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님, 우리 기사님
잠결에 들려오는 시끄러운 경적 소리와 릭샤꾼들의 떠드는 소리, 움직이고 있어야 할 차가 멈춰 있는 느낌에 눈을 번쩍 떠보니 이곳이 어디인지 모르겠다. 분명 델리 한복판인 것 같은데 자동차와 릭샤, 사람과 소의 물결에 갇혀 차가 꼼짝 앉고 있다. 도대체 어딘가 싶어 구글맵을 켜보니 집으로 가기 위해 늘 지나던 길이 아니다.
'우리 기사 같으면 이 길을 안 탔을 텐데!'
친척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일주일 간 고향에 간 '우리 기사님 K'가 절실하게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기사가 고향에 간 동안은 임시 기사가 왔는데, 그 짧은 일주일 간 비교하고 싶지 않아도 차를 타는 모든 순간 저절로 비교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인도에 오기 전 인도의 생활상을 이해하기 좋은 영화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화이트 타이거'를 추천받아서 본 일이 있었다. 인도인들은 대부분 직접 운전을 하지만 부유층의 경우 기사를 고용하기도 하고, 외국인들은 거의 모두가 기사를 고용한다. 영화는 기사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나는 인도에 가서 만나게 될 우리 가족의 기사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한국에서는 직접 운전하거나 대중교통으로 어딘가를 다녔지, 기사가 모는 차를 탄 경험은 택시 말고는 없었다. 그런데 인도에서는 우리 차를 기사가 운전한다. 그것도 우리 가족만을 위해! 처음에는 기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어딘가를 가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외출을 할 때 기사가 나의 약속 장소마다 기다리는 게 미안하고 황송해 꼬박꼬박 나의 행선지와 돌아오는 시간을 기사에게 보고했다. 차문을 열어주는 것도 몸 둘 바를 몰랐었고, 약속 자리가 길어지면 '기사가 밖에서 기다릴 텐데' 하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다. 나는 차만 타면 자는 사람인데 운전하는 기사에게 미안하고 눈치 보여 잠도 잘 못 잤다.
적응하기 쉽지 않은 나라 인도지만 기사가 있다는 건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정말 큰 장점이다. 기사가 있어 좋은 점은 수도 없이 많다. 외출할 때 주차 걱정 안 해도 되고, 기사가 목적지 코 앞까지 데려다주고 데리러 온다. 이동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다.
나는 운전을 그다지 즐기지 않아서 운전 스트레스가 없다는 것도 좋은 점이다. 그것은 남편과 다른 주재원 아빠들도 마찬가지다. 운전도 운전이지만 인도의 교통 체증에 한 번 걸리면 답이 없기 때문이다. 그 교통지옥을 기사는 깜빡이도 켜지 않고 차선을 자유자재로 바꾸어 가며 믿음직하게 헤쳐나간다. 운전을 하지 않아도 되니 가족끼리 외식하면서 반주 한잔도 가볍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좋은 드라이버'를 만났을 때 이야기다. 기사를 잘못 만나면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정말 만만치 않다. 매일 봐야 하고, 나의 이동과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이기 때문에 기사가 속 썩이기 시작하면 매일이 괴롭다.
속 썩이는 기사의 경우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인 것들은 이렇다. 전화를 안 받거나 왓츠앱 메시지를 안 보는 경우다. 기사에게 연락하는 건 지금 당장 어딘가를 가야 하기 때문인데, 기사가 연락이 잘 안 되면 이동이 지체될 수밖에 없다. 사실 이건 기사로서 실격인데, 의외로 이런 기사들이 많다.
경적을 너무 자주 울려대거나 급정거, 과속하는 경우도 있다. 차에 탄 사람은 불안할 수밖에 없고, 안전도 문제다. 구글맵을 안 보는 경우도 있다. 기사들은 경력이 오래된 사람들이 많고, 특히 외국인 주재원 가족은 가는 곳이 뻔하기 때문에 본인이 아는 곳은 지도를 검색하지 않고 다닌다. 그러나 러시아워에 걸리면 길바닥에 몇십 분이고 서 있기 일쑤기 때문에 그럴 때는 구글맵을 검색해서 막히지 않는 길을 알아서 찾아가야 한다. 위생 문제도 있다. 잘 씻지 않는 기사라면 함께 차에 타고 장시간 이동할 때는... 상상에 맡기겠다.
그래서 기사를 인도 생활 3대 복 중 하나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 기사님 K'는 우리가 처음 인도에 왔을 때부터 우리 가족과 함께 한 기사다. 그동안 기사에게 별 불만이 없었는데, 지인들의 차와 임시 기사가 모는 차를 타보니 우리 기사님이 얼마나 특급 기사인지 깨닫게 되었다.
나는 우리 기사님이 경적을 울리는 것을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기사님은 우리 가족 기사로 일하기 전 일본 회사에서 오랫동안 일했는데, 그 때문인지 경적을 울리지 않고 과속이나 급정거를 하지 않고 부드럽게 운전한다. 그래서 나는 차만 타면 꿀잠을 잔다. 또한, 지리와 교통 정보에 매우 밝다. 델리는 VIP 통행 때문에 특정 도로를 봉쇄하는 일이 잦은데, 그런 정보를 귀신 같이 알아서 늘 나에게 먼저 알려 준다. 그리고 막히지 않는 길을 알아서 찾아간다.
다음 주면 고향에서 기사님이 돌아오시는데 마음은 두 팔 벌려 환영, 두 손에 지폐(=팁)를 들고 맞아줘야겠다. 기사님, 제발 지치지 말고 오래 일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