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고 신생아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제일 많이 듣고 기대했던 순간이 ‘100일의 기적’이다.
초보 엄마에게 100일은 정말 까마득하기만 했다.
울음이 아이의 유일한 의사 표현이었던 그 시절,
아이에게 "엄마가 미안해"를 입에 달고 살았지만
어느덧 아이와 유대감이 생기고, 조금씩 생긴 눈치로 아이의 필요를 짐작해 줄 수 있게 된 스스로가 기특하기도 했다.
100일의 기적 중 가장 큰 변화는 다름 아닌 아이가 수유 텀이잡히니 밤에 조금이나마 통잠을 잘 자주게 되었고
그 덕에 엄마와 아빠도 가끔은 사람답게 잠을 잘 수 있게 된 것이다.
조리원에서 막 나와 2시간마다 수유하던 때는
수유하고, 트림시키고, 기저귀 갈고, 잠깐 눈을 붙이면
또 아이가 울고 하루 종일 '정신이 혼미하다'는 말을 몸으로 느끼며 버텼었다.
그 100일이 지나고 아이의 백일상도 집에서 직접 차려줬다.
예쁜 과일과 백일떡, 아이 위한 한복까지 고르는 과정은
신경 쓸 것도 많고, 체력적으로도 힘들었지만
아픈 엄마 품에서 100일 동안 무럭무럭 자라 준 아이를 보면 감회가 새롭고 미안함과 대견함, 사랑이 뒤섞여 ‘고맙다’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아이만큼 나 자신에게도 100일이라는 시간은 뜻깊었다.
나의 항암 치료도 벌써 절반을 넘겼고, 손에 만져지던 가슴의혹 크기도 중간 점검 검진에서 1cm나 줄어들었다.
아이가 무사히 100일을 맞이했듯,
나 역시 또 하루, 또 한 달을 잘 버텨내며 ‘기적’을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병원만 오가던 내가 이젠 100일이 지난 아이와 집 앞 산책도 슬슬 시작하게 됐다.
아파트 단지를 따라 유모차 끌고 10분씩 걷기부터 시작해
처음엔 후우 후우 숨을 거치게 몰아쉬고 그랬지만
요즘은 퇴근한 남편을 데리러 지하철역까지 다녀오기도 한다. 아직도 계단 한 칸 내려가는 것도 힘들지만
조금씩 쌓인 외출에 나의 체력도 알게 모르게 늘고 있다.
아이의 100일이 지나 처음으로 '나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을 땐 내가 바깥에 나갈 준비가 덜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얼굴은 퉁퉁 부었고, 걷기도 힘들고,
모자를 푹 눌러쓰고 나가다 아는 사람이라도 마주치면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상대는 날 보고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상상하다 외출이 두려워지기도 했다.
그런 탓에 아이와 처음 외출하고 나서는, 긴장 탓인지 몸이 아파 고생하기도 했다.
그래도 자주 나가다 보니 무릎도 더 튼튼해지고 체력도 차츰 늘어나며, 바깥에 적응하는 힘이 조금씩 생겼다.
처음엔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식당이나 엘리베이터를 탈 때나,
여자 화장실을 다니면 유독 느껴지는 시선들이 참 많았다.
머리카락이 있을 때 모자를 쓰는 것과 머리가 다 빠진 채로 모자를 쓰는 건 나한테는 엄청난 차이였다.
그것이 내 자격지심에서 비롯된 차이일지도 모른다.
타인의 시선을 한번 느껴보고 나니 나 또한 길이나 대중교통, 어디서든 아프거나 불편한 사람에게 얕은 시선을 던지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려 했고, 내 시선이 다른 사람에게 생채기 입히지 않게 더 신경 쓰게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만 닿는 줄 알았던 눈길들도
내 품에 안긴 아이에게 더 닿고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됐다.
조금씩 그런 시선에서 자유로워지고, 병든 환자의 모습도,
불편함도,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됐다.
환자가 되고 처음 느끼던 무력감도 이제는 새로운 일상에 녹아들고 있다.
한참 가지 않을 것만 같던 시간도 어느새 4개월 차.
남은 치료도 하나씩 지나가 몇 번의 항암과 수술만 남았다.
지금은 하루 대부분이 아이 중심으로 바뀌었고,
남편과 둘이서만 꿈꾸던 미래도
이제는 아이를 빼놓고는 아무 장면도 그릴 수 없게 됐다.
100일의 기적이 지나면
또 200일의 기적, 300일의 기적이 기다릴 것이다.
아이가 기어 다니는 시기가 다가오고,
곧 이유식도 시작될 것이다.
몸은 분명 더 힘들어질지 모른다. 그래도 그런 행복한 단어들을 하나씩 퀘스트 깨듯 풀어나가다 보면,
내년 아이의 첫돌에는 아이와 내가 또 얼마나 자라 있을지 궁금해진다.
아이의 두 돌,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내 삶에 남아 있는 기적 같은 날들은
모두 내가 살아남으며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걸 오늘도 다시 생각한다.
살아 있는 모든 시간, 순간이 결국엔 우리 가족에게 ‘기적’이라는 걸 절대로 놓치지 않으려 한다.
아픈 하루도, 힘든 순간도 결국 시간 속에 아름답게 남길 수 있기를 바라면서 오늘 하루, 살아 있음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