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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Sep 08. 2022

시험기간인데 공부를 하지 않았습니다

'빠르다.'


요즘 내가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이다. 사람들의 발걸음도 빠르고, 지하철의 문 닫힘 속도도 빠르고, 버스가 나를 지나쳐 가는 속도도 빠르다. 그냥 빠르기만 한 건 아니다. 빠른 것들 사이에 강한 시각적, 청각적, 후각적인 자극이 1+1 상품처럼 함께 담겨있다.


예를 들어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나는 6차선 도로의 정중앙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 서 있다. 왼쪽, 오른쪽으로 차와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스쳐 지나간다. 내가 타지 않을 버스들도 스쳐 지나간다. 그런데 그냥 지나가는 게 아니다. 버스들은 온갖 광고를 내게 흘리고 지나간다. '피부 고민이 있다면 이 제품을 사보세요', '역시 토익은 000 학원', 그리고 각종 앱 광고까지. 그런 광고를 보면 두 가지 생각이 든다. 


첫 번째로 눈이 피로하다는 생각이다. 보고 싶지 않은 광고를 강제로 보게 되는 상황이 약간 짜증스럽기도 하다. 세상에 자극이 너무 많이 존재한다는 생각도 든다. 두 번째로 드는 생각은 '역시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광고를 담고 스쳐 지나가는 버스도 빠르고, 광고의 내용도 빠르다. 


'지금 이걸 사지 않으면 넌 뒤쳐질 거야'

'지금 당장 이걸 사야 해!'

'이 앱을 쓰지 않는 너는 참 불쌍하구나.'


이런 광고를 보면 왠지 모르게 침울한 입꼬리가 된다. U자 모양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것 같다. 갑자기 왜 기분이 나빠질까 생각해보면 내가 원하지도 않는 걸 마치 원해야 할 것처럼 보여주는 광고에 지쳤고 왠지 모를 불안감과 뒤쳐짐을 느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학교에 가기 위해 거의 매일 버스를 타야 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버스 옆면에 어떠한 광고도 없이 그냥 노선도와 '273번'이라는 번호만 적혀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내가 버스회사의 총책임자를 찾아가 멱살을 붙들고 '광고 좀 그만하세요!'라고 말할 순 없다. 그렇게 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바꿀 수 없는 버스를 바꾸기보다는 그래도 바뀔 가능성이 있는 나를 바꿔보기로 했다. 


어떻게? 조금 느리게,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삶을 사는 방향으로. 그렇게 나는 인생 처음으로 대학교 시험공부를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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