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간의 빨강 파랑 마음이 보라색 우울을 만들었다

한국은 멀리서 그리워할 때 좋은 존재

by 김뚜라미

한국 대선을 앞두고 오래전 내놓았던 집이 두 시간 만에 갑자기 팔렸다. 얼떨결에 팔고 나니 집을 빨리 다시 사야겠다는 조급함이 몰려왔다. 토지거래허가제는 해외에 있는 우리의 발목을 잡았고 애매한 법령 해석에 대해 여러 구청에 문의를 넣었다. 혹여나 비슷한 사례가 있을까 싶어 부동산 카페에도 글을 올려봤다. 밤 12시가 다 되어 글을 올렸는데 올린 지 3분도 안되어 대선이 끝나면 매주 집값이 억 단위로 오를 거라는 댓글들이 경쟁하듯 줄줄이 달렸다. 사실 어디서 살아야 할지 정하지도 못했다. 다시 일하는 엄마가 되고, 아이는 지금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학교에서 올 것이다. 사교육을 최대한 피하고 싶은데 아이를 맡길 곳은, 아이의 시간을 채울 것은 사교육 테두리뿐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자연과 가깝고 고즈넉한 지역들을 온라인 세상에서 감탄하며 둘러본다. 동시에 아이가 도보로 움직일 수 있는 학군지 한복판의 매물들을 보고 또 본다. 다른 의미로 너무 감탄스러운 가격에 좌절감이 깃든다. 대출이자만 수 백을 지출하고, 수십억 대의 집에 겨우 낑겨살아도 행복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하루 종일 지역을 탐색하고 부동산과 연락을 하며 새벽까지 집을 찾으면서 두통이 몰려왔다. 마음은 화가 났다가 땅에 처박힌 것처럼 짜증이 났고 어느 순간 무력해졌으며 이내 사는 것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골몰했다. 삶을 살아내는 방식과 어디에 사는지에 대하여.


딸아이가 제일 행복해하는 미술시간

갑자기 팔려버린 집 때문에 영영 미루고 싶었던 불안한 시점이 너무 급히 다가와버렸다. 나는 다시 불안과 긴장이 가득한 한국으로 가고 싶지 않다. 비교와 깎아내림이 일상인 곳에서 아이를 풀어놓고 키울 자신도 없다. 사교육의 끝판왕인 중국과 인도 엄마들 사이에서 갑자기 발현된 아이의 틱을 고치고 , 아이의 자율적인 성장가능성을 믿고자 눈 질끈 감고 아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것만 하게 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을 존중하고 그 속도도 충분하다고 나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갈 생각만 하면 들숨이 끊어진 사람처럼 나부터가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대학과 취업 이런 건 차치하더라도 아이의 유년기와 자라나는 그 모든 시간이 자연스러웠으면 좋겠다. 그리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하고 싶은 걸 해도 괜찮고 실패해도 괜찮다는 걸 가르쳐주고 싶다. 무엇보다 지금처럼 하교 후 매일 놀이터에서 땀 흘리며 놀고 9시 전에 읽고 싶은 책 읽다가 잠드는 일상을 지켜주고 싶다.


학군지 근처에 거주할 것인가, 사교육을 얼마나 시킬지의 선택지에서 한국 부모는 절대 자유로울 수 없고 일하는 엄마들은 더욱 그렇다. 내가 아이의 빈 시간을 채워줄 수 있는 물리적 여력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일을 하더라도 아이를 주변 도움 없이 키울 수 있는 여건의 나라들을, 그리고 그곳에 살기 위해 여러 직업들을 한 달간 울면서 뒤졌다. 어떤 이들을 대선 결과에 따라 이민을 가네 마네 했지만 나에겐 빨강, 파랑 누가 되어도 최소한 내 아이가 커가는 기간 동안 큰 틀에서의 변화는 없어 보였다. 혐오가 혐오를 낳고 갈라 치기를 하고 경쟁에서 이겨내야만 하는 공간. 이곳에서 나이에 맞게 수업을 잘 받고, 심지어 우리 아이보다 선행을 하다가 한국으로 돌아간 가정의 여러 아이들이 학교에서 연락을 받았다. 학교 선생님에게 ‘학원을 좀 더 보내셔야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평범한(?) 프랜차이즈 학원들에서도 수준미달로 거절당했다. 시험도 교과서도 없지만 자기 속도에 맞게 읽고 쓰고, 표현하며 매일이 즐겁고 행복하다던 내 아이가 하루하루 메말라갈 현실이 눈앞에 보였다. 수학 선행이 안된 아이, 영어 글쓰기를 문법과 스펠링에 맞게 기계적으로 적어내지 못하는 아이, 그래서 사다리의 맨바닥에서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을 아이. 눈이 질끈 감기고 눈물이 흐른다.


