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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슬아 Apr 30. 2017

#7.집과 여행, 그 대립적인 관계에 대하여

제 2편 - 여행이 우리의 삶에 주는 가치와 그 의미에 대한 고찰

      집과 여행을 주제로 쓰는 브런치 두번째 글이다. 이번 글이 두 편으로까지 이어질 줄 몰랐는데 막상 쓰고보니 관련해서 하고싶었던  말이 많았나보다. 이전 글이 '집'이 우리의 삶에 작용하는 역할과 그 의미에 대해 짚어 보았다면 이번 두번째 글은 집을 떠나는 '여행'이라는 행위가 우리 인생에 어떻게 작용할 수 있는지, 그 역할과 의미에 대해 나눠보려고 한다. 때마침 이 글을 쓰면서 떠나오게 된 여행지 런던에 머문 지도 오늘로 어느 덧 열흘 째 - 도대체 무엇이 나를 집을 떠나 이 곳 런던으로 떠나오게 만든 것일까...... 과연 여행이란 경험은 내 삶에 어떤 의미와 기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일까?



"혼자하는 여행, 그 매력에 대하여."


   이번 여행을 결정해서 오기까지 특별한 계기나 이유가 있었던 건 사실 아니었다. 잠시 일을 쉬고 있는 찰라, 런던에서 일을 하고 있는 대학교 선배 언니와 휴가일정이 맞아서 벨기에-네덜란드로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했던 것 뿐이었다. 어쩌면 이전 글에서 나눈 것처럼 내 인생에 집에 대한 의미부여가 크지 않기에 이렇게 여행이 좀더 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번 여행은 인생의 여행친구라고 말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언니와 함께하였지만 혼자 여행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스무살 때 막연하게 부모님과 집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독립심과 자유를 맘껏 누리고 싶어 혼자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어느덧 혼자하는 여행의 매력에 푹 빠져 일년에 한번씩은 꼭 혼자 여행을 다니려고 노력 중이다. 이상하게도 20대에는 없던 겁이 30대에 들어서면서 생기면서 해가 지면 숙소로 재깍재깍 돌아가기도 하고, 여행지에서 혼자 먹는 밥이 쓸쓸한 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혼자 여행하는 것을 내 인생에서 포기할 순 없다. 최근 '혼행'이라고 해서 혼자하는 여행이 하나의 트랜드로 자리잡고 있는 현상을 보는데, 내 경험을 비추어 보았을 때 그 문화를 응원하고 개인적으로 혼행을 추천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에서 좀더 나아가, 혼자하는 여행이 우리 인생에 어떻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지 왜 현대인들에게 혼자 떠나는 여행이 필요한 지에 대해 좀더 나눠보고자 한다.


'산들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스위스 리기산 - 정상으로 향하는 산악열차 안에서 바라본 풍경이 자연 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인간의 모습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여행은 인생의 미니어처 버전이다"


