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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슬아 Apr 20. 2017

#7.집과 여행, 그 대립적인 관계에 대하여

제 1편 - 집을 소유의 개념으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에 대한 고찰.

   "돈은 언제 모을꺼니?"


   여행가기 전날 밤 엄마의 질문이었다. 매월 꼬박꼬박 착실하게 돈을 모아왔던 내 상황을 모르고 있는 엄마로서는 사실 당연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돈을 더 모으지 않고 여행을 자주 다닌다'는 엄마의 다소 냉소적, 간접적 의견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내 인생에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몇 가지들을 - 물론 여행이 그 중 하나이겠지만 - 포기하면서까지 돈을 악착같이 더 모으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도 난 엄마의 질문에 적절한 대답을 하지못한 채 런던으로 떠나왔다. 그렇게 떠나오는 날 비행기편에서 불현듯 마음 속에 한 가지 물음이 떠오른다. '근데 내가 돈을 모아야 하는 이유가 정확히 뭐였더라......'

   오늘로 집을 떠나 런던에 머문 지 7일째 되는 날이다. 건강 상의 이유로 당분간 일을 쉬기로 한 찰라 영국 런던에 있는 친한 언니가 생각났다. 직장에 다니고 있다면 절대 누리지 못할 비성수기 저렴한 비행기표를 핑계삼아 그렇게도 나는 훌쩍 영국 런던 언니의 집으로 날아왔다. 언니가 머물고 있는 집은 방이 두 개였다. 다행히도 평일엔 근무를 하는 언니에게 최대한 독립적인 공간으로 방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나에겐 적당한 아늑함과 여행의 피로를 풀기엔 충분한 공간이었다. 한국에 있는 나의 집이 전혀 그립지 않을만큼 편안하고 따뜻한 그런 공간이었다. 내가 머무는 곳에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 그 정도의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내겐 사실 충분했다.

런던에서 머물고 있는 공간 - 햇살이 잘 들어오는 창문과 방 절반을 차지하는 큰 테이블이 참 마음에 든다.

   여행이 일정 기간동안 집을 떠나는 행위라고 생각해 본다면 집과 여행은 위치적으로 대립적인 관계에 있다. 집 문을 열자마자 나는 그 고유한 집 냄새, 오랜시간 내 인생을 함께 해온 손때 묻은 가구들, 그리고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저녁이면 어김없이 모여드는 우리 식구들까지. 집은 이렇듯 변화무쌍하지 않고 익숙하기에 안정감과 편안함을 제공한다. 반면 여행은 매우 불안정한 경험이다. 집을 떠나 매순간 접하는 모든 시간과 공간, 상황과 사람들이 모두 내 인생 지금 이 순간 처음이다. 그러기에 여행은 모험적이며 새롭다. 때로는 시차적응 실패로 새벽 두 시에 일어나서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내 모습처럼 불편함마저 감수하기도 한다. 이렇듯 집과 여행은 공간적 변화로 인해 우리에게 다른 경험을 제공하며, 그에 따라 다양한 감정과 생각을 불러 일으킨다. 그렇게보면 여행과 집은 위치적인 변화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에 있어서도 커다란 영향을 줄 수 있는 대립적인 요소로 이해해 볼 수 있다.

