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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보고 Dec 19. 2023

안녕, 트위치.

D-73

트위치 스트리머 도전기 [5단계]


    인터넷 방송, 줄여서 인방이라 불리는 것에 대해서 전혀 모르던 저였습니다. 보지도 않고, 즐기지도 않고, 솔직히 그걸 보고 있는 게 시간낭비라고 여겼었습니다. 그런 제가 트위치 방송 스트리머를 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무모하고 황당한 도전이었습니다. 게임을 즐기지도, 비주얼이 특출 나지도 않았던 제가 도대체 뭐에 꽂혔는지 지금도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네요. 늘 새로운 일, 두근거리는 일을 하고 싶었고, 충동적인 성향이 더해졌던 거라 정리해 봅니다.


[1단계: 망상]


    뭐 하나 결정하면 몰아치는 성격인지라 해야겠다고 마음먹자마자 방송장비는 뭐가 좋은지, 스트리머로서 성공하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송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찾고 파고들었습니다. 시작도 하기 전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면 저는 어느새 벌써 대형 스트리머가 되어있었습니다.


[2단계: 중독]


    일 끝나고 집에 돌아와 4시간씩 방송을 했습니다. 처음은 시청자 1-2명. 그다음은 5-6명, 그다음은 10명 이렇게 조금씩 높아지는 게 보이니까 사람이 이거에 중독되더군요. 도파민 그 자체였습니다. 더 모으고 더 잘하고 싶었죠. 개개인과의 소통보다 다수 또는 후원해 주는 사람들이 들어오기를 내심 바라며 못된 마음도 가졌었습니다. 그래도 시청자들과 소통하는 게 즐거웠고, 방송이라는 세계를 알게 되면서 저의 세계가 또 확장되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제 방송이면 무조건 들어오는 시청자분들도 고정적으로 생기게 되었고, 팔로우가 100명이 되고 200명까지 모으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사라질 트위치 채널

[3단계: 분노]


    이미 시작부터 대형 스트리머의 꿈을 꾼 저는 높은 기대치가 충족되지 않으면 실망을 하고 기대를 하고 실망을 하고를 반복했습니다.  다른 BJ들은 어떻게 하나, 늘 염탐하고 비교하기 시작했고, 아, 나도 시간대를 바꾸거나 더 오래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을 모을 수 있을 텐데... 맨날 오던 분들 말고 새로운 분들이 좀 와야지 좋을 텐데...라고 생각했습니다. 일이 힘들거나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이면 소수의 사람들이 사소하게 요구하는 것들이 버겁게 느껴지기도 했고, 후원하는  사람들의 요구에 리액션하는 것도 지치고 힘들었습니다.


[4단계: 우울]


    애초에 즐기지 않는 게임을 계속한다는 거 부터 잘못된 선택인 게 아닐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똥손'이라는 캐릭터성으로 방송의 재미를 만들어줬지만, 나란 사람은 다양한 걸 하기 좋아하는 사람(사실은 하나를 꾸준히 못하는 사람)인데 왜 계속 이걸 해야하지? 그래서 제가 즐기는 걸 해볼까? 해서 토크나 요리 위주의 방송은 시청자가 급격히 떨어지는 걸 보았습니다. 현 남편 전 남자친구는 이 시기를 다 지켜보면서 제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압니다. 그리고 남편도 이 시기가 제일 자신도 힘들었다고 합니다. 저를 도와주기 위해 애쓰고, 유튜브 편집도 해주고 시청자로서 늘 같이 해주면서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었다는 긍정적인 시선으로 저의 도전을 지켜봐주었습니다. 그런데 도전을 하는 당사자인 저는 계속 불만족스러워하고, 늘 울고불고하면서 이걸 놓지 못하는 절보고 자신도 지치고 또 마음 아팠다고 합니다.


[5단계: 수용]


    열심히 해서 파트너 스트리머도 되고 나름 시청자들과의 라포도 잘 쌓아가고 있었지만, 제 마음은 늘 불만족한 상태였죠. 방송을 하는 일 자체는 재밌었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제가 다 기획하고 소통하면서 새로운 걸 해보기도 하고 말이죠. 저 자체가 굉장히 매력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자기 객관화가 덜 되었던 게 원인이었죠. 그리고 어떤 일이든 절대적인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그 시기에 저는 조급하고 또 오만했음을 알아차렸고, 제가 아직 이것을 할 그릇이 안됨을 깨달았었습니다.


    그 와중에 일이 바빠지기 시작하면서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왔었습니다. 현생 일과 방송 일과 완전히 분리하지 못해 어느샌가 지장을 주기 시작했고 현생 일을 미루고 방송 일에 더 집중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결혼준비도 해야 했었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5개월의 스트리머 생활을 멈추기로 결심했고, 손 편지로 그렇게 장기 휴방 공지를 했습니다.  2021년 6월 3일이었습니다.


장기 휴방공지 손편지 2021.6.3


    그 이후로 돌아가지 못한 채 그렇게 3년이 지났습니다. 


트위치가 한국을 떠난다고 합니다.


    장기 휴방이라 써놓고 언젠가 돌아가고 싶다...라는 생각은 계속했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그 시간이 꽤 즐거웠던 걸 나중에서야 알았습니다. 숫자에 집착하지 않았다면 전 더 행복한 스트리머였고, 하나의 도전으로 남아있지 않았을까... 또는 재밌는 취미생활로 남아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큽니다.


    트위치가 한국을 떠난다는 소식으로 떠들썩합니다. 대형 스트리머들이 어쩔 수 없이 플랫폼을 옮기게 되는데 과연 어디로 갈지, 모두의 관심이 쏠려있습니다. 저는 그 소식을 듣고 곧 사라질 작디작았던 제 방송채널에 들어가 봤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들어간 스트리머 게시판에 아직도 저를 기다리는 분들이 글을 남기고 계셔서 코 끝이 찡해졌습니다. 누군가에게 괜한 희망을 품게 하고 그걸 배신한 거 같아 마음이 많이 안 좋았습니다. 트위치가 한국을 떠나게 되면 더 이상 만나고 싶어도 못 만날 사람들입니다. 이미 저란 사람을 잊으셨을지도 모르지요. 보실지 모르지만 마음을 담아 마지막 글을 남겼습니다.



    아무도 안 읽을 수도 있는 글이지만, 지난날의 나를 돌아보며 후회를 쏟아내고 새로운 갈길을 다져봅니다. 다시 어떤 일을 도전하더라도 이런 패턴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이 글을 보지 못하더라도 그들이 모두 건강하길 바라봅니다. 오랜만에 두 손 모아 기도드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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