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 고시' 다큐멘터리를 보고 분노한 서울대 졸업생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7세 고시'의 현실을 다루는 다큐멘터리를 며칠 외면하다가 자꾸 알고리즘으로 뜨길래 조금만 보다가 끌 마음으로 시청했다. 알고 싶지 않은 현실, 한국에 돌아가면 내 아이가 부닥쳐야 할 시린 환경을 미리 보고 걱정에 휩싸인 채로 살고 싶지 않았다. 유명 영어학원 레벨 테스트를 보기 위해 한날한시에 전국의 수백 명 아이들이 부모손에 이끌려 길거리에 서있는 모습으로 다큐는 시작된다. 추운 겨울이어서 더 그런 걸까. 모자이크 처리되어 얼굴빛을 명확히 볼 수 없었지만 아이들은 떨고 있고, 몇몇은 소리 내어 울었고 그 와중에도 엄마들은 밑줄 그어 가며 정확히 풀고 실수하지 말라 아이들을 단도리하였다. 만 7세에 불과한 꼬마들이 마치 고등학교 때 강남 대성학원 앞에 줄 서있던 재수생들 같았다. 꽃 피우기도 전에 패배할 미래를 기다리는 느낌으로.
고등학교 1학년 말쯤 배울 법한 수능 수준의 문제를 아이들에게 주고, 단 몇십 분 내에 에이포 한 장 가득 에세이를 적어내라는 학원. 카메라가 훑고 지나간 문제들 속에서 우연히 inferred라는 단어를 보았다. 옆에서 함께 보던 남편이 물었다. 7세 애들이 infer이란 단어를 알 수 있냐고. '맞는 답을 추론하라고 설명해 줘야겠지?'라고 답해놓곤 우리 둘 다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추론이 뭔지도 알아야 한다는 거네, 라며. 껄껄.
영어학원에 이어 수학학원 입시모습도 다를 바 없었다. 두려움을 갖고 보기 시작했던 마음은 묵직한 답답함을 지나 괴기스러움으로 변했다. 중간중간 나오는 학부모들의 인터뷰는 그들이 아이들을 사랑하는 무게와는 별개로 너무 가벼워 보였다. 자녀 교육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폄하나 비하하고 싶진 않다. 그렇지만 조금만 이성적으로, 객관적으로 아이의 나이와 성장을 염두해서 생각하면, 과도하게 어려운 학습목표와 학습시간, 최상위 학원을 다니기 위해 투자하는 또 다른 시간들이 얼마나 아이를 고통 속에 몰아넣는지 알 텐데. 여러 교육학자들과 저명한 소아정신과 의사가 아이들의 발달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외쳐도 '다들 하려고 안달이니까, 미리 선행해서 나쁠 거 없으니'라는 빈약하고 가벼운 이유로 전문가들의 의견을 뒤로하고 불안을 조장하는 학원의 손을 잡는다는 게 나로선 약간 무섭게까지 느껴졌다. 그렇게 공부시켜서 의대반에 넣고 의사가 되었으면 좋겠다면서 왜 서울대의대 소아정신과 교수님 말씀은 들리지 않는 건지.
이제 막 걸음마를 떼고 오감을 이용해 뇌의 신경가소성을 늘리며 무한한 잠재력을 폭발적으로 늘려나가야 할 아이들을 책상에 찍어 누르듯 가두는 것이 정말 옳은지 판단하지 못하는 걸까. 요즘 초등학교에서는 등수를 매겨주지 않아서, 대체수단으로 내 아이의 전국적 등수를 가늠할 수 있는 학원을 보낸다는 말을 듣고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왜 중학생도 아니고, 유년기부터 등수 매겨지는 삶을 살아야 하는 걸까. 과연 학교에서 등수를 매겨준다고 그 부모들의 불안이 사라져서 소수의 영재들만 소화가능하고, 그들에게 특화된 사교육에 모두가 혈안이 된 이 상황이 나아질까. 오십 분 정도 되는 영상을 보며 나는 괜스레 살갗이 시렸고, 왜 이렇게까지 한국 교육이 무시무시한 낭떠러지로 무너졌는지 슬퍼서 눈물이 배어 나왔다. 나보다 다혈질인 남편은 옆에서 자꾸 욕을 하며 미친 세상 탓을 했다. 특정 교육 집단과, 학원 원장들과, 개별 학부모를 번갈아 욕하는 남편의 분노를 지켜보면 과연 누구 탓을 해야 할지 갈피조차 잡지 못했다.