   지금 집을 떠나 이 곳 런던이란 낯선 도시에서 [집]에 대해 생각해본다.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데 가장 기초적인 요건 중 하나인 집 - 과거 먼 조상들이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시절 집은 일시적으로 휴식을 취하는 '위치(Spot)이자 장소(Location)'의 개념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한 곳에서 오래 머물수록 그 주변에서 얻을 수 있는 채소나 동물들이 사라지기 때문에 잠시동안만 한 곳에 머물렀으며 날이 어두어지면 맹수의 공격을 피해 휴식을 취하고 가족 부족원들과 모여 음식을 나눠먹기 위한 그런 '위치'적 인 개념이었을 것이다. 언제든지 필요하다면 자리를 툭툭 털고 몇 가지 도구들만 챙겨서 떠날 수 있는 그런 곳 -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우리의 선조들에게 집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과는 매우 다른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움직이지 않는 고정적인 '공간(Place)'으로서의 집의 개념을 갖게 된 시점은 언제일까? 크게 구분을 해본다면 인류가 정착생활을 시작하면서 부터가 아닐까 생각한다. 텃밭을 일구고 수확을 하는 농경생활을 시작하면서 한 곳에 일정기간 이상 오래 머물러야 했고, 이때부터 집은 이동하지 않는 부동(不動)의 개념을 부여받았다. 그들은 더이상 움직일 필요가 없었기에 한 곳에 집을 올리기 시작하고 지붕을 올렸으며, 좀더 견정교하고 단단하게 집을 지을 수 있는 기술들이 생기면서 건축학이 발달했다. 이때부터 집은 외부환경으로부터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일련의 '고정적인 터전'의 개념으로 자리잡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인류 역사상 긴 세월의 흐름을 거쳤지만 이러한 집의 기본적인 기능은 변화하지 않고 지속되어왔다. 외부환경과 침입으로부터 안전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움직이지 않는 공간 - 그것이 바로 집이 우리에게 주는 기본적인 효용이자 가장 중요한 가치였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자본사회에서 이러한 기본적인 개념만으로는 집을 이해할 수 있을까? 아마도 힘들지 않을까 싶다. 우리 현대인들에게 집은 곧 '자산(Property)이자 소유(Possession)'의 개념으로 더 많이 이해되고 있으니 말이다. 집을 어느 위치에 얼마나 크게 소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자신의 부유함의 수준이 달라지며, 집은 부의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가 되어버렸다. 또한 우리는 필요이상으로 더 많은 집을 소유하고 이를 더 높은 가격에 되팔면서 또 다른 부를 생산해낸다. 이러한 현대 물질주의적 사회 흐름 속에 오랜시간 역할을 담당해왔던 집의 기본적인 기능은 소홀해졌고, 우리는 집에 물질적인 개념과 가치들을 더 많이 부여했다. 집을 소유하기 위해, 더욱 큰 집에 살기위해 그리고 집을 더 높은 가격에 팔기 위해 우리는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안전하고 휴식을 줄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집 - 그것만으론 집을 이해하기엔 우리는 너무도 많은 물질적인 가치들로 집을 이해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건물을 짓지만, 그 건물이 다시 우리를 만든다" - 처칠


   위의 명언만큼 소유의 개념으로 집을 바라보는 우리의 삶을 대변할 수 있는 말이 또 있을까? 평생 돈을 벌어도 내 집 한채를 마련하기 어려운 시대, 대출을 통해 정작 집을 소유했지만 몇 십년 동안 이자와 빚을 갚기위해 오늘 내 밥상에 차려진 저녁메뉴는 참으로 퍽퍽한 시대 - 삶을 사는 데 집이 필요했고 그렇기에 집을 이용했던 삶에서, 우리는 집을 소유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되어버린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오늘날의 집은 어쩌면 우리 삶의 모양까지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집 속에 갖혀버린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무서운 생각마저 든다.


   우리는 집을 금전적인 가치로 여기며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 달려가는 인생의 경주를 잠시 멈추고 집에 대한 시선과 생각을 다시금 정립해보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물론 이 글이 집이 인생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신의 가치관이나 형편에 맞지 않으면서도 타인의 시선에 의해 또는 사회적인 문화에 의해, 혹은 아무런 구체적인 계획과 생각없이 집을 구매하고자 아둥바둥 돈을 모으는 사람이 있다면 이 글을 통해 다시한번 집에 대한 자신의 가치관을 다듬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자신의 가치관에 기초하여 내 인생에서 집은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어떤 기능을 해야하는 것인지, 더 나아가 집을 소유하는 것이 내 인생에 올바른 결정일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자, 그렇다면 그 생각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으로 먼저 집을 소유하는 것이 선택의 문제이지 의무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환기시키고 싶다. 우리는 평생 돈을 벌어도 집 한채를 사기가 매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현실적으로 아예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부모님의 재산을 물려받거나 몇 십억짜리 로또가 당첨이 되어 거액의 돈이 들어오는 경우라면 물론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경우 대출을 받아서 평균 몇 십년간 빚을 갚으면서 집을 보유하게 되는데, 이 말은 몇 십년 동안 집을 소유하기 위해 오랜시간 빚에 종속된 삶을 살아야 하는 것과 같다. 최근 기사*에 따르면 서울 32평 아파트의 평균 가격(약 6억1천38만원)이며 약 11년을 모아야만 월급으로 집을 살 수 있다고 한다. 이는 월 소득이 468만원임을 가정하였을 때의 기간이며, 소득의 100%를 집을 사는데 사용하였을 때를 전제로 한다. 만약 자신의 소득이 위의 평균 금액보다 적거나 소득의 일부만을 집을 사는데 모으고 있다면 집을 소유하는 데 걸리는 기간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는 집을 사기위해 몇 십년 동안 끊임없이 돈을 마련하고 이를 집을 사는데 써야한다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은 집을 보유했음에도 정작 빚을 갚기위해 궁핍한 삶을 사는 계층을 칭하는 일명 하우스푸어(House poor)라는 신조어를 양산하기도 하였으며, 한편 일본이나 영국 등 많은 선진국 국가들의 이미 오래전부터 젊은 세대들이 점점 더 집을 소유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살아가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양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렇게 변화한 시대의 흐름 속에 집을 소유하는 것이 과연 자신의 가치관과 여건 속에서 올바른 선택인지에 대한 물음이 선행되어야 하겠다.

