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함이 허공을 떠돌때

살다살다 로봇에게 잡아먹히지 않을까 공포를 느끼는 순간이 오다니

by 김뚜라미

지난 5월 아이를 데리러 학교에 가는 길에 남편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고 그로부터 2시간 만에 한국에 있는 집이 팔렸다. 언젠가는 갈아탈 집이라고 생각했지만 너무 빨리 진행된 탓에 몇 주 동안 머리를 싸매고 온라인 임장을 하느라 신경쇠약에 걸릴 지경이었다. 학령기 아이를 데리고 살 맞벌이 부부에게 맞는, 적당히 쾌적하고 너무 비좁지 않은 집을 찾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학원가와의 근접성부터 투자가치까지 조건으로 덕지덕지 붙어서 좀비같이 지친 나를 덮쳤다. 결론은 풀 대출을 당겨서 부부가 마이너스에 또 마이너스 삶을 버틴다고 해도 둘 모두가 만족할 만한 집을 찾을 수 없다는 것. 거기에 토지거래허가제 덕분에 요주의 구들은 아예 거래도 불가했다. 열심히 직장을 다니며 큰돈 허투루 쓰지 않고 육아와 생활에 찔끔 씩 쓴 게 다인데 손에 쥔 목돈도 호기롭게 꺼내 쓸 저축도 많지 않았다. 마침 미국 부동산을 알아보던 게 있어서 덜컥 상담을 했다. 마침 딸아이 방학에 맞춰 뉴욕으로 썸머캠프를 간 김에 세 식구가 일정을 쪼개 열 개 정도의 매물을 보았다. 자산가들이 하는 해외부동산 투자에 비하면 장난같이 보일 금액이었지만 우리에겐 큰 금액이었다.



평생 동안 쓰지 못하고 만져보지도 못할 돈을 집에 깔아두고 마이너스의 현금흐름으로만 몇십 년을 허덕이며 살 자신이 없었다. 요즘 뜨는 미국 주식이나 ETF 투자수익률에는 비할 바가 아니지만 달러 현금흐름을 만들고 싶었고 매달 차곡차곡 달러 월세를 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부정적으로 생각하던 남편을 설득하여 결국 투자를 시작했다. 그런데 투자를 소개해 준 법인에서 떠들었던 원스톱 투자는 온데간데없었고 변호사, 회계사, 중개인을 다 내가 일일이 컨택하고 소통해야 했다. 챗GPT가 아니었다면 교포거나 외국인인 저들과 지금까지 업무를 이어오지 못했을 거다. 남편과 고민하던 기간이 길어서 오퍼 날짜가 아슬아슬했다. 급한 출발이어서 너무 마음이 긴장되었지만 잘 될 거라고 생각했다. 중간쯤 왔다고 생각했는데 법인을 세우고 계좌를 만드는 것이 난항이었다. 우리가 한국에 있지 않기도 하고, 미국인이 아닌 비거주자라는 문제 등으로 신경 쓸 일이 너무 많았다. 그런 문제를 홀로 헤쳐 알아보고 해결해 가는 사이 트럼프와 새로 뽑힌 대통령의 대 환장 콜라보로 환율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남편에게 미리 환전해놓자고 했었지만 금리 인하하면 환율이 내려갈 거라는 말만 되풀이했던 탓에 거의 몇천만 원의 손실을 봤다.



미국을 방문해서 일 처리를 진행해야 할지, 한국 방문으로 끝날 수 있을지 답변을 기다리다가 뉴욕행 비행기표도 70만 원 가까이 올랐다. 하루가 다르게 환율이 오르고 주가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마음이 복잡했고 이 투자가 과연 잘 한 선택인지 너무도 심란해졌다. 결과만 생각하면, 원래의 의도를 생각하면 옳아 보였지만 나에게는 단 하나 쉬운 과정이 없었다. 이미 계약금을 보내버려서 되돌릴 수도 없지만 그냥 이돈을 s&p 500에나 넣을 걸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환차익을 좀이라도 줄여보려고 원래는 지수 투자만 하다가 미국 주식 개별 종목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AI, 양자컴퓨터, 희토류, 전력망, 로보틱스.. 등의 미래 자원들과 에너지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튜브에 여러 경제 명사와 투자 전문가, 과학자들의 강연을 연속으로 들으니 내 알고리즘에 양자컴퓨터가 꽉 찬 날도 있었다. 처음에는 엔비디아 팔란티어 테슬라 등등 유명한 기업들이 대체 뭘 하는지 알게 되어서 공부가 되어 좋기도 했지만 부의 격차가 점점 심화된다는 것에 과도하게 몰입이 되어 나의 현재 상황이 더욱 옥죄듯 느껴졌다. 우리 집 판 돈을 더 유익하게 썼어야 하는데 내가 잘못 판단한 게 아닌가 하면서 가지고 있는 예금과 적금들을 충동적으로 주섬주섬 정리해서 내가 공부한 것들의 세상으로 뛰어들었다. 그 금액이 내 인생을 좌지우지할 만큼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무언가 빠르게 수익을 내고 싶다는 과욕이 계속 올라왔다. 미국 가는 비행깃값 정도만, 환차손 정도만 상쇄하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하면서도 한탕을 계속 기대했다. 이렇게 과열되는 내 마음이 무서워졌다.



