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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어리 Feb 02. 2022

나는 고양이었소이다

부모님에게는 내가, 나에겐 고양이가

3△번째 음력설을 맞이한 올해도 현재 시점으로 솔로에 미혼이다. '올 가을에는 결혼하라'라고 신정에 말씀하셨던 부모님이 결혼 이야기를 안 하셨다. '본가 방문 전에 반드시 알아야 할 99가지 질문 리스트'를 숙지한 것 치고는 뜻밖이었다. 밥 먹으라는 엄마 말씀을 듣고 내방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가 순간 멈칫했다. 손목에서 시계를 끌러서 가방에 넣었다. 애플 워치 화면으로 설정해놓은 고양이 사진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평화로울 때 전쟁을 대비하라. 아버지는 내가 고양이를 키우는 사실을 모르신다. 알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부모님과 함께 있을 때의 내 모습은 때로는 회사에서보다도 부자연스럽다. 점심시간이 되면 어떻게든 혼자 있을 시간이 있는 직장과 달리 부모님 댁에서 숨을 곳이란 오로지 오래된 내방뿐이다. 좀처럼 밟을 일이 없는 눅눅한 장판. 컴퓨터는 7~8년 전 모델이라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침대 위에는 이불도 없다. 경기에서 서울은 금방이라는 핑계로 잠을 자고 가질 않으니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추억 속 집이라기보다는 자취방에서 자취방까지의 여정 중에 잠시 경유하는 대합실 같은 느낌. 쪼그려 앉아서 폰을 보다가 거실로 나왔다.


고백하건대, 편한 마음으로 부모님과 식사했던 적이 거의 없다. 적어도 몇 번 정도는 있지 않을까?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건 하나 있다. '밥상머리 교육'은 인류 문명 최악의 문화 중 하나다. 어른은 아이를 가르치고 올바른 길로 이끈다. 좋긴 한데 그게 꼭 밥 먹을 때 여야 하는지 묻고 싶다. 90세 노인에게는 60세 자녀도 '아이'라는 사실에 좌절한다. 부모님의 밥상머리 교육도 앞으로 30년, 40년은 계속되리라. '해야 하는 일들'과 '하면 안 되는 일들'에 관한 인풋, 그리고 인풋. 수많은 질문과 검증 속에서 부모님께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았다간 훈육이 연장된다는 걸, 고통스러운 시간이 길어질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가 나와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전혀 관심 없는 TV 쇼의 소음과 두 사람의 목소리가 뒤섞인 공간 속에서 밥을 삼키고 소화했다. '우리는 너를 사랑한다'는 말씀도 들었다. 어쩐지 숨 막혔던 신정 때와는 사뭇 분위기가 달라서 희한했다. 사랑받는 자녀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종종 깜빡한다. 내 마음은 학업과 취업 스트레스에 어깨가 짓눌리고 아팠던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대입 다음에는 편입, 다음은 취업, 그다음은 더 좋은 데로 이직하라는 사랑의 잔소리.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이야기.' 잘 되지 않을 때가 많아서 괴로웠던 이야기들. 10년이 지나서야 내려놓으셨나 보다. 결혼 하나만 더 포기하시면 내 인생이 잘 풀릴 것 같다.


'유튜브 온리 라이프'를 사는 나로선 본가에서만 볼 수 있는 TV가 생경하다. 특히 명절만 되면 전국의 비상한 어린이들을 모아놓고 보여준다. 트로트와 90년대 가요를 잘 부르는 아이는 언제나 인기 만점. 올해는 용돈을 받으면 주식을 산다는 금수저 어린이가 엄마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무엇도 어린이스럽지 않은 아이들이 찬사를 받는다. 어릴 때부터 특별한 재능 따위 없었던 나는 '솔로 지옥'에 나오는 엄친아로 자라지 못했다. 부모님께 차 한 대, 집 한 채쯤 선물할 능력이 있으면서도 본인이 좋아서 결혼을 미루는 '나 혼자 산다' 멤버도 아니다. 소파에 앉아 TV 속 출연자를 날카롭게 평가하는 부모님을 보며 생각했다. '이런 나를 사랑한다고?'


명절이란 이유로 평소에 볼 일 없는 TV를, 평생 터놓고 대화해본 적 없는 부모님과 붙어 앉아 보자니 몸이 버틸 수가 없다. 결국 다시 방으로 숨었다. 마음 편히 쉬는 것도, 일손을 돕는 것도 아닌 상태로 몸을 웅크리고 폰이나 보고 있자니 마음만 불편했다. 집에 두고 온 고양이 사과가 눈에 아른거렸다. 국제 공인 불효자협회가 있다면 올해도 자격 갱신은 무리 없을 것 같다. 자식은 자녀를 낳아봐야만 부모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는데 안타깝게도 앞으로도 당분간 그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요원한 일 같다. 어쩌면 나에게 고양이가 소중하듯이 부모님에겐 내가 고양이 같은 존재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애정을 듬뿍 담아 안으면 싫은 티를 팍팍 내며 버둥거리는 고양이 사과. 침대에 누워서 배 위에 올려놓으면 손을 놓기가 무섭게 달아나는 제멋대로인 성격이다. 오랜만에 집에 온 아들에게 이것저것 알려주고 물어보고 말을 걸고 싶은 부모님을 피해서 제 방으로 달아나는 나도 어디 내놓기 참 부끄러운 성격이다. 사과나 나나 본인 힘으로 자기 살 집을 못 사는 것도 비슷하지 않은가? 남은 삶을 행복하게만 살았으면 한다는 부모님의 말씀을 들으며 작은 방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사과를 잠시 떠올렸다. 어쩌면 나도 부모님에게는 사과처럼 존재만으로 사랑스럽고 힘이 나는 무언가 일 수도 있다. 진짜로 그렇다면 조금 행복할 것 같다. 부모님이 더 이상 아들 걱정 않고 여생을 즐겁게 보내시길 바랄 뿐이다. 사과와 부모님 모두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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