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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람사진 Feb 20. 2018

가족사진

엄마의 얼굴






  사진 찍는다고 깝죽대며 다닌다. 서른 중반이 넘어서 하고 싶은 일이라고 찾은 게 사진이다. 이미 잘하는 사람 너무 많다. 어디는 안 그럴까. 

  엄마 사진이다. 작년 11월 말, 누나 생일에 고향인 아산에 내려가 찍었다. 홈 스튜디오 장비들을 챙겨가서 거실에 설치했다. 조명과 배경을 설치하는데 엄마가 아들을 불쌍하게 쳐다봤다. 매번 이렇게 힘들게 설치하며 촬영하는 줄 아셨는지. 눈치만 빠르지 살갑지 못한 아들은 활짝 웃으며 재밌다고 슬쩍 이야기하곤 엄마의 눈을 피했다. 

  우리 가족사진은 언제였을까. 5살이나 6살쯤 되었을까. 그러니까 31년 전.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릴 적 이야기다. 그 후 처음 찍는 가족사진. 뭐 한다고 여태껏 엄마 사진 한 장 남겨드리지 못했는지 사진을 찍는 내내 마음이 짠했다. 

  사진을 찍고 서울로 돌아왔다. 가족사진을 액자에 담을 계획이었다. 액자와 인화지를 주문했다. 거기까지였다. 그 짠한 마음은 딱 거기까지였다.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사진은 또 뒷전으로 밀렸다. 해를 넘기고 명절이 돼서야 집을 찾는 아들. 


'넌 뭐하는 녀석이냐.' 


  명절이 다가오는 며칠 전부터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생각이었다. 명절엔 사진들 드려야지 생각했다. 연휴가 시작되는 전날 짐방 구석에 쌓아 뒀던 액자를 꺼냈다. 그리고 그날 저녁 회사 PC 앞에 앉아 작년 가족사진을 다시 봤다. 사진 편집을 시작하려다 멍하니 엄마 얼굴만 바라봤다. 


'엄마가 할머니가 됐네.'


  세월이 고스란히 자리 잡은 엄마의 얼굴이 엄마가 살아온 삶의 무게를 말해 주고 있었다. 엄마 나이는 올해 69. 32살에 나를 낳으셨고, 내 나이 올해 37이다. 내 나이 먹는 것만 생각했지 엄마 나이는 생각도 못한 채 서른일곱 해를 살아왔다. 아빠가 세상을 떠난 게 1997년 2월. 그때부터 지금까지 공사현장 여기저기 페인트 칠하시며 벌어서 딸 하나, 아들 하나를 홀로 키워내신 엄마다. 아빠 사업이 힘들던 때부터 시작하셨으니 한 25년 경력자시다. 그 말은 엄마에겐 엄마의 인생이 없었다는 얘기다. 자식들 공부시키고 먹여 살리느라 사신 거다.

  조금이라도 젊은 얼굴을 선물해 드리고 싶었다. 사진을 보면서 엄마의 존재를, 젊음을 느끼게 해드리고 싶었다. 주름 하나하나 걷어내고 지워가는데 정말 미안하고 고맙고 그랬다. 아들이 찍어준 사진 기다리셨을 텐데 너무 늦게 가져다 드려 죄송한 마음이었다. 그렇게 편집하고 프린팅하고 액자 작업까지. 사진 받고 기뻐할 엄마와 누나를 생각하며 작업했다. 작업하는 내내 즐겁다가도 슬프기도 하고, 콧노래를 부르다가도 먹먹해서 울컥거리기도 했다. 

  연휴 시작. 가족사진 액자 A2 사이즈 8장을 차 뒷좌석에 잘 모셔서 고향으로 내려갔다. 즐거워하는 엄마의 모습에 앞으론 더 자주 찾아뵙고 더 많이 남겨드려야지 생각했다. 부디 이 생각과 마음이 다시 뒷전으로 밀려나지 않길 바란다.



위 사진은 8개의 액자로 프린팅 되지 않은 사진이다.

B컷이 아니다. 내 인생 최고의 A컷이다.

그냥 두고두고 나 혼자 간직하고 싶은 엄마의 얼굴이다.



사진 _ 2017. 11. 26. 아산 집에서.

글 _ 2018. 02. 19. 설 명절이 끝나고. 서울 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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