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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윤선 Aug 31. 2021

채찍과 '당근이세요?'

아티스트의 현실 일상


창조적이고 예술적인 삶을 산다고 하면 사람들은 환상 속에 빠져 산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창조성은 면밀한 관찰과 구체적인 상상으로 이루어진 지극히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오히려 현실을 뚜렷하게 상상하고 이미지화하여 표현할 뿐이다.

내면의 창조자를 불러내니 내 일상에도 행동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밤과 낮에 내가 성공하고 싶은 열망이 강렬해지고 분명해졌다. 꿈도 많이 꾸고 기억하고, 상상하고 계획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당장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했다.

평소와 다른 일을 시도하게 되었고, 나도 하면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일상 같지만, 당근으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나도 오래전부터 당근이 뭐냐고 했던적이 있었다. 험한 세상에 당신이 사는 근처에서 직거래를 왜 하는지 이해가 안갔었다. 그런데 요사이 당근 마켓에 재미가 들렸다. 흙속에 당근을 찾듯이 집에 있는 안 쓰는 물건을 하나하나 찾아내서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판매할 내 물건 셀렉션에도 기준이 있다!

1. 필요는 없는데 그냥 간직하고 싶었던 물건들

2. 명품인데 잘 안 입는 것들

3. 나는 가져봤으니까, 나여도 갖고 싶은 것들

4. 깨끗하고 새것처럼 팔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

5. 내 이미지에 손상을 안 주는 세련된 물건들


그래서인지 물건을 올리는 족족 신기하게 잘 판매가 된다. 오늘은 심지어 당근 마켓에서 내 물건이 3개나 팔렸다. 내가 그동안 외국에서 모은 것들, 나만의 안목으로 고른 패션 소품들을 좋아해 줬다. 

오늘의 직거래 장소는 옥수역이었다. 4번 출구 밖에서 만나자고 하니, 구매자가 바로 타고 환승을 하겠다고

역 안 개찰구에서 보자고 한다. 

'즘 밖으로 나오지 거기까지 가야 하나' 구시렁대면서도 나는 괜찮다고 했다.

지하철은 다른 수단으로는 가기 불편한 곳을 작은 비용으로 목적지까지 갈 기회를 준다는 확고한 목적이 

있다. 그렇게 알뜰하게 살아가는 당신과 나를 위해 기꺼이 가기로 했다.


퇴근 시간이라 일하고 나온 사람들은 당연한 일상이지만, 요사이 직장을 다니지 않는 내게는 다른 세상 

같았다. 편한 옷에 선캡을 쓰고 선글라스까지 끼고 가방 없이 쇼핑백 하나를 달랑달랑 들고 다니는 나는 

딱 봐도 나들이 복장이다. 생계와 관련이 없는 것 같지만 내겐 당근이 생계라는 걸 느꼈다. 

재미와 놀이는 분명히 아니니까. 내 소중한 물건을 돈으로 바꾸는 건 지극히 현실적인 방안이었다.

역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사람들과 부덕기는 느낌, 편의점밖에 진열되어있는 젤리와 껌, 사탕들, 바닥에 빨대 포장지, 기계실과 전기실, 공용 화장실을 지나왔다.

나는 쇼핑백을 들고 두리번두리번 관찰했다. 어깨를 파고들 것 같은 가방을 메고 걷는 승객들,

교통카드를 대니 삐 소리와 함께 개찰구를 철컥 통과하는 사람들,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콜라 캔을 들고 

다니는 사람을 피해 서 있었다. 약속 시각이 가까워지고 열차가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곧 저기서 나올 텐데, 누굴까?

만나기로 한 시간이 딱 되니 당근에서 도착했다고 문자가 왔다. 서로 처음 보는 사람이라 신뢰가 전혀 없으므로 불안과 의심 속에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보자마자 ’ 당근이세요?‘ 밝게 인사를 나눴다. 이게 당근이라는 단어 이미지 힘이다.

내가 입던 추억의 옷과 내 계좌번호를 맞교환했다. 실속이 중요한 요즘 MZ세대 다웠다. 

중고옷이라도 합리적인 가격에 가치를 둔 그녀의 생활력에 허세 안 부리고 실속 있게 살고 있는 

내 모습에 기쁘고 짠했다

’ 예쁘게 잘 입으세요’ 인사말이 절로 나왔다. 현실에 바탕을 둔 아티스트의 저녁 일상 풍경이다. 


 나는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고 끊임없이 창조성을 갈구하며, 
두 발을 땅에 딛고 어떻게든 살아내려는 현실인이다. 
나의 예술성과 재능이 부디 땅에 떨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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