   혼자 여행하는 것에 매력을 느끼게 된 시작은 대학생 프랑스 교환학생 시절, 스위스로 혼자 여행을 다녀왔던 경험으로부터 출발한다. 4월 부활절 방학동안 (유럽에서는 부활절을 국가적 휴일로 정하고 있어 주말을 포함하여 약 일주일 정도 쉴 수 있다) 스위스 도시들을 기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 스위스 인터라켄에서 루체른으로 이동할 수 있는 직행열차가 없어서 환승을 여러 번해서 가야만 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처음 탄 열차의 도착시간이 지연되어 연이어 타는 기차들을 모두 탈 수 없게 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목적지 루체른에 도착한 것은 자정이 넘어서였고, 칠흙같이 어두운 산 속에 나홀로 있는 상황에서 소나기까지 퍼붓고 있었다. 너무도 당황한 나머지 20분 정도 걸어서 숙소를 가야하는데 난 방향감각을 상실해버렸으며 - 당시에는 구글지도가 없었고 종이지도로 목적지를 찾아다녀야 했다는 사실 - '한치 앞이 깜깜하다'는 표현의 의미를 실제로 경험하면서 점점 더 두려운 마음에 휩싸였다. 심지어 저멀리 숲에서는 늑대소리까지 들려왔지만 길에는 지나가는 사람도, 자동차도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그렇게 퍼붓는 비를 쫄딱 맞으며 걸어가다 보이는 집문을 황급히 두드렸고 집 안에서는 스위스의 노부부가 나를 따뜻하게 맞이해주었다. 그 때 느꼈던 안도감이란 -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노부부께서는 나에게 따뜻한 코코아를 한잔 내주셨고 지도를 주시면서 숙소로 가는 법을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그 때 따뜻한 부엌 테이블에서 잠시 앉아 마셨던 코코아는 평생 잊을 수 없을 정도로 달고 맛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렇게 난 당황스러운 마음을 추스리고 지도와 함께 출발해 새벽에 숙소로 무사히 도착했다. 그 때 내 경험은 내 인생에서 꽤나 큰 깨달음을 주었는데, 가끔은 길을 잃고 방황해도 괜찮다는 거 - 잠시 멈춰서서 방향을 올바르게 잡고 다시 출발하면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시간'을 여행한다는 점에서 인생과 여행은 공통점이 있다. 처음가기에 익숙하지 않은 그 여정을, 크고 작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결국 목적지를 도착하는 것 - 이렇듯 여행은 우리의 삶을 시간 단위로 압축적으로 축소해놓은 미니어처 버전의 경험이 아닐까? 그렇기에 여행을 통해 얻는 크고 작은 경험들, 그 속에서 느끼는 우리의 생각과 깨달음은 많은 부분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로 작용할 수 있다. 내 인생 스무 살 스위스에서의 경험은 고등학교 때까지 교과서와 책으로 배울 수 없었던 인생에 필요한 상황대처능력과 지혜를 체득하며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 되었다. 그렇게 혼자하는 여행은 내 인생에 없어서는 안될 귀한 선생님이 되었다.



   

   그렇다면 여행은 과연 우리 삶에 어떤 기능으로 작용할 수 있을까? 내 경험에 비추어 여행의 가치를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하여 이야기하고자 한다.


첫 번째 여행의 가치 -
"빠른 속도의 삶에서 벗어나 나만의 속도로."


평일 런던의 아침 - 까페 테라스에 앉아 따사로운 햇볓을 즐기는 사람들의 표정에 여유가 묻어난다.

   

   우리는 급하게 무언가를 요청할 때 'ASAP (As soon as possible)'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도 많은 것들에서 ASAP으로 요청하고 또 요청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어쩔 때는 삶의 속도 자체가 ASAP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지도 한다. 이렇게 우리는 빠른 속도의 삶을 요구하고 또 요구당하는 삶 속에서 우리는 표준 속도를 잃어버렸다. 과연 무엇을 위해서 우리는 그렇게 빠르게 달리는 것일까? 빠른 것이 항상 올바른 방향임은 아닐텐데 우리는 왜 그렇게 빠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여행은 이러한 현대인의 과속도의 삶에서 벗어나, 삶의 표준속도를 되찾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자신에게 즉각적으로 부여할 수 있다. 물론 사회가 요구하는 속도의 삶을 거부하며 살아갈 순 없겠지만 그러한 속도에 휘말려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여행을 통해 정상속도의 삶으로 가끔 제동(Break)을 거는 일 - 그러한 브레이크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다. 시간이 나를 컨트롤 하는 것이 아닌 내가 시간을 통제하고 주체적으로 사용할 있도록 잠시나마 나만의 속도로 시간을 보내는 것 - 여행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 현대인들에게 중요한 기능으로 작용할 수 있다.

   혹시 빠른 속도의 삶에 너무 익숙한 나머지 여행을 가서도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바쁘게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진 않은지? 여행지에서 만큼은 시간에 쫓기는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을 시간에 구애없이 자신에게 부여해보자. 막상 어떻게 해야하는지 감이 안 잡힐 수 있는 분들을 위해 예시로 오늘 런던에서의 나의 하루를 부끄럽지만 공유해보도록 하겠다.


