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서 바라보는 눈길, 그리고 그 시선이 가닿은 존재들에 대하여
대전에서 서울로. 또다시 터전을 옮기고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 시점이 찾아왔다. 여러 교육지원청 사이트를 오가며 구인공고를 찾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자주 눈에 띈 자리가 바로 ‘늘봄전담기간제’였다. 초등학교에 돌봄 교실이 있는 건 알고 있었는데 늘봄은 또 뭔가. 전(前) 정부의 가장 큰 교육적 목표이자 성과는 바로 늘봄교실 시행이었다. 덕분에 나에게 일자리가 허락되었다. 경기 북부의 어느 초등학교에서 1년 동안 교과는 영어전담으로, 업무로는 늘봄교실 사업의 실무담당을 맡았다. 뭔가 말은 거창한데 내가 실제로 했던 일은 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을 오후 3~4시 정도까지 여러 수업을 지원해 주며 학교에서 맡았다가 보호자 혹은 학원 관계자에게 인계해 주는 것이었다. “정부가 어린이 돌봄을 전적으로 도울테니 부모들은 열심히 일해라”로 해석되는 일이었다.
내 밥벌이를 위한 수단으로는 더없이 감사한 자리였지만 학년도 말이 되어 갈수록 현타에 현타를 콤보로 맞았다. 어린이들은 엄마 아빠와 함께 집에서 안정적인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하루 종일 학교에 잡혀 있어야 했다. 물론 정말 일을 해야만 하는, 현재 나의 상황과 다를 바 없는 학부모들이 당연히 있을 거란 걸 안다. 그들에게는 당연히 이런 도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아이들과 돌봄의 책임을 그냥 학교에 던져버리고 모두들 나 몰라라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됐다. 특히 학교에 어려움을 주거나, 어려움이 되는 학생들이 바로 그렇게 집보다 학교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임을 발견하면서 나는 더없이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내가 맡은 이 업무는 정말 무엇을 위한 것인가. 정말 모르겠더라. 계엄 사태가 맞물리면서 이 정책과 사업은 존폐의 기로에 서는 운명을 맞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그렇게 1년이 지나갔고 난 다시 일할 곳을 찾아야 했다. 이대로 일하고 싶지는 않았다. 정부의 요구에 부역하는 도구가 아닌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경제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포기하더라도 진정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서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곳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지난 3월부터 한 대안학교에서 일하게 되었다. 내가 갖고 있는 나름의 무기(?)로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지금의 탈북자 대상 대안학교에 연이 닿았다. 작년에 북멘토링을 통해 <파도의 아이들>을 읽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만난 이들은 <파도의 아이들>의 등장인물과는 조금 달랐다. 현재 재학 중인 학생들은 대한민국과 북한이 아닌 제3국(중국이 비중이 가장 크다)에서 출생하여 유년기를 보내고 청소년기 후반이 되어서야 한국으로 온 탈북민 자녀들이 대부분이며 이외에 또 다른 이유들로 이 학교에서만 공부할 수 있는 학생들이었다.
