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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뚜라미 Nov 21. 2023

내가 싫어하는 것을 알게되었다

나는 예민하지만 나의 예민함이 싫지 않다.

내가 싫어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선을 넘어 부탁하는 것.

나를 다 안다는 듯 무례하게 넘겨짚는 것

둘러서 거절했는데 못 알아듣고 자꾸만 질척대는 것

상대방의 기분을 생각지 않고 본인의 마음만 털어내려는 대화

어깨가 잔뜩 긴장할 만큼 춥고 시린 날씨와 냉기

층고가 낮은 공간

마라와 고수의 향

얼굴에 본인의 기분을 여과 없이 모조리 드러내는 행위

타인에게 피해가 되어 특정 행위를 멈춰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했는데 당당히 거절하는 행동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으려는 강한 의지

씻지 않고 잠드는 것

동반자적인 연대감 없이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

잘못된 행동에 정당하게 사과하지 않는 것

욕설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것

상스러운 단어를 재밌다고 생각하는 것

목줄을 풀어놓은 대형견

타인의 아픔을 심각하지 않다고 깎아내리는 것

문맥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본인 얘기만 하는 것

나아질 방법을 여러 가지 알면서도 단 한 가지도 실천하지 않는 것 그리고 불평만 하는 것

혼자만 힘들다고 생각하고 일방적으로 위로받고 응원 받고 싶어 하는 것

정서적 유대감 없이 본인에게 따뜻함을 전해달라고 강요하는 것

개 오줌 냄새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     


써놓고 보니 나는 무던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최소한 아등바등 노력은 하며 살고 있다. 내가 싫어하는 것들을 타인에게 하지 않으려고 열심히 선지키며 많은 생각들을 하느라 꽤나 삶이 복작거리고 피곤하다. 그렇지만 같은 결의 사람들을 만나면 서로는 전혀 피곤치 않고 오히려 안도감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요즘 점점 더 내향형의 사람으로 변하고 있지만 우르르 만나는 것을 즐기던 십 수년 전보다 헛헛한 마음은 덜하고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다는 감정이 자주 샘솟는다. 크게 자극적인 이슈는 없지만 무척이나 안정적이고 공고한 관계 속에서 내 일상은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롭고 따스하다.  

    

이젠 나랑 맞지 않는 사람들과 시간낭비하고 싶지도 않고 서로 간에 안 맞는 신호를 주고받으며 감정을 소모하고 싶지 않다. 내가 나를 잘 파악하게 되니 삶이 좋은 쪽으로 단조로워졌으며 마음이 건강해졌다. 여행을 엄청 좋아하는 줄 알았지만 여행보다 그저 내 루틴대로 일상을 살아내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것을 깨닫곤 약간 스스로 충격이었지만 그 깨달음조차 감사하다. 요즘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내려고 부단히 애쓰고 있다. 호불호의 경계가 애매해져서 이런들 저런들 크게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없던 욕구 부족의 상태에 균열이 조금씩 일어나는 중이다. 기분 좋은 균열이다. 나를 들여다보고 스스로가 좋아하는 것을 하나씩 발견해내는 노력. 그 어떤 노력보다 값지고 짜릿하다. 사회가 원하고, 남들이 좋다고 하여 대리만족하듯 나와 타자가 구분되지 않던 ‘좋음’ 이라는 감정에서 오롯이 나의 선호를 남겨두고 있다.      


싫어하는 것을 꼽을 때보다 쉽지 않다. 그만큼 오랫동안 나를 돌보지 않았다는 반증 같아서 씁쓸하기도 하지만 내 자신과 하루씩 가까워지는 느낌이라 시간을 거슬러 나를 참으로 사랑하던 십대로 돌아가는 여정에 있는 것 같다.      


누가 뭐래도 나를 가장 잘 이해해주는 건 내 자신이고 끝까지 사랑해서 아껴줄 사람도 나다. 많이 사랑해줘서 그 사랑이 흘러넘쳐서 타인에게도 꿀물처럼 달게 흐르는 날까지 부단히 나를 들여다봐주자. 나의 하루가 궁금하고 기대된다. 


지금 나는 꽤나 긍정적으로 행복하다.          

나는 예민하지만 예민한 내가 싫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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