한국에서의 안정된 생활을 누구보다 강력하던 원하던 남편에게 해외로 잠시라도 나오자고 한건 당연히 아이 때문이었다. 애초에 내가 원하던 건 이민이었지만 의견의 합치를 이루지 못한 채로 잠시만 나와있는 걸로 극적 합의를 이뤘다. 남편은 학령기에 한국에서 공부한 기간이 매우 짧다. 입시를 위해 목줄 조아매고 달려야 하는 중, 고등학교기간엔 해외에 있었다. 대학 역시 미국에서 다녔다. 내가 한국 교육 현실에 대해 걱정하고 아이의 미래에 대해 염려하면 늘 '외국이라고 뭐 여유로운 줄 아냐, 오히려 외국이 더 심하기도 해'라는 답변을 했다. 당연히 어느 나라 입시나 쉽지는 않을 거고 때론 요구기준이 더 다양해서 부모가 신경 써서 챙길 것들이 더 많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러 입시에 가까워질수록 코르셋 조이듯이 공부시간과 학습량을 극악에 가깝게 무한대로 늘려가고, 체육이나 음악활동은 당연히 배제한 채 책상에 붙박이처럼 앉아 새벽까지 독서실에서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는 걸 경험해보지 못했던 남편을 보며 나는 홀로 조용히 걱정을 삭였다.
나는 소싯적에 공부할 만큼 해봤고, 학업적으론 부모님이 적당히 만족할 만큼의 수준까지는 이뤄봤던 나는 내 아이의 입시는 지금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때가 되면 방향을 제시해 주고 여러 선택지에 대해 펼쳐줘야 하는 건 맞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 아이는 만 7세이고, 수명을 백세로 보면 태어난 지 고작 7년이 된 솜털 같은 생명체다. 아이에게 7세 고시 같은 시험과 그 준비공부를 견딜 것을 강요하기보다는 그림이든, 운동이든, 학령에 맞는 수학문제든 본인이 목표를 설정하고 풀어내는 의지와 작은 성취감들을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부모들은 '우리 애가 아무 데도 재능이 없고 평범하면요?' 반문하기도 한다. 애들은 소수의 몇 명을 빼곤 대체적으로 평범한 게 진실이다. 평범한 아이들의 학습적 어려움을 조금씩 보조해 주는 것이 사교육의 바른 쓰임이다. 저 위의 부모들이 말하는 것처럼 아이가 평범한데, 목줄 잡아끌고 7세에 1800개 단어를 외우게 시키고 현직 서울대생들도 30점~ 70점을 맞는 수학문제를 풀게 시킨다고 그 아이가 영재가 될 순 없다. 영재들은 아무리 가리려고 해도 두각을 나타낸다. 그리고 왜 내 아이가 평범하다는 걸 인정하지 못할까. 부모자신이 너무 뛰어난 영재였어서 평범한 자녀를 답답해하는 건 심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대다수의 부모들은 아이와 마찬가지로 평범하다. 내 아이가 평범하다면 그 평범한 속에서 도 정서가 단단하고, 행복을 스스로 찾을 수 있게 자세히 아이를 들여다봐주는 게 필요한 거 아닌가.
2005년에 고등학교 3학년이었으니, 입시를 치른 지 20년이 지났다. 지금 만 7세 부모들의 대부분이 나와 비슷한 시기에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거다. 입시와 멀어지는 20년 동안 고등학교 친구들의 삶도 다양한 궤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봤다. 그런데 출신대학과 (심지어 대학을 안 간 친구도 있다) 행복한 삶은 정말로 다른 차원의 문제다. 대학만 가면 모든 우환과 걱정이 종료되고 신세계가 펼쳐지지 않는다는 걸 모두가 경험했다. 심지어 나는 서울대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건강을 잃거나, 이른 나이에 배우자와 헤어지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정신질환을 얻게 되거나 하는 이유로 우울과 고통 속에 있는 이들을 너무 쉽게 목도할 수 있었다. 서울대법대를 수석으로 입학한 나의 친구가, 너무도 전도유망해서 우스갯소리로 대통령 비서실장 감이라고 했던 나의 소중한 친구가 로스쿨 재학 중 스스로 세상을 뜬 이후로 나는 내가 아이를 낳으면 절대로 그 아이와 나를 분리해서 키우기로 다짐했다.
나 역시 쉽지 않았다.
회사를 다닐 땐 시간이 부족해서 오히려 무심하게 아이의 발달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런데 휴직을 하고 아이 옆에 붙어있게 되니 학습적으로 욕심이 자꾸 나기 시작했다. 선행도 아니고 동생들이 하는 건데 너는 왜 이걸 못하는지,라는 말을 꺼낼 때도 있고 삼킬 때도 있었다.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려고 한국에서 잠시 도망쳐왔으면서 한국의 빠른 교육을 기준으로 애를 자꾸 속단하려 하는 나 자신을 누르고 철저하게 아이의 눈높이를 인정하기로 했다. 우리 딸은 체조를 사랑하고,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 수학은 하루 연산 15~20문제 정도가 집중해서 풀 수 있는 최대치다. TV를 좋아하지만 책 읽는 것도 즐긴다. 친구들이랑 노는 게 제일 즐겁다. 그래서 학교 방과 후 체조수업과 합창단 수업을 넣어주었다. 수학은 여전히 싫어하긴 하지만 학교 진도에 맞춰서 기본량만 한다. 사고력 같은 건 따로 하지 않는다. TV는 일요일에만 보고 주중에 쉬는 시간엔 책을 읽고 엄마와 책 내용에 대해 얘기한다. 한글을 어려워해서 가끔 시간이 나면 한국 교과서에서 지문을 따온 한글 문제집도 두 페이지 정도 한다. 한글책은 엄마와 문단을 나눠 함께 읽는다. 요일에 따라 테니스, 피아노, 태권도, 뮤지컬 등등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활동을 넣기도 빼기도 한다. 아이가 다른 친구와 놀기로 미리 약속하는 경우에는 튜터링 시간을 바꾸거나 취소하고 언제든 놀 수 있도록 해준다. 저녁 먹기 전엔 아파트 놀이터에 가서 30~40 분이라도 뛰어놀게 한다. 그리고 정서적인 휴식과 신체 성장을 위해 취침은 매일 8시 반에 하는 걸 규칙으로 한다.
