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 and the City Season 3 EP 08
남편과 나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식습관이다. 남편은 싫어하는 음식이 딱 정해져 있는 초딩 입맛이다. 그렇지만 음식을 가리는 폭이 큰 건 아니어서 대체로 나와 맞춰 잘 먹어준다. 반면 나는 딱히 싫어하는 음식이 없다. 음식의 박애주의자라 자칭했지만 그 말을 들은 남편은 내게 그건 호불호가 없는 사람인 거라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밖에서 뭘 먹거나 시켜 먹을 때 메뉴를 정하는 건 대부분 남편의 몫이다.
근데 정말 나는 모든 것을 다 사랑하는 박애주의자인가. 그보단 난 싫어하는 걸 싫어하는 쪽에 가깝다. 읭? 이게 뭔 소리? 그렇지만 정말 그렇다. 나는 싫음이 싫고 혐오를 혐오한다. 싫어한다는 감정을 느끼고 인지하는 것을 되도록이면 피하고 싶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싫어도 싫다고 안 하고 억지로 꾹꾹 참았던 적도 제법 있었고 반대로 그 싫음을 피하기 위해 내가 좋은, 하고 싶은 쪽만 선택해왔던 것 같기도 하다. 겉으로 보기 좋게 포장한 거지 이는 사실 모두를 사랑하고 평화하려 하기보다는 그저 갈등을 겪지 않고 싶을 뿐인 것이 아닌가.
이런 내가 '싫어'를 말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특히 다른 게 아니라 "일하기 싫어." 전엔 일이 힘들다 정도 말했던 것 같은데 요즘엔 거의 하루 걸러 일하기 싫다고 한다. 남편한테, 친구한테, 인스타에 자주 일하기 싫다고 했다. 전엔 싫은 게 어딨어,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해야지 했었다. 근데 뭐? 일하기 싫어? 싫다고 불평이 나올 정도면 그건 사실 내가 배가 부른 게 아닐까. 근데 정말, 진심으로, 말 그대로 일하기가 싫다. 왜? 질문을 던지자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3, 6, 9 숫자들이었다.
이 3,6,9는 게임이 아니다. 어느 일이든 중간에 한 번씩 고비가 찾아오는 시기를 뜻하는 숫자들. 나에게도 그 3, 6, 9 중의 3과 6이 찾아왔다. 드디어 새로 일하기 시작한 지 3개월 차가 되어 6월을 맞은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무수한 3, 6, 9를 지나왔는데 이번은 왜 이리 다른 걸까. 항상 해오던 일이니 당연히 괜찮을 줄 알았는데. 나의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가 버렸다.
대전, 그리고 다시 돌아온 중등은 만만치 않았다. 대전은 지금까지 내가 경험했던 서울, 경기와 비슷하면서도 교육 환경적인 면에서 차이점들이 분명히 있다. 학생들의 학습 태도나 기본 실력에서 그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학생들의 가족 상황이나 가정환경 같은 부분에서도 큰 차이가 느껴졌다. 서울 북부와 경기 북부도 사실 거의 끝판왕 급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여기와 비교하면 거긴 나은 편이었다. 가족과 친구를 포함한 모든 관계들은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데 반이 많아야 두 개라서 늘 이 애들은 붙어있는 셈이니 투닥거림과 자잘한 사건 사고는 끊이지를 않는다. 그것도 비슷한 애들이 비슷한 사안으로. 처음 만난 3월의 짧은 허니문 기간이 지나고 그들은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순진하게만 보였던 마스크 위쪽의 눈망울들이 서서히 창의적인 말썽을 구상하기 바쁜 눈알들로 변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이런 상황을 견디는 것이 예전에 7시간씩 쉼 없이 수업을 했던 그때보다 체감상으론 훨씬 더 버거웠다. 아마 나의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도 그때쯤이 아닐까 싶긴 하다. 또한 중등에 대한 나의 기억과 경험이 최신판이 아니라는 것도 문제였다. 