마음이 과열되어도 휴직 중이라 시드머니가 거의 없어서 그건 현실의 벽이 막아줬다. 그런데 더 무서운 건 미래의 우리 삶이었다. 여러 전문가들이 예견하는 미래에 살고 싶지 않아졌다. 나는 지금도 충분히 불편하지 않게 일상을 누리고 있는데 왜 자꾸 뭔가 퀀텀점프해서 멋진 신세계를 구축하려는 건지 두려웠다. 전력이 부족해서 서로 싸우고, 광물을 파대고, 슈퍼컴퓨터를 넘어서는 인공지능을 향해 계속 연구가 진행되는 게 사람을 위한 방향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인공지능이 결국 로봇으로 발현되고 그 로봇들이 내 일자리를 대체하는 걸 모자라 아예 무가치한 인간으로 전락시키는 미래가 섬뜩했다. 어쩌면 인간과 동물의 살덩이가 그 로봇들을 가동하는 연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세상이 오는 건 아닐까라는 상상에 다다른 순간 거실 한복판에서 갑자기 몸이 바들거렸다. 원치 않는 미래가 성큼성큼 내 현실을 좀먹는 기분이 들었다. 황급히 고개를 들어 창문 밖에 잔잔한 바다를 봤다. 자연은 그대로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그대로인데 무언가 마음이 땅을 온전히 짚고 있지 않는다는 생각에 휴대폰을 던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우리 모두가 고유의 다채로운 멋을 뽐내며 재밌게 사는 상상을 하는 료님의 책을 한 장씩 읽으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인간의 멋이라는 게 남아있을 자리는 있을까, 계속 무서워하면서.



귀가한 딸에게 엄마를 꼭 안아달라고 했다. 엄마가 괜히 불안하니 용기 내라고 한마디 해달라고도 부탁했다. 일곱 살의 걱정 없는 해맑음에 무작정 기대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랬더니 딸이 갑자기 안방 창가로 뛰어가더니 나를 급하게 불렀다. 우리가 매일 창밖을 보자고 약속한 오후 6시 10분. 창밖에는 일곱 빛깔 무지개가 떠있었다. 엄마 예쁘지? 응 정말 예쁘다. 얼마 만에 보는 무지개인지 참 반가웠다.


KakaoTalk_20251014_232222619.jpg 침실에서 보이는 고운 무지개. 이건 진짜 무지개.


불안함의 진동이 어디서부터 울려대는지 모르겠지만 무지개 사진을 보며 꾹꾹 눌러본다. 공포심이 강화된 요 며칠 SNS에 올라오는 포스팅 중에서도 AI가 작성한 것 같은 유려하고 감상적인 글들이 눈에 띄었다. AI가 만든 영상은 티가 나서 마주치면 바로 넘겨버릴 수 있었지만 글들은 도입부만 봐선 알 수 없었다. <어쩔 수가 없다> 영화 리뷰부터, 오랜만에 만난 가족과의 해묵은 갈등, 정치에 관한 제3자로서의 견해 등등 일상과 생각을 담은 글들이어서 읽다 보니 무언가 너무 매끄럽고 모두가 백일장에 나온 것 같은 투 머치 완벽함이 느껴졌다. 번뜩 이상한 생각이 들어 프로필을 눌러보면 특별할 것 없는 중년의 필자들인데 거의 수준은 유명 평론가나 지식인의 글과 유사했다. 한참 읽어 내려가다가 느낌이 이상해서 마치 잘 꾸며진 아파트 화단에서 죽은 동물의 사체를 본 것처럼 소스라치게 놀라며 페이지를 황급히 벗어나는 경우가 잦아졌다. 내가 본 글들이 정말 AI로 작성한 글인지 확실하지 않다. 그렇지만 이젠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방법조차 없어졌다는 사실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그래서 내 불안과 공포의 진원지가 밝혀지지도 않고 기분도 마음도 정리되지 않았지만 부리나케 지금의 감정을 글로 남긴다.



요동치는 자본의 격변에서 영리하게 투자하지 못해 도태되고, 로봇에게 일자리를 뺏겨서 기초 노동을 하며 삶을 연명하거나 누군가들의 전망처럼 인공지능 시대의 농부가 되어 살지도 모르더라도 나는 글을 쓸 수 있으므로 나는 여전히 살아있음을 드러낼 수 있다. 일단은 다음 주에 예정된 뉴욕 일정을 잘 마치고 일상으로 복귀하자. 무심히 흘러가는 하루가, 두려운 미래를 단단하게 마주할 지면 위의 오늘이 더없이 소중해졌다. 이럴 때일수록 나의 중심을 잡고 루틴을 되찾자. 무슨 직업을 갖더라도, 나이가 많건 적건, 내가 속한 곳에서 선량하고 다정한 모습으로 고유하게 존재할 나 자신, 다가올 미래를 너무 무서워 말자.



keyword
작가의 이전글태풍도 가십이 되는 도시, 홍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