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질친구도 모셔왔어요
휴직을 한지 이년이 넘었다. 여기서 그다지 교류가 많지 않은 분들은 내가 원래 전업 주부인 줄 안다. 어쩌다가 알게 되면 '일하는 네 모습이 상상이 안 가~'라고 하기도 한다. 외국엄마,한국엄마 모두. Stay at home Mom의 현재진행형인 지금도 나는 나 스스로의 전업생활이 여전히 낯설고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느낌이다. 교류의 대상이 거의 전업엄마들이라는 것도 매우 생경하고, 엄마들 대화로 채워지지 않는 일 얘기라던지, 랜덤하게 마주치던 다른 지평의 대화들이 그립다. 한국에서는 알고지내는 아이 친구 엄마가 한명도 없을 정도로 아이로 이어진 관계에 무심했는데 지금은 그게 내 인간관계의 전부라고 할 정도로 상황이 바뀌었다. 한국에 있는 미혼, 기혼 친구들 할 것 없이 '쉬는 네가 부럽다, 너같이 살고 싶다'고 하는 통에 그렇게 편하지만은 않은 내 감정이 잘못된 것만 같았다. 초반에는 최소한 매우 가까운 몇 명에게라도 미주알고주알 인간관계의 고충이며, 스스로 가치를 증명하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자책감, 외로움, 불완전한 매일의 감정들에 대해 토로했지만 이젠 입을 다물었다. 다 처한 상황과 겪고 있는 일상들이 다르니 그냥 내 객관적 상황만을 보고 긍정하자라는 다짐과 함께.
불편한 관계들에 대한 고민, 그리고 파티와 소비 이외에는 오직 자연과 운동만이 남는 이분법적인 삶에서 나는 집을 도피처로 삼아 점점 더 작게 웅크려왔다. 조금만 집 밖을 나서고, 내 목소리를 내어 사교하여도 곡해되고 오해받고 어느새 내가 무서운 가해자가 되는 듯한 느낌이 몇 번 반복된 후 나는 극도의 혼란스러움에 빠졌다. 밝은 기운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웃는 낯으로 대하는 나를 쉽게 대하고, 교류의 기간이 굉장히 짧음에도 내 삶을 다 파악했다는 듯 멋대로 판단하는 말들에 상처받았다. 유년기를 제외하고 스무 살 이후로 나는 나의 이성과 정의와 생각의 결이 비슷한 사람들과 용케 어울리며 지냈구나 라는 놀라움 섞인 탄식도 나왔다. 집에서 교류 가능한 어른이라곤 남편뿐인데 바쁜 일 탓에 평일엔 겨우 하루 식사를 함께 할 수 있다. 또 대화를 한다 해도 너무도 다른 세계관의 만남이라 괜한 싸움으로 이어질까 봐 부부의 평화를 위해 깊은 대화를 자제하는 편이다. 어느 나이쯤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인간관계가 급격하게 협소해진 언젠가부턴 내 마음의 어려움을 밖으로 꺼내서 나눈다 하여 해결책이 생기지 않는다는 걸 알곤 입보다는 마음으로 고민을 휘적인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와 남편을 각각 그들의 목적지로 무사히 보내곤 급격히 몰려오는 졸음과 피로함을 이겨내고 홈트레이닝을 하려고 한다. '한다'가 아닌 '하려고 한다'인 것은 매우 의지적이었던 몇 달 전에 비해 겨울날씨와 외로움, 우울이 똘똘 뭉쳐 나를 자꾸만 이불속으로 향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하루 루틴을 자신 있게 선언할 수가 없다. 나약한 내 모습이 부끄럽기도 하고. 심연으로 자꾸만 굴러 떨어져서 젖은 솜뭉치처럼 무거운 몸이 꼴보기 싫었다. 그 몸을 일으켜보려고 최대한 지양하는 공복 커피를 한잔 마셔보았지만 며칠 안돼서 큰 효력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아이를 위해, 가족을 위해,라는 셀프 슬로건으로 베이킹을 하고 반찬을 만들어보았다. 베이킹은 홍콩 와서 처음 해보는 것이어서 도구도 재료들도 낯설었다. 또 한식에 비해 적당히, 대충 하다가는 홀딱 망치기 일쑤였기에 긴장하면서 하나씩 해나가야만 했다. 긴장하고 집중하면 숨을 참는 버릇이 있는데 베이킹파우더 따위가 뭐라고 3g 넘을까 봐 초집중하고, 바닐라 익스트랙을 실수로 후두둑 떨궜을 때는 순간 화도 났다. 그런데 컵케이크부터 머핀, 파운드케이크, 우유식빵, 밤식빵, 호두과자, 마들렌, 초코칩쿠키를 넘어 인절미나 경단까지 하나하나 완성해 나가면서 깨달았다. 계획형 인간인 나에게 베이킹은 오히려 잘 맞는 취미일지도 모르겠다고. 아이와 남편이 집을 뜨자마자 블랙커피 반 잔을 마시곤 휘리릭 레시피를 검색한 후 아침 댓바람부터 그냥 냅다 베이킹을 시작한다.
