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만 손톱

by 사라남기

첫 항암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손톱에 검은 줄이 생기기 시작했다.

맨 처음엔 그저 흐릿한 줄이 하나 생기는 것뿐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까만 줄은 점점 넓어져 손톱 전체를 삼켰다.

손톱이 검게 변했다는 사실 자체도 낯설지만 어느 날부터 점점 손톱이 바닥에서부터 들려오기 시작했다. 지금도 손끝에선 전기가 오듯 저릿저릿한 감각이 계속해서 날 괴롭힌다.


차가운 컵을 들 때면 손끝이 얼얼해 오래 들고 있을 수 없고, 따뜻한 물을 만졌을 때는 한동안 화상 입은 듯 화끈함이 남는다. 손톱만 그런 게 아니라 항암 약이 남긴 근육통에 더불어 출산 후에 약해진 관절들엔 관절통까지 겹치니 육아와 항암 부작용은 그저 함께 견뎌내야 하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우선 손톱이 들려 힘을 줄 수가 없으니 분유통을 여는 일부터 버겁다. 분유포트를 조심스레 들어 기울일 때마다 손목이 욱신거려 천천히 움직이게 된다.

간신히 분유를 완성해 아이를 안아 수유시트에 눕히는 것, 아이가 분유를 먹는 내내 팔로 아이 몸을 받치는 일, 이처럼 별것 아닌 줄 알았던 수유도 숨을 몰아쉴 만큼 힘겹고 버겁다.


아이가 대변이라도 보면 마음이 비상이 걸린 듯 조마조마해진다. 아이도 면역이 약하지만, 암을 앓는 내 몸도 더 이상 강하지 않기에 언제나 위생장갑을 끼고 아이 변을 씻긴다.

손톱이 들린 틈으로 변이 스며들면 금세 감염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끼는 장갑이지만 아이를 씻기는 장갑 너머로 아기 피부를 더듬을 때면, 왜 이렇게 평범한 순간이 멀게 느껴지는 걸까 싶어 마음이 약해진다.


육아만이 아니다.

타자를 치는 지금도 한 문장 쓰려다 손가락이 불편해 계속되는 오타에 몇 번이고 썼다 지운다.

펜을 쥐고 글씨를 쓰는 건 이미 힘든 일이 되었고, 병뚜껑 따기, 약 봉투 뜯기, 단추 잠그기, 젓가락질, 끈 풀기, 계단 오르내리기… 예전엔 손쉽던 동작들 모두가 낯선 장애물로 변했다. 손톱이 아프니 그냥 ‘살아간다’는 일상이 매일같이 새로운 미션이 된다.


가끔 아무렇지 않게 입에 흥얼거리던 노래가 불현듯 머릿속에 맴돈다. ‘있을 때 잘해, 그러니까 잘해.’ 예전에는 별 뜻 없던 재미난 가사였는데, 몸이 아프니 저 가사만큼 정확한 말이 있을까 싶다.


아프고 힘들 때마다 다 나으면, 치료가 끝나면 꼭 해야지 하며 적어온 메모들이 있다.

1. 가족들과 여행 떠나기

2. 토할 걱정 없이 맛있는 음식 양껏 먹기

3. 수영장에서 하늘 보며 배영 하기

4. 모자나 가발 없이 외출하기

5. 건강한 손톱이 다시 자라면 걱정 없이 손톱깎기

6. 횡단보도 건널 때 빨간불로 바뀔까 조마조마하며 건너지 않기

7. 숨찰 때까지 달려보기

8. 카페에서 내가 내린 맛있는 커피 마시기

9. 맛있는 요리 해서 가족들과 지인들 초대하기

10. 친구들과 시원한 맥주 마시며 시시콜콜한 수다 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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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 놓고 보면 너무나 사소한 것들이다.

건강할 때는 건강이 소중한지 모르고

젊을 때는 그 시간이 얼마나 귀한지도 알지 못한다.

당연히 내 곁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은 언제까지나 함께일 거라 평생 이 소소한 일상들이 나를 지켜줄 거라 믿을 뿐이다.


나도 여느 날처럼 나의 내일도 어제처럼 평범할 거라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아프고 나니 언젠가 그 평범한 일상이 정말 특별하고 기적처럼 소중해졌다.

그리고 아파 보니 알게 되었다. 다시는 예전의 단순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한 번 멀어진 평범함은 영원히 다른 모습이 된다는 걸.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안다.

완치된 뒤엔 또 잊고 살아갈 것을...

언젠가 바쁜 반복 속에서 오늘의 감사함을 잊고,

아이에게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느냐며 소리치게 되는 그런 날이 또 분명 오겠지.

그럴 때마다 이 일기를, 이 소망의 메모를 다시 열어보고 싶다. 그리고 그런 평범한 일상이 빨리 날 찾아오길 바란다.


오늘도 손끝에 남은 저릿함,

검게 변한 손톱을 보며 또 한 번 다짐한다.

살아 있는 오늘.

내 곁의 평범한 일상과 이 자리, 이 순간을 끝없이 감사하며 살자고...

이 일기를 다시 펼쳐볼 그때도 나를 미소 짓게 하고 눈물짓게 하는 그 모든 일상의 조각들을 고마워하게 되길

온 마음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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