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데믹 이후 한국의 또다른 위기
국가나 지역의 경제적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적용될 수 있지만, ‘저성장 시기’란 일반적으로 일정 기간 동안 경제 성장률이 평균 이하로 낮게 유지되는 기간을 의미한다. 보통은 GDP의 연평균 성장률이 1% 미만인 경우를 말한다. 투자의 감소, 소비의 감소, 생산의 둔화 등을 포함해 일반적으로는 과거에 비해 경제 성장(경제성장률) 속도가 더딘 상황을 의미한다. 저성장은 보통 경기침체와 연관되어 생각되지만, 단기적인 소비 및 투자의 감소보다는 조금 더 장기적인 경제적 추세를 뜻한다. 이 용어는 20세기 말부터 일본 경제의 위기를 설명하며 처음으로 사용되었으며, 그 이후에는 다른 국가들에서도 경제 성장률이 낮게 둔화되는 경우에 사용되기도 했다. 그리고 최근 엔데믹 이후 글로벌 경제 상황과 그 여파로 나타나는 한국의 또다른 위기로 지목되고 있다.
일본의 사례와 그리스 사태로 비롯한 EU의 경제 상황을 뉴스로 보면서도 그러한 저성장 시기가 우리나라에 닥쳐오리라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경제학자들은 코로나 팬데믹과 무관하게 최근 한국 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로 저성장 추세를 지목하고 있었다. 조장옥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가 2015년 한국개발연구원(KDI)에 기고한 칼럼에서도 일찌감치 이러한 문제를 꼬집은 바 있다. 조 교수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여러 나라의 경제사적인 증거로 보나 저성장은 우리의 숙명이고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모든 나라의 숙명”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국 경제가 저성장 장기 경로로 수렴하기 시작한 것은 1989년부터인데 많은 사람들은 한국이 영구히 고성장하리라고 착각하다가 1997년 말에 발생한 외환위기로 결정타를 맞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솔로우 모형’으로 유명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솔로(Robert M. Solow)는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려면 ‘외부로부터의 기술진보(exogenous technological progress)’를 통한 생산성 향상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기술 진보는 산업혁명 시기부터 전 세계 경제 성장을 견인하는 핵심 요소로 작동해 왔지만, 현재의 기술 혁신은 과거와는 달리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고 잠재 노동력을 끌어내기보다는 기존 산업과 노동력을 대체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특히 로봇, AI, 스마트폰과 같은 기술은 기존의 자원을 대체하여 기존 산업의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반면,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는 데는 제한적이다.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의 기술 혁신이 경제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변화시킬 것이다.
사회학자들은 갈수록 깊어지는 한국 사회 전반의 사회 갈등의 원인 역시 이러한 저성장 국면에 있다고 지목하기도 한다. 경제 주체의 가처분 소득이 줄어들고 그 영향으로 소비여력이 줄어든다면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새로운 투자와 고용을 창조하기 어렵다. 더구나 낮아진 성장 동력으로 인해 더욱 작아진 자원의 분배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고조된다면 저성장의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다. 2022년 전경련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의 갈등지수는 OECD 소속 30개 나라 가운데 3위로 최상위권이지만, 갈등 관리 능력은 27위라고 나타났다. 저성장 시대에 살고 있는 현재의 MZ세대들은 활발한 성장기 한국에 태어나서 상대적으로 손쉽게 취업하고 부를 축적한 부모세대의 공감능력 부족을 비판하고 있고, 반대로 부모세대들은 청년들이 고도로 발달한 한국에 태어나서 남들과 비교하는데만 열중하고 실제 노력은 하지 않음을 걱정한다.
한국 경제에서 거대한 축을 이루고 있는 기업들은 이러한 저성장 시기에 다양한 요인에 훨씬 크고 다양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인구 구조의 변화, 자원의 고갈, 기술 혁신의 둔화, 정부 정책의 실패 등이 있다. 저성장 시기는 불확실성과 더불어 기업들에게는 중대한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저성장 시기에 직면하는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새로운 전략과 대응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이다.
저성장 시기의 조직 위기관리에는 어느 누구보다 인사(HR)부서가 앞장서야 한다. 인사담당자들은 기업의 핵심가치를 지키며 조직의 생존과 성장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세부적으로는 채용 및 인재 관리, 조직 문화, 성과평가 및 보상 시스템 재조정, 그리고 변화 관리에 대한 노력을 통해 기업의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이끌어내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전사 HR 관리 차원에서 다음의 네 단계를 점검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ㆍ인재 관리에 대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저성장 시기에는 인력의 효율성과 생산성이 더욱 중요해진다. 따라서 인사부서는 철저한 성과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기업의 전략과 조화를 이루며, 적절한 인재를 확보하고 유지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탄력적이고 효율적인 채용 및 교육 프로세스를 수립하고 운영할 필요가 있다.
ㆍ조직 내 문화와 분위기를 조성하는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 저성장 시기에는 직원들의 동기부여와 창의성이 더욱 의존하게 된다. 인사부서는 리더십과 소통 강화를 통해 직원들의 참여와 협력을 촉진하며 긍정적인 조직 문화를 유지하고, 직원들의 역량을 증진시키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실시해야 한다.
ㆍ성과평가와 보상 시스템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저성장 시기에는 성과에 대한 기대는 더욱 높아지는 반면 한정된 자원이 문제가 된다. 명확하고 공정한 성과평가 체계를 유지하고 보상 시스템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직원들의 노력과 성과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보상함으로써 조직 구성원들의 동기를 유발하고 조직 외부의 인재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
ㆍ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변화 관리 능력 강화이다. 저성장 시기에는 경영환경이 불안정하고 불확실성이 높기 때문에, 조직 내 변화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이에 대응하는 능력을 보유해야 한다. 많은 대기업들이 핵심 사업군의 임원들과 주요 경영진 등을 포함한 리더십 개발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있는 추세다. 한편 변화 관리 전문가를 육성하기 위해 노력하거나 필요하다면 외부 컨설팅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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