저 모든 것들을 관할하고 스케쥴링하는 것은 쉽지 않다. 조금씩이어도 영어, 수학 숙제, 일기 쓰기 등의 학습은 루틴처럼 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잠도 일찍 자야 하니. 작은 성취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고 내내 응원하는 것도 부모로서 참 에너지가 쓰이는 일이다. 그렇지만 무언가를 배우고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 자체가 재밌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아이가 다니는 영국계 학교에서는 일기나, (에세이라고 할 수 없는) 짧은 글들을 첨삭하거나 스펠링 고쳐주는 것조차 하지 말라고 부모들에게 말한다. 파닉스를 배우기에 그들이 책을 읽으며 스펠링을 습득해갈 것이고, 아이가 쓰는 단어나 쉼표 하나에도 행간의 의미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훼손하지 말라는 의미다. 우리 아이를 포함하여 같은 반 영미권 출신 친구들도 한 바닥 '에세이'는 쓰지 못하지만 아이들은 스스로 책을 만드는 활동 등을 통해 그림도 그리고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가끔 아이와 친구들이 만들었다는 joke를 들으면 정말 기발하고 재밌다. 학교에는 교과서도 숙제도 없지만 매일 리딩 수준에 맞는 책을 한 권씩 읽어가야 하고, 도서관데이에는 도서관 책을 학년에 따라 몇 권씩 빌려와서 읽고 반납한다.
처음에는 여가시간에 틈만 나면 TV를 보상처럼 보여달라고 했었는데 이젠 알아서 책을 여러 권 쌓아두고 잠을 미룰 정도로 독서를 한다. 책을 읽을수록 아이의 세상이 무한히 확장하고 있는 것을 대화하면서 여실히 느낀다. 수학문제를 풀다가 갑자기 잡다한 종이와 물감, 펠트지가 들어있는 미술상자를 꺼내 본인이 디자인한 옷을 보여주기도 하고 탐정놀이 키트를 만들어서 학교에 가져가기도 한다. 책을 읽다가 나온 인형의 집이나 건축물들을 만들겠다고 신발상자를 뜯어서 색칠하고 창문을 만들고 색지를 붙인다.
한국 교육의 관점에서 이건 문제를 풀다가 하는 '딴짓'이다. 아이의 마음속 목표와는 다르게 결과물이 소소해서 쓸데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아이가 저런 것을 한다고 할 때 숨을 한번 고르고 숙제 양을 대폭 줄이거나 다음날로 과감히 넘긴다. 내일은 온전히 집중할 것을 아이와 약속하곤, 아이의 딴짓들을 옆에서 열심히 보조한다. 종종 아이에게 왜 잠을 안 자냐고 물으면 내일은 또 무슨 재미난 일을 할까 궁금해서 못 자겠다고 한다. 그리곤 자기 전에 늘 Best day ever!!!이라고 외친다. 그래 그거면 됐다. 패션 디자이너, 토이디자이너, 작가, 펫 헤어디자이너 겸 수의사, 건축가 등등 하고 싶은 게 넘치는 딸아이의 행복이 부럽다. 어른이 되면 힘들고 지칠 때가 참 많은데 지금 맘껏 놀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스스로 해보며 행복한 자아를 길러나가도록 나는 옆에서 응원하려고 한다. 내 꿈 아니고 아이의 마음이 닿는 어떤 미래. 그것의 종착점이 평범한 회사원이거나 기성세대가 명확히 정하지 못하는 일을 할지라도 행복한 어린이가 행복한 어른으로 자라리라 믿는다.
어떤 블로그 이웃님이 '부모가 아이를 찍어 눌러서 무언가를 하기보다는 응원단장이면 족하다'는 논지로 쓰신 글을 보았다. 귀 얇은 내가 꼭 새겨야 할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이는 평범할 수 있으며 종종 특이한 것에 비범할 수 있으나 그 모든 빛은 아이가 비출 것이고 나는 옆에서 열렬한 응원단장으로 아이를 지지하겠노라. 아이가 나에게 엄마 꿈은 뭐냐고 물은 적이 있다. 움.. 내 꿈도 행복한 어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