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자 감각 기가 막힌 교성(嬌聲)
아흑… 이런 내용은 올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내가 사는 건물에는 총 열네 가구가 산다. 모든 집들의 면적과 구조가 다 다르다. 파리 11구는 예로부터 가구 공장이 많았었다. 세월이 흐르고 파리에 인구가 늘면서 그 공장들은 지가(價)가 낮은 근교나 지방으로 옮겨지고, 건물은 내부수리를 하여 아파트로 개조되었다.
이곳도 그런 식으로 구조 변경되었다. 처음부터 주거용 건물로 지어진 게 아니라서 그런지, 14개밖에 되지 않는 아파트들이 7평부터 50여 평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계단 역시 굉장히 불규칙하여, 직선으로 뻗은 계단을 오른 후, 왼쪽으로 꺾었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감아 돌고, 복도를 죽 지났다가 한번 더 오른쪽으로 꺾어서 직선 계단을 올라야 하는 등, 지루할 새가 없다.
나는 프랑스식으로 3층(한국식으론 4층)에 산다. 내 아파트의 바로 아래층에는 면적이 작은 스튜디오 2채가 있는데, 집주인들이 세를 주었다. 두 집 다 프랑스인 미혼 여성이 살고 있다. 한 명은 직장인이고 또 한 명은 대학생이다.
수시로 첼로를 연습하는 소리가 들리고, 간혹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크게 트는 것으로 보아, 아마 대학생 세입자는 음대생일 가능성이 높다.
그녀들의 개인 신상에 대해서 별로 아는 바가 없다. 단지 주민용 단톡방에 올려진 이름만 알고 있다. 낮에 본 그녀들은 무척 조용하고 얌전하여, 마주치면 간단하게 인사만 할 뿐 대화를 길게 한 적이 없다. 낮.에.는!!
밤이면 주기적으로 분위기가 사뭇 달라지는데, 매일 달라지는 게 아니라서 그나마 다행이라고나 할까. 둘 중 누군진 몰라도, 남자 친구가 오는 날이면 그들의 거친 숨소리가 너무 적나라하게 들려서 내가 다 민망해진다.
꽤 주기적이고 체계적이기까지 한 그들의 음원은 엄청난 열정과 패기를 느끼게 할 정도이다.
자주 들어서 이젠 웬만큼 적응이 될 법도 한데, 매번 들려오는 소리가 다른 느낌이라, 번번이 파트너가 바뀌는 게 아닐까 하고 조심스럽게 추측을 하게 한다. 부럽다. 그녀의 인기가.
며칠 전이었다. 다음 날 중요한 일이 있어서 저녁 10시 반쯤 잠자리에 들었다. 한참 단잠을 자고 있는데, 또 아래층에서 <그 소리>가 들렸다.
깊이 잠든 내가 깨버렸다. 내방까지 울리는 쿵쿵 소리는 스테레오 돌비 시스템의 웅장 모드이다. 그들이 너무 소리를 크게 내는 걸까? 이놈의 건물이 오래돼서 벽이 닳았나? 아니면 내 귀가 밝아졌나? 하긴, 최근에 귀 파다가 득도하듯 귀가 번쩍 트인 적이 있다. 아마도 나의 감각이 지나치게 예민해진 것일지도…
여성이 내는 소리를 듣고 처음엔 주변에 발정 난 고양이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소리가 커졌다. 음, 고양이가 아니군!
그녀는 어쩜 그렇게 박자에 맞춰서 교성을 내지르는 걸까!
음~ 음~ 음~ 쥬뗌므~
음~ 음~ 음~ 쥬뗌므~
음~ 음~ 음~ 쥬뗌므~ 의 무한반복이다. (쥬뗌므(Je t’aime)는 불어로 ‘사랑해’라는 뜻)
하나~ 둘~ 셋~ 사랑해~ 정확한 4분의 4박자였다.
예전엔 도대체 아랫집 두 명 중 누구야? 싶었지만, 그날은 교성의 주인공이 누군지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첼로 연습하는 그 처자인 게 분명했다. 마치 메트로놈을 켜놓고 첼로 활 쓰기 연습하는 듯한 템포로 교성을 질렀기 때문이다.
사실 이때까지 단 한 번도 “쥬뗌므”라고 한 적은 없었다. 사랑한다고 외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지배, 드디어 임자를 만난 거야?’
한참 계속되던 4/4박자가 어느 순간부터 박자가 마구 흐트러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냅다 내지르는 소리가 마치 월드컵 붉은 악마의 함성 같았다. 그녀의 만렙 사운드로 난 잠시 월드컵 경기장에 온 줄! 치맥이 당길 정도였다.
그날의 스펙터클한 공연으로, 나는 자다 말고 혼자 배실배실 웃고 말았다. 잠을 깨운 건 정말 짜증 나는 일이었지만, 그녀의 박자 감각이 나를 웃겨주는 바람에 용서해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