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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엠 Feb 15. 2022

수안보

수안보에 다시 오게 된 것은 어쩌면 내 낡은 기억을 되짚어보고 싶어서였을 거다. 서울 남부에서부터 길을 잡아 이천에서 내려 흰쌀밥을 푸짐하게 먹고. 그렇게 밤을 틈타 한반도의 중부를 향해 달렸다.


내 아버지는 소싯적 온천 개발 사업을 하셨는데 그때 수안보에 자주 내려왔었고. 당시 다섯 살 되었던 나도 아버지를 따라 수안보에서 잠시 지낸 적이 있다. 어른들이야 뜨끈한 온천이 좋았겠지만. 나나 내 동생은 탕에 몸을 담그는 것 자체가 엄청난 두려움이어서. 목욕탕이 떠나갈 듯 울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아버지보다 15살도 더 많은 아줌마가 되었고. 수안보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남편을 설득해 휴가를 위해 이곳을 찾아왔다.


아침 7시에 문 여는 노천탕에 입장해서. 섭씨 43도의 물에서 반신욕을 즐겼다. 2월에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린 적이 있었나. 함박눈이 산골 깊숙이 내리고. 수면 위는 찬 공기와 더운물이 만나서 만들어진 수증기가 바람에 따라 몰려다니는 게. 몽환적인 느낌마저 들었다. 이런 기분인가. 소위 신선놀음한다는 게. 인적도 없고. 나도 없고. 하늘과 산과 눈과 온천물만 있었다.


해외로 여행객들을 빼앗기고. 코로나로 인해 그나마 오시던 국내 관광객의 발걸음마저 뜸한 요즘이어서인지. 이곳 식당 사장님들은 귀한 손이 온것 마냥 우리를 어찌나 반갑게 맞아주시는지. 서울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환대라서. 황송스럽다.


여기 오기 전까지 우리 부부는 온천의 매력을 알 기회가 거의 없었다. 나야 그저 어릴 때 탑동길을 따라 다리를 건너 다녔던 유년의 기억을 좇아 수안보 이곳저곳을 걸어볼 요량이었는데. 짧은 방문으로 야외 온천욕의 즐거움에 눈을 떴다는 게 가장 큰 수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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