‘어디에 살지’의 문제는 어떻게 살건지에 대한 가치판단과 닿아있다. 혼자 발버둥을 치며 매일의 공부를 이어가며 직업, 학위, 영주권 등에 대한 검색을 한 달 동안밤낮 없이하며 나는 정말로 미쳐갔다. 한국에서 교육받은 기간이 짧은 남편과의 의견차로 모든 것을 아무 지지 없이 홀로 이끌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나를 짓눌렀다. 틈만 나면 남편과 말다툼을 했고 정말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사람을 만나지도 않았다.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최선을 다해 쌓아 왔던 한국에서의 경력은 더욱 무가치해졌고 아직 젊다고 생각하고 몸을 갈아 넣어 파이팅 해볼 마음은 영주권 점수배점을 보며 무너져갔다. 그 와중에 소소하게 돈 벌어보겠다고 한 것이 독이 되어 돈도 잃었다. 온 세상이 내가 하려는 것들을 막아서는 느낌에 어젯밤에는 금주 다짐을 어기고 혼자 술을 마셨다. 잠자리에 누워 답답함에 갑자기 목놓아 울었다. 자다 말고 놀라서 위로하는 남편의 맥락 없는 ‘괜찮다’는 말을 날카롭게 밀쳐냈다. 대안 없이 반대하는 남편이 나의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느껴져서 얼굴만 봐도 야속했다.


오늘 아침 피폐한 모습으로 아이를 배웅하고 잔뜩 힘 빠진 채로 독일에 오래 살고 계신 고모랑 정말 오랜만에 연락했다. 독일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신 고모가 마지막에 보낸 메시지가 이제 그만 보라색 우울에서 빠져나오라는 말처럼 느껴졌다.


사는 건 어디나 어려워. 그렇다고 고민만 하고 살 일은 아니지. 네 스스로 어렵게 만드는 부분도 많을 거야. 그러니 쉽게 좀 느긋하게 삶을 바라보는 걸 연습해 봐.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 아무리 곰곰 생각해서 내린 결정도 늘 맞는 법이 없더구나. 삶은 오류 투성이랄까. 지나고 나면 그런 게 보이더라고. 그러니 좀 느긋해 지려고 거리를 두고 보길. 우울증도 네가 만드는 거니.


돌아가지 않겠다는 마음에 매몰되어 미쳐가는 내 모습이 문득 굉장히 못나보였다. 핏기 없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남은 하루들을 맘껏 즐기며 보내는 지인들과 달리 마지막일지 모르는 이 자유조차 어둠 속에서 보내고 있는 내가 참 나답다 싶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유쾌하지 못한 팔자를 스스로 만들어온 것 같다. 아이와 나의 지속가능한 행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이 모든 파이팅을 외쳤는데 정작 어둠의 기운을 아이와 가족에게 잔뜩 끼치고 있었다. 이 마음이면 어디서도 행복치 못할 거 같았다.


여전히 답을 찾지 못했지만 누구를 원망하거나 상황을

부정하는 방향은 아니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운동을 하면 기분이 나아질까 싶었는데 요가를 하다 말고 또 엉엉 울었다. 그러고 보니 24시간째 밥을 먹지 않았다. 빨강 파랑 요동치는 마음에서 벗어나서 얼른 노란 희망을 만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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