11:00 - 알람을 맞추지 않고 눈이 떠질 때즈음 느즈막히 기상

13:00 - 미리 찾아두었던 레스토랑에서 브런치 먹기 - 건강한 병아리콩이 잔뜩 들어있는 샐러드와 평소 좋아하는 까페 한 잔으로 내 몸에 즐겁고 건강한 느낌을 부여하기

14:00 - 숙소 근처 까페에서 취미생활 즐기기 - 평소 읽고 싶었던 책 읽기, 글 쓰기, 그리고 인터넷 서핑 즐기기

20:00 - 저녁에 돌아와서 언니와 함께 저녁 만들어먹기

21:00 - 여행을 함께하는 언니와 즐겁게 대화하며 영국 식 티타임 즐기기


    위의 일정은 사실 런던시내에 나가지 않고 숙소 근처에서 쉬는 경우임을 참고하자. 다만 여행을 가는 데 있어서 일을 하듯이 빡빡하게 여정을 짜고 그것을 의무적으로 실행하듯이 갈 필요가 없다는 점을 피력하고 싶다. 그렇게 여행지에서 멍도 때려보고 게으름도 피워보면서 나에게 충분한 휴식을 먼저 부여하자. 지금부터는 '반드시 봐야하는' 관광지를 단시간에 '많이' 그리고 '빨리' 구경하는 여행 스타일을 멈추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중심으로 '나만의 속도' 대로 계획해보는 여행을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하루종일 까페에 앉아 글을 쓰고 책도 보았던 하루의 내 모습 - 여행은 시간을 온전히 내가 원하는 속도와 일을 하며 보낼 수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 여행의 가치 -

"자신에게 온전히 마음을 쏟는 시간."


   밖으로 향해있던 자신의 시선을 자신에게 맞추고 자신을 돌아보며 챙길 수 있는 시간만큼 혼자하는 여행 보다 좋은 것이 있을까.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며 살아가느라 정작 자신이 마음이 어떤지는 잘 모르며 살아가는, 나 자신을 챙기며 살아가는 데에는 매우 서툰 우리들이기에 자신을 보듬으며 재충전할 수 있는 독립적인 시간과 환경이 필요하다. 이렇게 자신을 챙기는 행위를 전문적인 용어로 마음챙김(Mindfulness)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최근 관련 서적이나 인터넷 컨텐츠들이 많이 나오고 있으니 한번 찾아보고 내 삶의 규칙적인 습관이 될 수 있도록 익혀보는 것도 좋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데 마음챙김은 반드시 필요한 자세이자 필요한 능력이며, 혼자하는 여행은 주변의 타인을 고려할 필요가 없이 자신을 온전히 챙길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환경을 제공한다.

   또한 여행은 집이라는 익숙하고 안정적인 공간과 삶의 환경을 떠나, 새롭고 익숙하지 않은 장소와 환경에서 자신을 위치시켜 보고 그 속에서 내가 하는 모든 생각과 행동들은 나 자신을 발견해나가며 나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들을 제공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자기자신을 알아야만 하는 것일까? 나를 안다는 것은, 마치 산의 올라가는 여정에 있어 내가 손전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 지 혹은 등산스틱을 가지고 있는 지를 아는 것이며, 시속 몇 Km정도를 갈 수 있는 사람인지 또 어느 시점에서 쉬어줘야 산을 잘 탈 수 있는 지를 이해하고 이를 인정하는 행위라고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인생이라는 산을 올라가는 데 있어 자신의 능력이나 성향이 어떠한지,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를 인정하고 타인과 협업할 수 있는 수용성과 여유를 갖게 되는 것 - 이렇게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 속에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는 높은 자존감과 타인을 수용할 수 있는 여유가 인생 속에 자리잡게 된다. 그것이 바로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얻는 지혜가 아닐까? 분명 여행은 익숙하지 않은 환경과 상황들 속에서 자신이 어떤 판단과 행동을 하는 사람인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 사람인지를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보여주는 프리즘 역할을 할 수 있다.