한번 시작하면 여느 때처럼 휴대폰을 쥐고 의미 없이 시간을 낭비하지도 않고, 잡생각으로 우울해지지도 않고 초집중하여 그럴듯한 완성품을 위한 또 다른 도파민이 마구 뿜어져 나온다. 휘스크로 재료를 섞고, 어깨가 나갈 정도로 손반죽을 하게 되면 내 몸이 살아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온다. 어깨는 좀 아플지언정 그 기분이 너무나 좋았다. 온라인 세상과 내 감정에 지배되지 않는 온전한 내면의 시간과 만난 듯한 느낌. 그리고 각종 유해한 과자나 간식 대신 이 건강한 간식을 오후 하원길에 아이에게 건네주는 달달한 상상. 체중조절에 진심인 남편의 오후 간식으로 내가 만든 빵과 과자를 예쁘게 포장해서 건네주는 것도 꽤나 뿌듯하다.
그런데 한참 동안 이어진 나의 베이킹 여정이 오전의 게으름은 떨쳐줬지만, 내 존재가치를 증명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더 크게는 내가 쏟는 시간이 그만큼 의미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냥 시간을 버리고 싶지 않아서, 식충이처럼 장보고, 음식하고, 집에서 애만 보는 엄마이고 싶지 않아서 지속했을 뿐.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구독하고 있던 어떤 외국 유튜버가 미니멀리즘 실천 브이로그를 잔잔하게 찍은 것을 보았고, 갑작스러운 깨달음이 머릿속에 내리꽂듯 휘잡고 들어왔다. 비록 내 일상의 목표가 미니멀리즘으로 온전히 향하고 있진 않았지만, 자투리 야채나 과일로 어떤 빵을 만들 수 있을지 연구하고 설탕과 밀가루를 최소화하여 맛있게 만드는 방법을 골똘히 생각하는 그 흐름 자체가 나와 내 가족을 돌보는 일상이었다는 것. 내 감정의 허함을 채우려 시작한 일이지만 이 노력 덕분에 아이는 시판과자를 거의 사 먹지 않고, 평일 5일은 온전히 집밥으로만 저녁식사를 한다. 이런저런 요리 레시피를 뒤적이느라 쇼츠와 영상의 노예가 된 것처럼 속상한 마음도 있었지만, 덕분에 가족들에게 야채와 단백질을 최선의 노력으로 먹이고 있다는 것에 조금은 자부심을 가져도 되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내가 알아주는 나의 노력. 전업주부가 살아남으려면 그런 자부심과 내 일상의 가치를 내가 먼저 인정해줘야 한다는 생각의 전환이 나를 갑자기 반짝이게 했다.