원래 나는 대안학교의 존재와 효용에 대해 그다지 긍정적이진 않았다. 대안교육을 받는다 해도 다시 사회로 나와야 하는 건 매한가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학령기 학습을 따로 한다고 해도 어차피 대학을 갈 거잖아? 그럼 오히려 사회와 제도권 안에서 어떻게 적응하고, 바르게 살아내야 할지를 가르쳐야 하는 것이 더더욱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었다. 그러나 정말 대안교육이 필요한 대상자들은 따로 있었다. 지금 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처럼. 아이를 키우는 성인 탈북자 학생. 제3국에서 제대로 학교를 다니지 못해 기초 학습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학생.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 한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기본 학력 인정을 받아야 하는 학생. 국적은 한국이나 한국어보다는 제3국 언어가 편해 한국어를 잘하지 못하는 학생. 학령기이지만 부모와 자신의 불법 체류 신분으로 인해 교육권을 인정받지 못하는 학생 등. 제도권으로 진입할 수 없는 이런 학생들을 위한 돌봄은 어디에 있나. 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제야 돌아서서 보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쓰고 싶어 했던 한국어와 영어의 양 날의 검을 휘두르(?)며 1학기를 이들과 함께 보냈다. 전에는 학교 단체계정으로 AI 코스웨어를 사용해서 편했는데 이제는 그 정기 결제가 내 몫이 됐다. 그런 투자는 학생들과 수업 시간 중에 진가를 발휘한다. 단어 게임 1등을 한 학생들은 모니터에 뜬 자신의 1등 화면을 사진으로 남기며 즐거워했다. 그동안 영어 단어장만 주야장천 만들었는데 최근에는 한국어 단어장을 훨씬 더 많이 만들었다. 그러는 사이 학생들은 1학기 두 번의 정기고사와 두 번의 검정고시, 한 번의 TOPIK 시험을 치렀고 또 준비하고 있다. 교과 공부뿐 아니라 이들에게 필요한 도움은 따로 있기도 했다. SK 해킹 사건 때 유심교체 신청에 대한 설명이 같은 것이 바로 그 예다. 최근에 하나가 더 있었다. 아직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은 어느 학생이 TOPIK 시험을 접수했다. 하지만 광클의 대란에 밀려 결국 경남 지역의 한 대학으로 고사장을 배정받았다. 시험에 대한 안내는 물론이고 접수증 출력과 고사장 위치 확인, 교통편 설명까지가 내가 담당해야 하는 일이었다. 실생활에 관련된 내용들 모든 것이 배우고 가르쳐야 할 제목이 된다.
알고 보면 학생 개개인의 사정은 하나같이 파란만장하기 이를 데 없었다. 유년기를 제3국에서 부모 없이 보냈다 보니 학력 수준은 들쭉날쭉했고 정서적으로는 불안 불안했다. 학기 초에는 보통 아니다 싶은 몸의 대화(?)가 오고 가는 상황도 목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교사들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도왔고 그러니 학생들도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선생님들아, 죄송합니다’ 라며 뉘우침의 선물을 사 와서 내 손에도 커피 한 잔이 들렸다. 현재 학교에 학생 수가 그렇게 많지 않아(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잘 모르겠는데...) 교사들이 여러 개의 눈으로 함께 이들을 지켜볼 수 있다. 이렇게 돌아보고 지켜보는 것이 진정한 돌봄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돌봄은 부메랑처럼 다시 돌아온다. 요즘에는 날이 덥다고 점심시간에 고등반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자발적으로 아이스크림 봉지를 양손에 사들고 와 다 같이 나눠먹는다. 편의점과 PC방 알바비, 타 지역에서 일하는 엄마가 보내주는 그 많지 않은 용돈을 모두를 위해 기꺼이 쓴다. 아이스크림이건 간식이건 내가 사줘만 봤지 언제 학생들이 나를 사줬나. 어서 하나 고르라며 봉지를 내미는 학생들의 눈망울에 반짝이는 별을 보며 뭉클해졌다.
‘돌보다’를 사전에 검색하면 그 어원을 알 수 있다. 원래 ‘돌보다’는 동사 ‘돌다 [回]’와 ‘보다 [見]’가 만나 이루어진 합성어로 기원적으로는 ‘돌아보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던 말이다. ‘돌보다’는 동사의 어간끼리 결합하여 이루어진 합성어로서, 물리적으로 ‘돌아보는 것’을 가리키기도 하고 ‘(무엇을) 보살피는 것’을 가리키기도 했다. 근대 국어 이후부터는 ‘보살피다’의 의미로만 쓰이게 된다. ‘돌아보다’는 물리적으로 ‘돌아보는 것’을 가리키다가 현대 국어에서는 ‘보살피다’라는 의미도 가지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우리는 오늘 돌봄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말 그대로 뒤를 돌아보며 내가 보지 못했던 곳과 존재들을 찾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되지 않을까. 내 앞과 옆이 아닌 뒤를 바라보는 것. 우리는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가 아니니까.
여호와께서 갇힌 자를 해방하시며 여호와께서 소경의 눈을 여시며 여호와께서 비굴한 자를 일으키시며 여호와께서 의인을 사랑하시며 여호와께서 객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 – Psalms 146: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