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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에게로 가는 길

그의 마지막 여정,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by Sarah Kim Feb 03. 2017
오베르는 매우 아름다운 마을이다. 전형적이고 그림과 같은 시골의 풍경이 사방에 펼쳐져 있다. 동생 테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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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자욱한 겨울 밀밭, 까악 까악 까마귀떼가 날아 오른다. 파리에서 충분히 떨어져 있어 진짜 시골 느낌이 나고, 고흐가 편지에 썼던 말처럼 이 곳은 공기 전체에 편안함이 흐르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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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 나는 밀밭>, 고흐가 오베르에서 그린 그림 중 가장 어둡고 침울한 색조로 그려진 그림이다. 고흐의 죽음에는 논란이 있지만 권총 자살로 알려진 바로 그 장소. 그림 푯말이 있던 자리에 섰다. 마침 이제 막 2살 된 오베르 동네 강아지 Maya 마야가 우릴 보고 한걸음에 달려와 반갑게 인사한다. Bonjour 봉쥬르! 


날선 바람이 부는 1월의 혹한에도 누군가의 친절한 말 한마디는 봄볕처럼 따사롭다. 영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에게도 그런 사람들이 곁에 좀 더 많았더라면 그 고달프고 녹록치 않은 인생에 따듯한 힘이 되지 않았을까? 그래도 인생의 반려자였던 동생 테오가 있어서 다행이고, 그의 말년에는 이곳 오베르의 가셰박사가 벗이 되어주어 다행이다. 고흐가 생애 마지막 70여 일을 머문 장소. 파리에서 27km 가량 떨어져 기차로 넉넉히 두 시간 가량 가야하는 이곳은 바로 오베르 쉬르 우아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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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두어달 만에 80여점의 명작을 남길만큼 예술혼을 불태웠던 걸 보니 빈센트 반 고흐는 이 작은 시골 마을에서 참 행복했으리라! 골목골목 마다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과 그의 자취가 남아 있어 맘이 레인. 그를 기억하는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다녀간 흔적들마치 오랜 벗과 조한 것처럼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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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하늘이 흐리고 뿌연 안개가 자욱한 그 날,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파리는 2016년의 끝 날이 꼭  마지막 축제같은 분위기였다. 이를 기념하여 파리시내 대부분의 교통수단이 공짜였던 그 날. 우리는 아침을 샌드위치로 대충 떼우고 서둘러 생 라자르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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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7년 모네가 그린 생라자르 기차역(좌)과 2016년 봄 생라자르 역 (우)

고흐의 말마따나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는 것처럼'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가기 위해 우리도 기차를 타기로 했다. 오베르로 향하는 기차를 이용하려면, 파리 북역과 생 라자르 역 노선 두 가지중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파리 북역몇년 전 안좋은 기억때문인지 몰라도 내겐 늘 우범지대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웬만해서는 거쳐 가고 싶지 않은 장소다. 두번 고민하지 않고 생라자즈역을 출발지로 택한건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생 라자르역, 클로드 모네, 오르세 미술관생 라자르역, 클로드 모네, 오르세 미술관

무엇보다도 생 라자르역은 19세기 파리에 기찻길이 생겨나던 그때, 모네를 위시한 인상주의 화가들의 영감의 장소이지 않은가? 도시의 근대화가 활발해 지던 때, 문화의 중심은 예전의 부르주아들이 아니라 거리를 자유롭게 활보하던 보통사람들로 옮겨 갔다. 그 때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듯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해주는 게 있었으니 바로 '기차'였고, 그 기차가 오가던 생 라자르역은 내게도 늘 의미가 있다. 생라자르 역은 근대의 상징 그 자체였고 도시의 활력을 엿볼 수 있는 일상의 활로 같은 존재였으니 당시 모네를 위시한 인상주의 화가들의 매력적인 주제였음은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모네에게 있어서 이 기차역은 인상주의의 태동과 더불어 새로운 세상으로 이어주는 '꿈'의 통로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기차의 화통소리와 함께 피어오르는 연기를 따라 가면  내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그 곳에도 맞닿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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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라자르 역에서 검색해본 오베르 쉬르 우아즈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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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의 화려한 불빛들을 빠져나와 한국사람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작은 시골 마을에 가까스로 도착했다. 기차를 갈아 타고, 버스를 타고 드디어 고흐의 마을이라니! 마을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동네 주민들의 느릿한 발걸음이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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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돌리니 반 고흐 원으로 들어오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그 안에는 이젤과 화구를 멘 고흐의 조각상이 관광객을 맞이한다. 고흐 그림의 배경이 되었던 오베르 시청사 그리고 고흐의 다락방이 있는 나부 여관도 익숙한 그 자리에 풍경처럼 있다. 아, 이 작은 마을의 옥탑방이었을 망정, 가난한 화가에게는 영혼이 쉬어가는 따듯한 보금자리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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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르 시청과 그 흔적이 그대로 보존된 나부 여관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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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ison de Van Gogh 반고흐의 집 문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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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르 쉬르 우아즈 관광소 앞, 화가, 반고흐의 연대별 활동기록과 오베르 쉬르 우아즈 관광 안내푯말  

