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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엠 Mar 16. 2022

용서

가위에 눌렸다. 돌진해온 차량에 치어 길바닥에 누워있는 꿈이었다. 사지가 내 맘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급기야 죽은 나와 마주했다. 공포 속에서 몇 번의 오한으로 몸을 떨다가. 잠을 깼다. 뒷 목이 땀으로 축축했다.


연극 <라스트 세션>을 본 뒤 C.S. 루이스 교수의 저서 <순전한 기독교>를 읽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인기 없고 지루한 덕목인 ‘용서’에 관한 챕터를 그냥 넘기지 못하고. 며칠에 걸쳐 곱씹으며 읽었다. 이기적인 나여서. 용서를 구해야 할 자가 아니라 용서를 해야 하는 자의 입장에서 읽혔다. 태어난 후 줄곧 나를 괴롭혀온 부모와의 불안정한 관계로 인해 어린 시절엔 저런 험한 꿈을 자꾸 꿨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내가 그때의 부모 나이가 되고 나니. 이젠 그냥 무뎌졌다고 생각했는데. 그 챕터를 읽으면서부터 내 마음의 지하실 깊숙이 먼지 쌓인 채 묻혀있던 감정들이 휘몰아치는 듯이 떠올라 나를 괴롭혔다.


이 책에서는 원수를 용서하는 방법 따윈 다루지 않았다. 그건 사람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정말 어려운 일이니까. 대신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용서하는 기본자세에 대해서는 일말의 가르침을 주었다. 나는 나의 과오와 거짓말, 시기와 질투, 미움에 대해서 양심의 잣대로 후회하거나 반성하거나 질책하면서도 쉽게 용서한다. 또 이세상에서 누구보다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이는 바로 나 자신이다. 이 책은 내게 하듯 같은 마음으로 용서할 상대를 바라보면 된다고 했다. 주기도문에 나오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를 수만 번 읊조리고도.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어떻게 용서하면 되는지 조차 몰랐다.


용서에 대해 생각하며  또한 혹시 누군가에게 용서를 구할 일을 하지 않았는가를 잠깐 되돌아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때마다 사과하고 충분히 용서를 받았다고 생각될 .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동안 선하고 좋은 분들만 만나왔구나.  이유가 아니고서는 망각이라는 방어 기제를 적극 활용하여. 내 죄를 가볍게 여기고 쉽게 잊어버린게 아닐까. 참으로 나는 내게 유리한 방법으로 살고 있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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