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불 커플의 현실판 논픽션 1
세실¹은 프랑스 남성과 결혼한 한국 여성이다. 그들 부부에게서 태어난 아들과 딸의 비주얼은 월등했다. 남편은 시인이라고 한다. 그녀는 한국인 모임에서 남편의 시를 낭송하기도 했고, 현시대의 출판문화를 장황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세실은 또 남편과 어떻게 만났는지, 남편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프랑스 문학계에서 남편의 위치가 어떤지 등을 사람들에게 여러 차례 언급했다. 그때마다 그녀의 얼굴은 누구보다 행복했다. 시인인 남편을 무척 자랑스러워하는 듯했다.
아이들에 대한 애정도 끔찍했다. 세실의 이야기만 들으면 마치 그녀의 자녀들이 전세계 올림피아드에서 2등과의 격차를 엄청나게 낸 독보적인 그랑프리 쟁취자처럼 들렸다. 그런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현실이 아닌, 판타지 같아서 듣는 나도 재미있었다.
누가 봐도 즐거워 보였던 세실이지만, 간혹 이상한 행동을 했다. 대화 도중 누군가가 그녀의 남편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꺼내거나 물으면 화를 내며 황급히 화제를 돌리곤 했다. 그녀가 왜 그러는지 우리는 전혀 알지 못했다. 세실의 반응 때문에 사람들은 그녀가 나타나면 항상 조심했다. 공연히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사실, 대부분의 주변인들은 그녀의 가정사에 대해 그다지 알고 싶지도, 궁금하지도 않았다. 인간은 생각보다 타인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는 말이 맞다.
세상 모든 일은
숨긴다고 숨겨지는 것이 아니다.
어느 날, 그녀 주변의 누군가가 내게 말했다. 세실의 남편과 닮은 사람을 한 번 본 적이 있다고. 그런데 좀 이상한 점이 있다고…
우연히 그가 이른 새벽에 집 밖을 나갔댔다. 때 마침 시청에서 관리하는 쓰레기차가 지나가고 있었는데, 세실의 남편 같아 보이는 남성이 청소부 복장을 하고 쓰레기를 수거하더란다.
그는 내게 그 이야기를 하고는 곧바로 자신의 말을 번복했다.
“에이, 아닐 거야. 내가 잘못 봤겠지! 세실의 남편은 시인인데… 꼭두새벽에 쓰레기를 수거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지! 다음 날 나가봤더니 다른 사람이더라고! 암!”
그의 말을 들은 난, 어쩌면 그가 제대로 본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세실 남편은 새벽마다 쓰레기 치우는 사람일지 모른다. ‘시(詩)’는 퇴근 후 여가시간에 쓰는 것일지도. 아니 어쩌면 ‘시’와는 아예 상관 없는 사람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세실이 언급한,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그 유명한 시인은 어찌 된 일인가? 혹시 투잡 뛰나?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말자. 그녀의 말을 믿어주자.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추측은 내 바람을 이겨버렸다.
세실의 말이 모두 거짓임이 들통난 것이다. 그녀의 남편은 이름난 시인이 아니었다. 파리 시청 소속의 쓰레기 수거인이었다. 그녀와의 대화 가운데 어떤 의문도 제기하지 않았던 우리는 모두 그녀의 새빨간 거짓말에 놀아났었다.
그녀는 왜 거짓말을 했을까? 시인인 남편은 자랑스럽지만 청소부 남편은 부끄러운 것인가?
직업에 귀천은 없을지언정, 중요도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
환자의 복부를 열어 수술을 하는 의사가 취미로 그림을 그릴 수는 있지만, 화가가 취미로 환자의 배를 열어볼 수는 없지 않은가! 여차 하는 순간 수억 달러가 오가는 일을 하는 외환딜러와 그곳의 화장실을 청소하는 사람과는, 같은 건물 내에 있지만 업무의 비중이 확연히 다른, 어쩔 수 없는 현실이 있긴 하다.
남편이 사회적 비중이 없는 직업이라 다른 사람들 보기에 창피했던 걸까.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그 사람은 그저 늘 그 사람일 뿐. 직업이나 지위가 다르다고 A가 갑자기 B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사랑해서 선택한 내 사람이 쓰레기 수거하는 일을 한다고 그를 천하게 여겨도 되는 것일까?
훗날 들은 바로는, 세실이 결국 이혼을 했다고 한다. 이혼을 제시한 사람은 그녀가 아니라 청소부 남편이었다. 세실에게 치명적인 정신질환이 있다는 이유로 그녀는 양육권까지 뺏겼다. 그녀의 남편이라는 사람은 세실 몰래 주변 사람들로부터 그녀의 강박증세에 대한 증언용 서명을 받아 법원에 제출했다고 한다. 게다가 그들이 소유했던 집과 일부 재산들은 일찌감치 남편 동생 앞으로 명의변경이 되어, 위자료는 커녕 실질적으로 그녀가 도움받을만한 그 어떤 것도 없었다.
청소부는 오랫동안 치밀하게 준비하여 자기를 무시하는 사람을 치워버렸다. 이에, 허세가 좀 있긴 했으나 착했던 시인의 사모님은 갑자기 딱한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때로, 사소한 거짓말은
전혀 사소하지 않은 결과를 빚는다.
각주1. 세실은 가명입니다만, 이 이야기는 실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