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이 많은 진짜 이유

by 김주영

집에 펜(pen)이 많다. 헝겊 필통 세 개와 철제 필통 하나에 펜이 가득하다. 아마 내가 평생을 써도 다 못 쓰지 싶다. 내가 이렇게 펜이 많은 데에는, 이전에 다녔던 직장과 관련이 깊다. 나는 대학교에서 일했었는데, 맡았던 업무 중에 강의실을 관리하는 일이 있었다. 학생들 수업이 끝나면 강의실을 정리했다.


강의실을 정리하다 보면, 간혹 책상 위나 창가에 주인을 잃은 펜이 놓여 있곤 했다. 마치 길가에 떨어진 십 원짜리 동전처럼. 줍기도 뭐 하고, 주인을 찾아주기도 힘들고. 그냥 두자니 견물생심도 생기고… 그렇게 주인을 잃은 펜들을 하나씩 모으다 보니 어느새 펜이 쌓였다. 볼펜에서부터 연필, 샤프, 사인펜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만약 내가 펜의 주인을 꼭 찾아주겠다고 마음먹었다면, 방법은 많았다. 그날 수업 시간표와 출석부를 확인하여, 그 강의실에서 수업을 들은 학생들에게 일일이 연락해 펜을 찾아줄 수도 있었다. 혹은 강의실 칠판에 펜 사양과 함께 사무실 연락처를 남겨두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강의실에 굴러다니는 펜이라는 게 보통 모나미 같은 값싼 펜들이어서 굳이 찾아가려는 사람도 드물었을 것이다. 내가 펜을 찾아주느라 들인 시간 때문에 야근하는 날이 더 잦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나는 그 펜들을 닳도록 쓰기로 했다. 누군가가 애써 만들었을 펜이기에 더욱 소중하게.


그러고 보니 그 강의실에서 주인을 잃은 노트도 발견됐었다. 필기가 하나도 되어 있지 않은 새 노트였다. 그 노트는 지금도 내 글씨로 채워지고 있다. 주인을 잃은 물건이, 이렇게 내 삶으로 들어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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