괄호 속의 말

by 사라남기

‘부작용.’ 요즘 내 일상을 가장 많이 채우는 단어다.

처음 항암치료를 시작하기 전 병원에서 항암교육을 해줬다.

항암주사 교육 선생님이 침대에 앉아 있는 내게

얇은 책자 하나를 건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항암치료로 일어날 수 있는 일들, 하지 말아야 할 것들,

조심해야 할 것들, 그리고 수많은 부작용까지.

이미 치료 전 수많은 검색과 알고리즘 사이에서 나의 검색기록과 피드는 유방암 이야기로 가득 찼으니,

웬만한 큰 부작용은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환자들 중에는 정말 다양한 케이스가 많았다.

치료받으면서도 직장생활을 거뜬히 해내거나

예쁘게 화장하고 꾸미며 평범해 보이는 일상을 보내는 분들도 있었다.

나도 그들처럼 어느 정도는 비슷하게 살아낼 수 있을 거라고,

긍정적으로 힘내면 내 몸도 따라오리라 믿었다.


하지만, 갓 출산한 내 몸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수없이 긍정으로 씻어낸다고 해도

하루에도 몇 번씩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컨디션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럼에도 육아와 일상을 살아내야 하기에

꾸역꾸역 아픔을 눌러 넣고 지내지만

“괜찮다”는 말 뒤 괄호 속의 감정은 실타래처럼 꼬여버린다.

아플 때마다 굳어버리는 몸과 달리 뇌는 얼마나 활발한지,

상상력과 우울감이 한데 엉켜 나를 심해로 데려가는 듯하다.


요즘 내 몸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성한 곳이 없다.

부작용이 겹치고 또 겹치며 어디까지 안 좋아질 수 있는지

시험하는 것처럼 계속해서 나를 괴롭힌다.

머리 탈모는 기본, 두피는 모낭염 흉터로 가득하고

눈썹과 속눈썹도 열 개 남짓 남아 있다.

속눈썹이 없어 눈은 뻑뻑하고 마른다.

피부는 거뭇거뭇해 기미가 올라왔고,

콧속 털까지 다 빠져 콧물이 조금이라도 나오면 바로 흘러내리고 점막도 약해져, 코를 세게 풀면 휴지에 피가 섞여 나온다.

다행히 크게 심한 구내염은 없지만

입속 껍질이 계속 벗겨지고 입은 말라 생각 없이 크게 하품이라도 하면 꼭 피를 본다.


몸은 미친 듯이 가렵고 긁고 난 부위는 물집이 잡혔다가 터지며 피부가 탈피하듯 벗겨진다.

손톱, 발톱은 까만 점과 줄이 생겼고 몇몇 손·발톱은 반쯤 들려 빠질 준비를 하고 있다.

팔은 혈관을 더 이상 찾지 못할 만큼 망가져 주삿바늘 흉터로 가득하고

속은 계속되는 구토에 위산이 늘 올라오며 통증도 멈추지 않는다.

항암을 하고 온 뒤엔 계속되는 변비로 고생하고,

조금만 무리해도 심장이 마구 뛰고 숨이 차서

수시로 주저앉아 헐떡이기를 반복한다.

무릎과 발목도 계단 앞에 서면 부들부들 힘이 없어 옆으로 내려가야 하고

손과 발은 계속 저려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근육통에 몸살이 더해진 듯, 온몸의 피부가 찌릿찌릿 아프다.


가족들은 말한다.

“그래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잖아.”

자꾸 남은 횟수를 세며 날 위로하지만,

내 몸에는 끝난 횟수만큼 고스란히 쌓여가는 부작용이 더 많다.

위로에 고개 끄덕이며 웃지만,

남은 항암에서 또 어떤 부작용이 닥칠지

걱정되고 무서운 건 내 몫이다.


환자라는 말에 무뎌지고

나의 투병생활도 가족들에게 이젠 일상이 되어

“괜찮아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지만

아무도 모르는, 내 조용한 괄호 속에서

여전히 나는 무섭고 아프고, 두렵다.


오늘도 괜찮다(……)

이 속에는 결코 입 밖에 다 내보낼 수 없었던 온갖 마음들이 들어있다.

눈앞의 가족들에게조차 차마 드러내지 못했던 두려움과 서운함,

아프다고 말하기조차 미안했던 내 진짜 감정들이 가득하다.

“괜찮다”라고 말하지만,

괄호 속엔 매번 조금씩 흔들리는 ‘괜찮지 않음’이 숨어 있다.

그 마음은 때론 고요한 체념이 되고

때로는 목이 메는 울음이

때로는 새벽 침대 위에서 혼자 참아내는 고통과 겁이다.


이 괄호 속의 말들이 진짜로

내 마음과 다르지 않은 날이 빨리 오길

오늘도 내 진심은 일기장 속에만 묻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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