   그 밖에도 집을 구매하는 데 있어 여러가지 고민들이 필요한데 1) 우선 내가 몇 십년 동안 끊임없이 빚과 이자를 갚을 수 있는 경제적 조건이 가능할 것인가 2) 이러한 삶으로 인해 당장 유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돈의 금액이 적어지는 것을 감안하며 현실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인지, 또한 3) 몇 십년 동안 빚을 갚아 결국 집을 소유하게 되더라도 만약 집 값이 반으로 떨어지거나 중간에 더이상 살지 못하게 되어 이사를 가야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이에 따라 자신의 자산가치가 떨어질 경우에도 이를 수용할 수 있을 것인가 등의 고민이 필요하다. 거시적으로 보았을 때 대한민국의 인구 수는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1인가구가 증가하고 있긴해도 이는 전체적인 수요량이 감소하고 있음을 의미하며 지금도 신축 아파트는 계속 세워지고 있는 측면에서 대한민국도 일부 국가 사례와 같이 부동산 거품이 빠지고 집값이 갑자기 폭락하는 상황이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 (어떤 전문가들은 그 시점을 빠르게는 2018년 내년으로 보기도 한다) 이처럼 미래의 집값은 일부 유명지역을 제외하고 - 물론 그 지역의 집값은 터무니없게 높을 것이지만 - 자연스럽게 올라갈 확률보다는 떨어질 수 있는 확률이 더 높다. 자, 이쯤에서 다시 현재 자신의 돈과 시간을 막연하게 집을 사기위해 모으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지금 한번 생각해보자. 이러한 미래의 변수들을 품고도 집을 사는 것이 가치가 있는 선택일 지, 집을 사기 위해 내 삶의 많은 시간과 가치를 집에 투여하는 것이 좋을 지를 말이다.

   앞서 여러번 말한 것처럼 우리는 집을 사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고, 집을 소유하는 것 자체가 여러 불확실한 변수들을 내 미래에 품고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정작 우리의 생각과 사회적 인식은 이를 아직 정확하게 깨닫지 못하는 듯 하다. 2-3년마다 껑충 뛰는 전세값으로 집을 옮겨다녀야 하는 고충 때문에 혹은 매월 내야하는 월세값 때문에 단지 막연하게 집을 갖고 싶은 것은 아닐지 생각해보자. 물론 집을 보유하게 되면 자주 이사를 다닐 필요가 없을 것이고, 매월 빠져나가는 월세비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전한 회사의 위치가 바뀐다면? 지방으로 회사발령이 난다면? 갑자기 유학을 가거나 해외지사로 발령을 받게되는 기회가 생긴다면? 자녀 교육을 위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고 싶어진다면? 등등...... 우리는 몇 십년 안에 너무도 다양한 경우의 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망각한 채 눈 앞의 편안함을 원하는 것일 수 있다. 혹은 반대로 이렇게 다양할 수 있는 미래 자신의 삶의 다양성을 보유한 집으로 인해 포기해버리는, 변화에 적극적이지 못한 채 한 곳에 머무는 삶을 선택하는 것 일 수도 있다. 또한 집을 구매하면 매월 빠져나가는 비용이 전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집을 구매한 후에도 발생하는 관리비, 유지비용 그리고 재산세가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이러한 요건들을 모두 고려한 뒤에도 집을 구매하는 것이 자신의 성향과 가치관에 적합하다고 판단이 된다면 그 때 집을 구매해도 전혀 늦지 않다는 점을 기억하자.