1890년 고흐가 37세가 되던 해, 정신병으로 심약해진 그는 더 나은 치료를 받기위해 남부의 아를 생활을 정리하고 파리 북서부에 위치한 이곳 오베르에 터전를 잡는다. 동생 테오는 피사로에게 닥터 가셰를 소개받고 주치의로서 형을 돌봐줄 것을 부탁한다. 예술을 사랑하고 아마추어 화가 이기도 한 가셰 박 또 다른 동기간으로서 고흐의 절친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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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집에 가는 길은 멀지 않는 것처럼 가셰박사의 집은 고흐에게는 언제나 오픈된 공간이었다. 모델을 살 돈이 없어 전전긍긍한던 화가 반 고흐에게 있어서 친구나 그 딸의 초상화를 맘껏 그릴 수 있었던 건 망망 대해에서 마주한 반짝이는 빛과 같을 것이 었으리라. 그래서 인지 오르세 미술관에서 만난 <정원안의 가셰 아가씨>와 < 가셰 박사의 초상>의 그림이 더욱 따스하고 진한 색감으로 소곤소곤 말을 건네 오는  같았다면 기분 탓일까! 이 그림들이 탄생했던 그 시간, 그 장소. 아,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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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세 미술관에 갈 때마다 <별이 빛나는 밤에> <고흐의 자화상><아를의 고흐의 방> 다시 보기 위해 고흐 고갱의 방에서 오랫동안 머무른다. 그리고 그의 그림속 풍경이 된 장소, 그 풍경안으로 꼭 시간여행을 해보겠노라고 다짐했던게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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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그림속 바로 그 배경이 되었던 평범한 계단 위를 걸어보기도 하고, 도비니 미술관의 정원을 슬쩍 훔쳐보기도 했다. 그는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을 늘 자기만의 방식대로 표현하길 꿈꿨고, 또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을 견뎌내면서 반드시 그 일을 해냈다. 


숨을 헉헉 고르며 오른 언덕배기 위에 낯익은 교회 하나가  보인다. 와우, 오르세에 있는 오베르 쉬르 우아즈 바로 그 교회다. 베토벤의 로망스 2번이 절로 떠오르는 이 그림. 교회 뜰 앞으로 황망히 뛰어가는 여인의 뒷 모습이 꼭 누굴 닮아 20대때 참 많이도 좋아했던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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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 세포 여기저기 도시에서 박힌 온 갖 잡음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오직 적막만이 흐른다. 그리고 내 눈앞에 거짓말 처럼 펼쳐지는 들판. 단지 들판을 날아 오르는 까마귀 소리만 멀리서 까악까악 들려온다. 진정 영혼의 안식을 느끼는 것 같아 팔 다리에 힘이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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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 끄트머리로 가라는 푯말을 보았다. 마을의 작은 공동묘지에 자리잡은 빈센트 반고흐의 무덤. 가셰박사의 집에서 가져왔다던 덩쿨이 이제는 고흐와 테오의 소박한 보금자리를 가득 메꾸고 있다. 이미 우리 앞에 누군가 다녀간 흔적이 보인다. 봉긋하게 피어난 노오란 튤립 몇송이. 고흐가 좋아하는 노랑색이라 이 꽃을 선택했나보다. 그런데 이역만리 떨어진 이곳에서 우연히 발견한 한글 엽서를 보고선 심장이 쿵!내려 앉았다.


아, 빈센트 반 고흐씨. 당신을 기억하는 어느 누군가가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를 우연히 읽게 되었어요. 당신을 따라가는 여정은 영혼 깊은 곳에서 빛나는 태양과 같아요. 테오에게 보낸 편지와 그 열정 가득히 그린 그림들로 늘 위로를 받았습니다. 천국에서도 여전히 그림의 형식을 빌려 당신의 기억을 남기고 있는 건 아닌지. 당신은 늘 인간의 감정을 진정으로 표현하는 그림을 그렸고 또 그 마음 깊숙한 곳 까지 들어가 영혼까지 담아내길 꿈꿨지요. 그렇게 이 세상에 빚과 의무를 다하고 떠난 찬란한 생이었다고 말해주고 싶네요. 사랑합니다. By Sara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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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를 통해 뭔가 보여줄 수 있기를  . . .

태오에게, 음악에서 발견할 수 있는, 마음을 달래주는 어떤 것을 그리고 싶다. 그리고 영원에 근접하는 남자와 여자를 그리고 싶다. 옛날 화가들은 영원의 상징으로 인물뒤에 후광을 그리고 했는데, 우리는 광휘를 발하는 선명한 색채를 통해 영원을 표현해야 한다. 나는 늘 두가지 생각 중 하나에 사로잡혀 있다. 하나는 물질적인 어려움에 대한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색에 대한 탐구다. 색채를 통해서 무언가 보여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서로 보완해 주는 두 가지 색을 결합하여 연인의 사랑을 보여주는 일, 그 색을 혼합하거나 대조를 이루어서 마음의 신비로운 떨림을 보여주는 일, 얼굴을 어두운 배경에 대비되는 밝은 톤의 광채로 빛나게 해서 어떤 사상을 표현하는 일, 별을 그려서 희망을 표현하는 일, 석양을 통해 어떤 사람의 열정을 표현하는 일, 이런 건 결코 눈속임이라 할 수 없다, 실제로 존재하는 걸 표현하는 것이니까. 그렇지 않니! Vincent Van Gogh

이젤앞에 빈센트 반고흐 자화상이젤앞에 빈센트 반고흐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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