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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폼폼토스 Sep 14. 2023

지긋지긋 인도 물갈이

환경오염이 내 몸에 남기는 증거  

 한 15년 전쯤 한국 젊은 사람들 사이에 인도 배낭여행 붐이 일었던 때가 있었다. 길에는 소떼가 지나다니고, 사람들은 버스와 기차에 위태위태 매달려 가며, 요가와 명상, 힌두와 이슬람 문화가 섞인 이국적인 분위기 때문에 여행 좀 다녔다 하는 사람들은 모두 인도 여행을 다녀왔던 것 같다. 내 가족 중에서도 동생과 사촌 동생이 인도를 다녀왔고, 친구들이나 전 직장 동료들 중에서도 인도 여행을 다녀온 이들이 제법 있었다. 그들이 겪은 공통적인 한 가지는 물갈이였다. 


 동남아시아 정도만 여행을 다녀와도 물갈이를 겪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여행 다녀온 모두가 말하기를 인도의 물갈이는 차원이 다르다고 했다.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모조리 겪었고 일주일 넘게 고생하다 원치 않는 질병 다이어트를 하게 되었다니 말이다. 인도에 도착하고 며칠 후 물갈이가 찾아오는 거라면 지금쯤 오겠거니 하고 약이라도 사다 놓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을 텐데, 그놈은 어느 날 벼락같이 찾아온다고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집의 모든 화장실에 필터 설치하기, 외식할 때 꼭 미네랄 워터 주문해 먹기 등이었다. 


 한국에서 인도로 온 지 두 달 정도가 아무 탈 없이 지나갔다. 오늘은 괜찮나 내일은 오려나 하는 기대감도 아니고 기다림도 아닌 요상한 마음도 점점 사라져 갔다. 평소에도 잔병치레가 별로 없는 편이라 '역시 나는 건강해' 하고 감히 가져서는 안 되었을 자만심을 품고 있을 때, 물갈이 그놈이 나를 급습했다. 


 낮에 카페에서 마신 아이스 라떼의 얼음이 의심스러웠다. 나는 집에서 얼려 먹는 얼음이 아니면 밖에서는 절대 얼음을 먹지 않는데, 그 얼음을 얼린 물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은 무척 더웠고 이제까지 별일 없었는데 무슨 일이 있겠냐는 생각으로 생각 없이 아이스 음료를 주문했던 것이다. 


 그날 저녁, 약 한 시간 사이에 다섯 번 정도 화장실을 드나드니 기운이 쫙 빠졌다. 미열도 났고 나중에는 너무 괴로워서 신호가 오는데도 화장실을 가고 싶지 않았다. 기운이 쭉 빠진 채로 잠을 자고 일어나 그 다음날 점심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그런데 배는 왜 이렇게 고픈지. 허기를 면할 정도로만 뭔가를 조금 먹었을 뿐인데 또 화장실 직행. 얼빠진 채 앉아 있으니 출근한 메이드 아줌마가 "Are you ok?" 하고 물어본다. 나 설사한다고 대답하니 아줌마 말이 지금 이 시기는 비가 오락가락하고 물이 안 좋은 시기라 외국인뿐만 아니라 인도 사람들도 설사로 고생을 한다는 것이다. 물갈이라기보다는 물이 안 좋아서 모두에게 생길 수 있는 일이었다. 


 대체 인도의 물은 왜 이렇게 안 좋은 것일까? 비가 오는 것과 물이 안 좋은 게 무슨 상관이 있나?


 인도는 지하수 의존도가 60%에 달하는 물부족 국가라고 한다. 1980년대부터 인도 정부는 농민들에게 전기보조금을 지급해 농업 용수로 쓸 지하수를 뽑아 올릴 수 있게 했다. 그 결과 매년 인도 전역에 100만여 개, 20년 만에 2200만 개의 어마어마한 숫자의 우물이 생겼다. 그러나 자원에는 한계가 있는 법. 뽑아낼 수 있는 지하수의 수위는 해마다 낮아지고 있었다. 문제는 세계 어느 나라도 농사를 짓기 위해 이렇게 많은 지하수를 뽑아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강, 호수, 저수지 등에서 물을 얻어 정화하고, 사용된 물은 정화하여 다시 사용할 수 있게 한다. 이것이 상하수도의 기본인데 왜 이 시설을 구축하지 않았는가를 생각해 보면, 결국은 그 인프라를 구축할 세금의 문제로 귀결된다. 상하수도 시설을 구축할 만한 충분한 세수를 확보할 수 없는 것이다. 


 세금을 낼 형편이 안 되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 바쁜 사람들은 손쉽게 물을 얻을 수 있는 강물을 사용한다. 그러나 정화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 강들은 이미 자정 능력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갠지스 강물이 그렇게 더러워진 이유가 이것이었다. 몬순 기간에 비라도 잔뜩 내린다면? 온갖 쓰레기가 다 떠오르고 범람하여 땅이 오염된다. 땅과 강, 바다로 이어지는 오염의 악순환은 당연히 사람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사람뿐이랴. 온 생태계가 오염될 수밖에 없다.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배경이기도 한 다라비 마을. 처리할 곳 없어 산을 이룬 쓰레기 더미에 땅이 오염되고 있다. (이미지 출처: Pinterest)


 인도의 도로는 조금만 비가 내려도 금방 물이 차오른다. 배수 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이 주는 선물인 비를 모아 잘 활용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기만 했어도 무분별하게 우물을 파는 일은 줄이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깨끗한 물을 누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인도 도시의 하수 처리 시설 비율은 10% 밖에 안된다고 한다. 뭘 어디서부터 해결해야 할까. 강성용 교수님이 말한 인도 경제의 '악순환'이 무슨 말인지 알겠다. 


 그래도 나 같은 사람들은 킨리, 아쿠아피나 같은 생수를 사 마실 수 있기라도 하지 그렇지 못한 가난한 사람들은 더러운 물을 마실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는 인류가 오랜 역사에 걸쳐 찾은 가장 효율적인 경제 시스템이지만 부자는 더 부자로,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하게 만드는 폐단을 지녔다. 


 그렇게 설사로 고생하던 나는 결국은 여기 사람들이 '노란 약'이라고 부르는 항생제를 먹고 나았다. 그러나 한번 겪었다고 더 이상 안 겪는 게 아니다. 물이 기본적으로 더러운 한, 물갈이는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는 것이다. 자연의 역습이다. 인간이 부린 욕심은 다시 인간을 위협한다. 나는 아무래도 괜찮다. 그러나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은 내 아이 세대를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일까. 인도의 인구는 14억이 넘는데 나의 존재는 너무도 미미하다. 그린피스 후원금을 더 늘릴까? 내가 할 수 있는 생각이 이런 것들 뿐이라 마음만 답답해지는 밤이다. 


※ 인도 지하수 및 상하수도에 관한 정보는 EBS 다큐멘터리 '하나뿐인 지구' - 물의 역습, 인도 이야기 편을 참고하였습니다. 




(이미지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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