그전까지는 이런 지리한 일상과 비생산적인 주부생활의 연속이 너무 지루하고 슬프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복직을 종착점으로 하루하루 얼마나 더 가정을 돌보는 지킴이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을지 진심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복직하고 또 다시 스트레스에 굴복하여 무절제하게 짜고 매운것들, 그리고 맥주, 와인같은 유해한 것들에 스스로를 절여버리지 않으려는 준비단계라고나 할까. 결혼하고 처음 이뤄낸 무해하고 정돈된 집밥 라이프를 고스란히 워킹맘의 삶에 가져갈 수 있도록 카운트 다운 세듯이 하루하루 단련해 간다고 생각하니 한껏 쳐져있던 마음이 벌떡 일으켜졌다. 그토록 애정하는 블랙커피로도 안되던 긍정의 각성이 전구불 들어오듯 파바박 튀는 순간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홍콩 와서는 처음 한 두 번 빼곤 바질페스토를 사본적이 없다. 아이 도시락과 저녁식사에 빈번하게 쓰이는 페이스트라 직접 바질을 재래시장에서 사서 만들어 신선한 페스토를 먹는다. 좋은 올리브유와 한국에서 공수한 잣 등을 넣고 갈아내면 금세 만들어지는 초록의 바질페스토. 한국에서와 달리 유러피안 허브나 야채들이 종류도 엄청 많고 한 줌의 바질도 2천 원도 안 되는 가격에 구할 수 있다. 루꼴라나 버터헤드, 미니양배추들도 너무 저렴해서 고민 없이 집으며 소박한 부유함을 느낄 수 있는 홍콩 웻마켓. 그런데 그보다 더 저렴하게 꽃시장에서는 천오백 원 정도에 바질잎이 가득한 화분을 살 수 있다. 식물을 잘 키워낸 이력이 별로 없어 내내 고민만 하다가 이번에 키워보기로 결심하고 작은 바질 친구를 하나 들였다. 딸아이는 민티, 줄리아 등의 이름을 지나 '바질리아 Basilia'라는 예쁜 별명을 지어줬다. 본인 숙제는 잘 까먹으면서도 바질리아 물주는 건 잊지 않고 내내 챙기는 아이의 행동을 보며 집에 살아있는 생명을 들이는 건 이토록 따뜻하고 생기 있는 것이구나를 느꼈다. 잘 보듬어주고 싶다는 마음, 잘 보듬기 위해서 내내 상대를 생각하고 움직이는 행동력. 이 모든 것이 따스하다.
괴랄한 도파민에 절여진 것 같은 나의 일상이 싫어서 도망치려고 시작한 베이킹이지만 내가 그 과정자체에서 힐링을 얻는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도파민 세상에 존재하는 잔잔한 브이로그 덕분에 무기력을 떨칠 수 있었다. 그리고 두 해를 돌아왔지만 내 일상이 가치 있음을 세차게 긍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 많이 외롭지 않고 지루하지 않다. 앞으로 나아갈 다른 힘이 마음속에 또렷이 길러지고 있음을 스스로 느낀다. 무기력함을 떨치려고 온라인과정을 등록한 것이 3월부터 개강한다. 비싼 비용이라 망설였던 필라테스도 조심히 시작해 보았다. 놓아버렸던 데일리 요가와 아침 산책도 다시 재개했다. 자리에 앉아 무심히 키려던 영상 대신에 고독한 독서로 회귀했다. 정말 놀라운 것은 내 마음이 일으켜지자 아이를 육아하는 마음가짐과 배우자를 사랑하는 마음, 우리 가족을 단단하게 묶는 마음이 모두 최대치로 커지고 있다. 아침에 굿모닝을 외치며 가족들을 안아 깨우고, 배웅도 마중도 달려 나가 허그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게 수많은 자기 계발서들이 말하는 '나를 먼저 사랑하라'의 효과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는지는 확신이 없으나, 최소한 내가 살고 있는 현재의 일상과 시간이 더없이 소중해졌다. 하루 중 운동하는 오십 분이 별거 아니라고 치부하던 것도 건강이라는 최우선 가치 앞에서는 굉장히 의미 있어졌고, 좋은 재료로만 만든 반찬 하나도 (비록 나만 먹는다고 해도) 대단한 한식대첩이 아니라 해도, 누구에게 보여주는 삶이 아니기에 큰 만족감을 가져다준다.
나를 더 아끼고 사랑해야지. 그리고 내가 일구고 행동하는 시간들을 가치 있게 생각해야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아. 누가 나를 어떻게 판단하든 그건 크게 중요치 않아졌어. 내 사람들은 여전히 나를 응원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느릴때나 빠를때나 우울하거나 기쁜 모든 순간에 기다려주니까. 그리고 내가 잘 알고 있잖아. 누구보다 건강하고 맑게 살아가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