모든 것은 내가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10년 전 기억에 머물러 있었다. 중등에 대해서만큼은 사실상 경력 단절과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상한 것 하나 더. 분명히 서울에서는 출퇴근 한 시간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다녔었다. 1시간이면 아이고 감사합니다, 였다. 한 시간 반 걸린다고 하면 뭐 그럴 수 있지, 하면서 다녔다. <나의 해방일지>의 산포 삼 남매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였다. 서울 집에서 강남을 가려면 그 정도 시간이 걸리니까. 그래서 난 되도록이면 집에서 가까운 학교들 위주로 일자리를 알아보았고 최근까지 대부분 한 시간 내외의 거리에 있는 곳에서 일했다. 여전히 '위치'는 나의 구직 조건 중 상위권에 자리하고 있다. 지금 일하게 된 학교도 아침에는 30분, 퇴근할 때는 45분 정도 걸린다. 나는 이 정도면 충분히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대전 선생님들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다들 하나같이 너무 멀다고 하는 거다. 읭? 안 먼데? 왜 멀다 그러지? 그런데 요즘 나는 퇴근길에 종종 집에 가는 길이 너무 멀다고 생각하게 됐다. 가도 가도 집에 왜 이렇게 도착을 안 하냐, 이러면서 다니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대전 화(和)"인가. 그런데 이게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싫어지는 포인트로 굳어지는 게 문제였다. 아이들도 싫고 통근길은 멀기만 하고. 싫은 것 투성이었다. 뭔가 싫은 것들만 덕지덕지 붙은 대전에서의 첫 "일"이 힘겹게 3과 6의 고개를 넘었다.
나는 왜 일하기 싫을까. 원래 사람들은 일하기 싫은 게 당연하지. 그러니 당연히 싫은 걸까. 그럼 왜 그전에는 이 정도로 싫지는 않았을까. 이유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늘 그랬듯 나는 내 안에서 이유를 찾고 싶고, 찾아야 되었기에.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나, 책임감과 부담감이 상대적으로 적다.
전일제 아닌 계약직, 짧은 근무 시간과 비례하는 급여, 학습부진아들이 주류인 학습대상 등등이 나로 이 일에 대해 좀 더 가볍게 생각할 수 있는 여지들을 주었던 것 같다. 나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나도 그다지 이 자리에 큰 미련이 없다, 와 같은 이유들이 내가 이 일을 큰 무게감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하는 요인이었다. 여기에 있지만 여기에 속하지 않은 사람. 일반적인 인사고과와는 나는 별개인 사람. 그러니 중간에 붕 뜬 느낌이 많이 들었고 그래서인지 하기 싫다는 생각이 시작된 것 같았다.
둘, 적응에 도움이 되는 정서적 유대감이 적다.
지금까지 나의 학교 생활 중 가장 최고의 시절이었다 생각되는 2015, 2020년도 학교생활을 생각해보면 더없이 끈끈한 유대관계가 가장 중심에 있었다. 학생들과도 그렇고 동료 선생님들과도 그렇고. 사실 그때와 같은 경험을 다시는 할 수 없을 거라 지금도 생각은 한다. 당시 나는 그들과 '함께'하는 사람이었다. 외딴섬 같지 않았다. 함께함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나눌 수 있었다. 그때의 인연들이 지금도 간간이 이어지기도 한다. 지금 이곳의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나와의 특별한 교류나 유대가 없다. 특히 학생들은 그저 이 한 시간을 잘 지나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건 나도 별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는 각자 할 일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일지도. 나는 가르치는 일에, 그들은 그 시간을 견디는 것에.
셋, 바뀐 환경에 적응하는 속도가 더디다.
