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장례식에 아버지의 구두를 신었다.
아버지가 곧 돌아가실 것 같다는 동생의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차로 3시간 걸리는 본가로 달려갔다. 아버지가 요양병원에서 숨을 거둔 뒤, 나는 장례를 준비해야 했다. 장례 옷은 상조업체에서 준비해 준다는 걸 미리 알고 있어서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신발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마침, 본가에 아버지의 구두가 눈에 띄었다. 사놓고 한 번도 신지 않은 윤이 나는 검정 구두였다. 다행히 아버지의 신발 사이즈와 내 발 사이즈가 맞았다. 그렇게 아버지의 구두를 신고 장례를 치렀다.
장례식장 식당 입구에 조문객들의 신발이 어지럽게 놓였다가 비워지기를 반복했다. 조문객들의 신발이 거의 안 보일 무렵, 식당 입구에 벗어 놓은 아버지의 구두가 다른 조문객의 구두와 바뀌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뒤늦게야 알았다.
당연히 아버지의 구두일 거라 생각했다. 식당 입구에 홀로 남은 검정 구두를 신는 순간, 그것이 아버지의 구두가 아니라는 걸 눈치챘다. 괜히 죄지은 사람처럼 마음에 서늘한 바람이 일었다. 어찌 보면 아버지의 유품인 구두를 제대로 챙기지 못한 셈이었다. 내 잘못은 아니었으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 같은 가책을 느꼈다.
장례를 마치고 그 구두를 집으로 가져왔다. 나 말고 그 구두를 신을 사람도 없었고, 내가 이미 신었으므로 본가에 그냥 두고 올 수도 없어 챙겨 왔다. 그 구두를 볼 때마다 아버지의 무표정한 얼굴이 떠올랐다. 한결같은 머리 모양, 초점을 잃은 듯한 눈동자, 굳게 다문 입.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얼굴은 무표정에 가까웠다.
몇 달이 지나고 나는 그 구두를 버렸다. 아버지의 구두는 아니지만, 그 구두가 목에 걸린 가시처럼 계속 마음에 걸렸다.
*
내 마음은 오래전에 가족을 떠났지만, 자식으로서 도리는 책임과 의무로 남아 있다. 혈육이란 무엇일까? 가족이라는 틀에서 멀어질 때, 오히려 사랑에 가까워지는 아이러니를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