세 번째 여행의 가치 -

"더 넓은 시야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기."

  

   여행은 자신을 새로운 세계에 위치시킴으로써 좀더 넓은 안목을 갖게하며, 그로 하여금 자신이 처한 현실세계를 좀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한다. 이러한 기능을 할 수 있는 여행지로써는 개인적으로 개발도상국보다는 유럽 선진국이라든지 자신이 고민하는 주제에 대해 발전된 양상을 보이는 국가를 정해서 방문하길 추천하고 싶다.

   최근 대한민국이 가진 근로문화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고 있었는데, 이번 여행으로 런던에 머물면서 이와 관련하여 '신선한 불편감'을 느꼈다. 런던시내를 돌아다니다가 이쁜 팬시점이 있어 저녁 6시가 되기 10분 전에 들어가려고 했으나 문이 잠겨있었다. 분명 영업시간은 6시인 것을 확인하고 상점 안에 계시는 직원분에게 '왜 문이 잠겨있는 거죠?'라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안에 계신 직원 분은 계산대에서 마감을 하는 듯 돈을 세면서 문 밖에 서있는 나에게 문을 열어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보였다. 오히려 지금 문을 열어달라고 하는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과 함께. 한국에서는 손님이 사라질 때까지 영업시간을 초과해서라도 문을 여는 게 오히려 평범한 상황아닌가. 너무 대조적인 경험이었다. 중요한 것은 이 가게 뿐만 아니라 내가 런던에 머물면서 방문했던 많은 가게들에서 동일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영업시간이 종료되기 몇 분전부터 이를 고객에게 알리며 고객이 나가길 요청했고 종료시간이 되면 바로 문을 닫고 직원들은 퇴근을 했다. 이러한 경우는 단순히 오프라인 상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런던에서 회사를 다니는 지인 언니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었다. 언니가 퇴근시간 이후에까지 일을 하고 있는 날이면 직장동료들이 '너 괜찮아?' 혹은 '일이 (업무시간 안에 할 수 있는 양보다) 많은 것 같은데 괜찮겠어?'라고 걱정하며 물어본다는 것이었다. 정해진 업무시간이 끝나면 직원들이 퇴근을 하고 휴식을 취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 - 이러한 선진국의 노동문화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던 경험이었고 결국 그 이쁜 팬시점은 방문하지 못했지만 아쉬움보다는 나에게 발전적인 경험이었다.   

   이번 경험은 나로 하여금 이러한 근로문화를 갖게된 영국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 좀더 생각해보게끔 하는 계기가 되었다. 19세기 산업혁명 시절 영국의 혹독한 노동상황으로 인해 - 심지어 어린이들을 데려다가 밥을 주지 않으면서 공장 기계를 돌리게끔 일을 시켰던 문제가 발생하였다고 한다 - 사회적 문제들이 발생하고 이를 저항하고 해결해나가면서 그렇게 근로자의 권리를 존중받게 된 그들 선조들의 희생과 노력의 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사실을 알게된다. 어쩌면 이들이 몇 백년 전부터 오랜시간 일궈놓은 근로자의 권리와 문화를 오늘날 대한민국이 몇 십년만에 이룰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일 수 있겠다. OECD국가 중 가장 오랜시간으로 일을 하는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의 모습은 아마도 그 해결과정을 차근차근 밟아 나아가기 위한 과정 상에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한켠에 대한민국의 근로문화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여유가 생긴다. 이렇게 선진사회의 문화를 보고 체험하는 여행을 통해 자신의 삶과 자신이 속한 사회의 양상을 좀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각과 안목이 생기게 된다.

평일 저녁7시 Chiswick 동네의 모습 - 5시부터 퇴근하는 사람들로 거리가 붐비는데 이렇게 집 근처 레스토랑에서 가족들, 친구들과 저녁식사를 하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네 번째 여행의 가치 -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는 배움의 기회."