똑같은 모양의 집이 나란히 배치되어있는 영국의 집들 - 그들에게 집은 과연 무슨 의미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특히 사회적 인식 중에 '남자가 결혼하려면 집 한 채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이젠 좀 없어져야 할 것 같다. 앞서 여러번 강조했지만 이미 우리는 집을 사는 것이 불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더이상 우리 세대에게 집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미 남자와 여자가 함께 경제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남자에게 - 그것도 돈을 많이 모으지 않았을 결혼하는 시점에 - 집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구시대적인 발상이 아닐지. 이러한 사회적 인식들은 우리 젊은 세대들이 결혼을 미루거나 포기하게 만드는 큰 요인이 되고 있다. 남녀가 함께 벌어서 당분간 머물 수 있는 적절한 위치와 크기를 가진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것 - 이러한 생각이 가능할 때 결혼이라는 인생의 두 번째 출발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고 이 시대의 결혼생활이 좀더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부모님의 세대도 자식에게 집을 물려주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삶을 자녀와 집에 바치는 삶을 살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앞서 집과 여행을 대립적인 관계로 이해한 것처럼 집이 차지하는 부담과 비중이 작아질수록 인생에서 여행이 차지할 수 비중은 높아질 수 있다. 인생에서 주어진 시간과 돈이 한정적이라고 한다면 과연 나는 집과 여행이라는 두 대립적인 요소 중에서 어떤 것에 더 많은 가치를 두는 사람일 지 생각해보자. 집에서 안전하게 편안한 삶을 살고싶은 성향이라면 집을 구매하는 것 또한 인생에 중요한 목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집을 사기위해 고려해야하는 여러가지 요소들을 좀더 신중하게 고민해보자. 또한 집을 소유하지 않고 사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이는 몇십년 동안 대출과 빚으로 묶인 삶에서의 해방을 의미하며 여행과 같은 좀더 넉넉하고 활동적인 라이프스타일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 될 것이다. 물론 집이 없어서 불편한 점이 있겠지만 한편으론 내가 얻을 수 있는 것들도 있으니 이를 잘 비교해보고 자신에 맞는 합리적인 선택을 내 삶에 부여하자. 가계부채 1300조원인 이 시대*에 빚과 집으로부터 좀더 자유로울 수 있다면 '나중에...' 혹은 '내가 좀더 여유로워질 때'로 미뤄두었단 여행의 횟수도 더 늘어날 수 있겠다. 어렸을 적 타던 시소처럼 말이다. 한 쪽편이 너무 무거워 땅바닥에 닿은 상태로는 다른 한편에 무게를 쉽사리 올릴 수 없다. 집에 놓여있던 비중을 조금이나마 내려놓을 수 있을 때 비로소 내 인생에 있어 여행이란 무게도 다른 한 쪽편에 작게나마 둘 수 있지 않을까.


   결국 엄마에게 답변을 하지 못하고 런던으로 떠난 내 마음이 무겁다. 여행 떠나는 전날까지 딸래미에게 잔소리를 하던 엄마이지만 집을 떠나있는 나의 안부를 매일매일 묻는 사람 또한 여전히 엄마라는 존재 뿐이기에. 미처 대답하지못한 나의 생각을 이 곳 런던에서 엄마에게 전한다. '미래에 필요할 수 있는 돈은 적당히 모아두었고 계속 모아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집을 살 생각이 없고 그렇기에 내 삶의 중요한 여행이란 경험을 포기하면서까지 더 모을 필요가 현재로서는 없는 것 같아요. 지금 내가 이렇게 여행을 할 수 있음에 너무 행복하니까요'라고.

   이 글에 이어 두번째 글에서는 그렇다면 왜 우리가 집을 떠나 여행을 좀더 해봄직한 것인지, 인생에 있어서 여행이 갖는 역할과 그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 해볼 예정이다. 가능하다면 이 곳 런던에서 내가 느끼고 생각한 것들도 같이 이야기해보면 좋을 것 같다.

언니네 집 앞 공원 - 햇살 좋은 날씨를 즐기는 영국사람들의 모습에서 여유가 흐른다


*참고기사 : '집 살 때 절반이 대출…월급만으론 한 푼 안 써도 11년 걸려', 연합뉴스 2017년 3월자

*참고기사 : [금리인상 시대의 명암 | 가계부채 폭탄 정말 터질까] 집값•실질소득 급락하면 '폭발', 내일신문 2017년 3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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