내가 내세울 수 있는 장점 중 하나가 적응력은 그래도 좋은 편이란 것이었다. 그래서 어디를 옮겨가도 <천안삼거리 타령>에 나오는 능수버들처럼 이래도 저래도 흥흥하면서 잘 견뎌내었다. 물론 어려운 점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여기는 이야기가 좀 다르다. 일단 내가 결혼하고 일하는 첫 경험이라 일도 하고 집안일도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전에는 내 일만 하면 됐고 엄마가 밥도 맛있게 해서 먹여주셨고 잠도 재워주셨고 심지어 청소, 빨래도 다 해주셨다. 그런데 이제 내가 그 일까지 같이, 그것도 두 명 분을 해야 했던 것이다. 생각은 했지만 그 범위와 정도는 예상하지 못했다. 아이가 생기면 이제 세 명, 네 명분까지 해야겠지. 물론 남편은 항상 이 모든 일들에 함께 해주고 있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개념이 조금 달랐던 것 같다. 퇴근 시간도 내가 더 빠르고 시간적 여유가 더 있는 편이라 남편보다는 내 손이 더 많이 가는 상황이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 적응해 나가는 속도가 생각보다 더뎠다. 이제 어느 정도는 궤도에 올라와 안착해야 하는데 아직도 그렇지는 못하다. 이 와중에 갑자기 얻은(?) 목 디스크 초기 증상으로 전래 없는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는 점, 이걸 타개해보고자 요가를 시작했는데 이를 소화해내기엔 내 몸이 너무 비루하고 체력도 하찮다는 점, 장마철이라면서도 제대로 비가 쏟아지지 않아 덥혀질 대로 덥혀진 공기의 온도, PMS로 날뛰는 호르몬의 난동 등등이 적응기를 더욱 지루하고 힘겹게 만들었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시고 그에게 할 수 있는 '일'을 주셨다. 그는 자신의 최선을 다해 그것을 감당했고 하나님과 함께 동역하는 가운데서 그 일을 해내었으며 그 결과 모두에게 즐거움이 되었다. 원래 일은 그런 것이다. 그런데 왜 나는 일하기 싫기만 한 걸까. 위의 세 가지 상황들이 개선되면, 시간이 좀 더 지나면, 2학기가 되면. 일하기 싫은 마음이 사라지게 될까. 나는 언제까지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정말 일이란 건 나를 포함한 그 누구도 하고 싶지 않은 것인가.
이런 물음들 끝에 나는 다시 <미생>을 꺼내 들었다. <미생>은 어떤 일을 어떻게 하는지를 통해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이다. 8권 사활 편에서는 직장인 사춘기를 겪는 한 사원과 그것에 교훈을 주는 선배의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인생은 끊임없는 반복, 반복에 지치지 않는 자가 성취한다! 내가 앉아있는 자리에서부터 나는 헌터가 되어야 한다. - <미생 8권, 사활>, IT 영업팀 박 대리
무료하고 따분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의미와 생기를 찾기 위해 지금, 이 순간 반복적인 도전을 시도해야 한다. 일을 하기 싫은 이유를 나는 세 가지만 댔지만 실은 무궁무진할 것이다. 그때마다 싫어 싫어하면서 무기력하게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 아니겠나. 당장 오늘 우편함에 도착한 카드 명세서부터가 나를 채찍질하는데. 직장인 사춘기는 이미 훨씬 전에 지나버렸다고 생각한 나지만 다시 이러고 있는 걸 보면 이것도 인생에서 돌고 도는 과정 중에 하나일지 모르겠다.
일은 참 복합적인 것이다. 일을 일로만 봐야 하는 차가운 머리도 필요하겠지만 일을 함께 하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대하는 따뜻한 마음도 함께 가질 때 잘 감당해 낼 수 있다. 일은 나의 성취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면서도 나의 생존과 영위를 가능하게 해주는 가장 이상적이면서도 현실적인 개념이다. 그리고 그 일을 맨 처음 우리에게 허락하신 분은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이시다. 그분의 원래 의도대로라면 일하기 싫은 마음을 갖는 건 어려울 것이다. 더하여, 예수님은 아버지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말씀하셨다. 하나님도, 예수님도 일하신다는데... 나도 일해야 마땅하지. ㅋㅋㅋ
이제 열흘 뒤면 방학이다. 6을 힘겹게 넘어왔으니 방학으로 재충전할 나는 다가올 9만큼은 너끈하게 넘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모든 3,6,9의 순간에 서 있는 모두를 열렬히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