨려 했던 한 남자의 시선이 참 아름답고 위대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정말로 감동했던 포인트는 바로 이 지점이었다. 어딘가에서 이젤 화구가방을 메고 있는 빈센트가 툭! 하고 나타날 것만 같았다. 빈센트의 자취를  곳곳에 느낄 수 있던 그날은 남프랑스의 미스트랄이 강하게 불던 아주 이색적인 하루였다.

아를의 노란 카페에서 보낸 오후
Cafe, Van Gogh


매거진의 이전글 행복의 파랑새는 결국 내 집 문 앞에 걸려 있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