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이발사였다. 나는 머리가 길어질 때마다 아버지가 일하는 이발소에 갔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내 머리는 늘 아버지의 가위질을 거쳤다. 그래서 또래 아이들과 달리, 나는 아버지가 일하는 곳을 종종 갔고, 아버지가 일하는 모습도 직접 볼 수 있었다. 어머니도 한동안 아버지의 일을 도왔다. 아버지는 손님의 머리를 깎고, 어머니는 손님의 머리를 감겼다.
이발소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동작은 집에서와는 또 다른 고단함이 배어있었다. 능숙한 동작에 반복의 피로가 밴 듯했다. 손님들을 대하는 말투도 집에서 듣던 목소리와 미묘하게 달랐다. 높은 톤에 리듬감마저 느껴졌다. 손님들에게 미소 짓는 어머니를 보며, 어머니도 밝은 표정을 지을 수 있음을 새삼 느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곳에서도 집에서와 같이 무표정했으며, 말도 필요한 말 외에는 거의 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이발소는 오래된 상가 건물 1층에 있었다. 실내 한쪽 벽면이 거울로 채워졌고, 그 앞에 서너 개의 이발 의자가 나란히 줄지어 있었다. 이발 의자는 내 어린 몸집에 비해 컸으므로 아버지는 내가 오면 의자의 팔걸이에 판자를 걸쳐 놓았고, 나는 그 위에 걸터앉았다. 아버지가 내 목에 흰 천을 매어 몸에 두르면 나는 눈을 감았다. 곧이어 아버지의 가위질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의 손놀림은 능숙했다. 뒷머리에서 시작해 좌우 옆머리를 지나 앞머리까지 가위가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내 머리를 지나갔다. 아버지의 손에서 로션이며 샴푸며 비누 따위의 냄새가 풍겼다. 아버지의 체취가 전해졌다. 이때가 아버지의 손길이 나에게 닿는 유일한 순간이었다.
가위질이 끝나고, 눈을 떠 거울에 비친 내 머리를 보면, 늘 머리 모양이 마음에 들지 않아 실망했지만, 그 순간이 또렷한 기억으로 남은 건 아버지와 가장 가까웠던 시간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남들 머리를 깎아 번 돈으로 우리 식구를 건사했다. 아버지의 이발소는 아침 일찍 불이 켜졌고, 저녁 늦게야 불이 꺼졌다. 일주일에 수요일을 제외하면 매일 그렇게 했다. 그렇게 세 아들을 키우셨다. 말로 전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아버지의 근면함을 존경했다. 동시에,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멈출 수 없던 그 노동이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가족과 뗄 수 없는 노동에 대해, 그 운명과도 같은 굴레에 대해.
아버지 생전에 나는 아버지와 속 깊은 대화를 나눈 기억이 거의 없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를 잘 모른다. 나는 아버지의 노동에서 생계 활동 외에 다른 걸 보지 못했다. 아버지가 이발소에서 일하면서 오고 갔을 수많은 사연과 인연들, 남모를 감각과 기쁨들이 나는 궁금하다. 아버지와 나는 가장 가까운 가족이었음에도 왜 뒤늦게야 이해하려는 마음이 생기는 걸까?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에서 제대한 후, 한참 뒤에 아버지를 뵈었을 때, 아버지는 더 이상 가위질로 돈을 벌지 않았다. 미용실이 이발소를 대체할 무렵 아버지는 이발소 문을 닫았다. 대신 아버지는 건물을 지키는 경비원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아버지는 칠십 중반까지 일을 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노동이 내 머리에 닿았던 순간을 떠올린다. 아버지이자 노동자였던 그 손길과 동작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