   여행은 몸소 체험하고 경험함으로써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렇게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자 하는 자세의 저변에는 '다름'을 인정하는 개방성이, 자신이 알고 있던 모든 것들이 틀릴 수 있다는 '겸손함'을 전제로 한다. 사실 이번 런던 여행을 통해 지난 9월 스페인 바르셀로나 여행에서 만났던 한 영국사람에게 작은 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개인적으로 IT에 종사하는 많은 인도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할 수 있었던 경험이 있었는데, 작년 스페인에서 만난 영국사람과 인도와 관련된 주제로 대화를 시작했었는데, 사실 그것이 대단히 실례였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에서 많은 인도인들이 영국으로 이민을 와서 살고 있으며 그들은 몇몇 세대에 걸쳐 영국에 정착해 100% 영국인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그들 조상의 뿌리는 인도이고 인도사람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사실 몇몇 세대에 걸쳐 영국사람이지 인도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은 영국에서 태어나 교육을 받은 영국시민이며 그렇기에 영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100% 영국식 영어를 구사하는 영국인이었던 것이었다. 따라서 그들에게 인도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마치 내가 동양사람으로 보인다고 해서 일본어로 '아리가또'를 외치는 식당의 종업원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행동임을 깨달았다. 얼마나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행동인가 - 이러한 깨달음은 내가 이곳 영국에 여행을 와서 그 사회를 체험하는 가운데 그들의 역사 속에 자리잡은 문화적 다양성과 그 배경을 알지 못했다면 아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체험적 깨달음 속에서 앞으로는 상대방의 겉모습만으로 그 사람의 배경과 국적을 판단해버리고 대화를 시작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을 것은 분명했다. 그렇게 나는 여행을 통해 문화적 다양성을 배우고 그로 인해 타인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 그렇게 난 여행을 통해 여전히 부족한 나의 모습을 보며 더 나은 내가 되는 법 또한 배우고 있다.

 

벨기에 근처 작은도시 브뤼헤 마을의 모습 -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여행은 결국 나를 사랑하는 행위이다."

   

   어느덧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편에서 쉽게 잠들지 못한 채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시간이 흐른 뒤 이번 여행을 통해 차곡히 쌓은 추억들과 즐거운 감정들은 지금 이순간 만큼 생생하진 않겠지만 분명 나의 스마트폰에 쌓인 여러 사진들과 냉장고에 붙어있는 기념 마그넷이 그나마 내 기억을 도와줄 것이다. 또한 대표적인 순간들은 뇌리 속에 스냅샷처럼 남아 그 시절 이 순간을 떠올리며 가끔씩 웃음지을 수 있는 인생의 자양분이 될 것이다. 결국 내가 이 곳 런던으로 여행을 오게된 이유는 나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자신을 보듬어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아는 일, 나에게 온전히 초점을 맞추고 나만의 속도로 내가 원하는 일을 즐겁게 하는 일,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다른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일, 그 속에서 또한 지금의 나의 모습과 상황을 조명하는 일 - 사실 이 모든 행위가 결국 나를 사랑하기 위한 행동이었고 그것들을 가능케 하는 시간과 공간이 '여행'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런던이라는 여행지가 중요했던 것이 아닐 수 있겠다. 나를 돌아보고 챙기며 채울 수 있는 모든 여행지가 곧 나에겐 특별한 장소가 될 수 있기에. 내 인생에서의 여행이란 - 그것은 나를 사랑하기에 내가 줄 수 있는 내 인생 최고로 값진 선물이었다.

   인천공항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 장시간 비행으로 꾀재재한 얼굴과 캐리어만큼 무거운 몸을 이끌고 돌아오는 길만큼 집이 간절해지는 시간은 없다. 샤워한 후 침대에 푹 누웠을 때의 그 안정감과 포근함이란! 여행은 이렇게 집의 소중함을 깨닫게 한다. 한편 돌아갈 집이 있기에 여행이 더욱 즐거워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여정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 '안네의 일기'의 주인공 안네의 집을 가는 길에 보이는 마을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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