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술을 마신 건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1987년 봄, 나는 그때 반장을 하고 있었다. 방과 후 담임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그리고 나를 학교 근처 포장마차로 데려갔다. 나는 선생님의 이런 모습이 생소했고, 학교 바깥에서 선생님과 마주 앉은 것도 처음이었다. 반에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생겼나?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선생님은 말없이 나에게 소주를 따라주셨다. 생전 처음으로 받아보는 술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는 말간 소주가 담긴 소주잔만 쳐다보고 있었다. 이 술을 마셔도 되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곧이어 선생님이 바지 주머니에서 흰 봉투를 꺼내 나에게 건넸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어머니가 학교에 다녀가셨다, 너 반장 되고 나서 인사도 못 드렸다며 봉투를 주고 가시더라, 내가 너희 집 형편이 좋지 않은 걸 뻔히 아는데, 이 돈을 어머니에게 돌려드려라, 그리고 전해라, 너 맛있는 거나 사 먹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선생님은 술잔을 내 앞에 밀어놓으며 눈길을 피했다. 나는 찔끔 들이켰다. 눈가에 눈물도 찔끔 난 듯했다. 그때 술맛은 썼던 기억밖에 없다. 술을 마셨다기보다 맛만 봤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거다. 그날 나에게 남은 건 처음으로 마셔본 술맛이 아니라, 나를 생각하는 선생님의 마음이었다.
그 선생님의 이름을 아직도 기억한다. 국어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정답을 알려주려고 하기보다, 비판적인 사고를 키우는 데 중점을 뒀다. 교과서 외에 세상 돌아가는 얘기도 많이 해줬다. 성이 양 씨인 이런 선생님을 반 아이들은 ‘양야부리’라고 불렀다.(야부리는 거짓말을 뜻하는 속어였다). 선생님은 그 별명이 싫지 않은 기색이었다. 나는 양야부리 선생님의 평소 모습을 귀감 삼아, 교사가 되기로 결심했고 사범계열 대학에 진학했다.
그날 선생님은 아직 미성년자인 나에게 왜 술을 권했을까? 세상사에는 술이 필요함을, 선생님은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너도 이제 알 때가 되었다’는 무언의 가르침이었을까. 어머니가 두고 간 봉투를 다시 돌려줘야 하는 사정은 술이 필요한 일이었을까? 나는 잘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날, 선생님 앞에서 술잔을 들었을 때, 내 인생에서 술을 시작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것만 같았다.
그 술맛은 썼지만, 마음은 뭉클했다. 술과의 첫 인연은 선생님의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