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의 공간만큼 관계에 대해 성찰하기 좋은 곳이 없다. 1인이 막 자기 공간을 갖게 된 시기라며 더더욱 그렇다. 단 1인을 위한 공간은 혼자의 정체성을 탐하며 자기를 찾을 수도 있고, 자유로이 자기 안으로 침잠할 수도 있다. 때로 자기를 방치할 수도 있다. 나아가 관계를 방치할 수도 있다. 나와 나 또는 나와 타인과의 거리를, 관계를 공간을 계기로 놓아버렸다가 다시금 내 앞에 놓아두는 게 자유로운 게 1인의 공간이다.
누군가와의 관계는 서로에게 일정한 책임을 지운다. 그런 책임이 다정하게 느껴지거나 반가울 때도 물론 있지만, 부담 역시 일으키기도 한다. 나와 내가 아닌 사람은 필연적으로 다른 부분이 있다. 서로 다른 면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고, 더 많은 가능성을 낳기도 한다. 때로는 더 많은 피로와 함께.
혼자의 공간에는 방치할 자유가 있다. 누구도 또는 무엇도 책임지지 않을 권리, 나조차 책임지지 않고 내버려 두고 방치할 자유가 있다. 서로 다른 부분을 애써 맞추지 않고 혼자만을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기적이거나 무책임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때로 놓아버릴 때 얻을 수 있는 게 있다. 관계도 놓아버릴 때가 있다. 나와의 관계, 다른 이와의 관계, 관계 그 자체에 대한 고민과 책임을 놓아버릴 때 의외로 관계를 다시금 돌아볼 수 있는 여유와 편안함이 들어선다. 어떤 관계에 대한 방치와 사색을 겸할 수 있는 게 혼자의 공간이다.
1인의 생활에 넉넉한 규모의 집이지만, 굳이 4인 혹은 조금 붙어 앉으면 6인은 둘러앉을 수 있는 지름 80cm 동그란 테이블과 여분의 의자를 들인 건 독립한 지 1년이 지나서였다. 그새 많은 ‘나’와 ‘다른 이’를 놓아버렸다가, 놓아두길 반복했다. 거리 두기와 거리 좁히기를 반복하며 내게 맞는 거리를 찾았다. 내게 적절한 관계망과 거리에 대한 탐색을 끝내고, 내 공간에 나 아닌 누군가를 들여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동그란 테이블과 여분의 의자를 들인 이유였다.
꽤 적절한 근거를 들어 테이블과 의자를 들이려는데, 뜻밖의 반대에 부딪혔다. 반대의 진원지는 합리적이고도 고지식한 아빠였고, 반대의 이유는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으로 공간을 좁히지 말라는 것이었다. 다음 이사에 짐이 늘어 힘들 거라는 것도 이유였다. 아빠는 도리질과 손 사래질로 새살림을 들이는 걸 강하게 반대하고 반대했다. 그것들을 어디에 둘 것이며, 괜히 들여놓았다가 필요 없는 걸 금방 깨달을 텐데 그럼 그 짐을 어떻게 건사할 것이냐는 거였다.
생각이 있었다. 계산을 다 해둔 터였다. 이미 마음에 드는 테이블과 의자를 골라두었고, 아빠의 반대만 아니었다면 일찌감치 결제를 클릭했을 거였다. 아빠가 배송만 늦추었다. 결국 그 테이블을 잘 샀고, 이렇게 두니 공간이 오히려 넓어 보이고 참 유용하구나, 라고 말하며 아빠는 본인의 반대와 오판을 무마했다.
그렇게 내 공간에 다른 이 들어설 자리가 생겼다. 마침 코로나19 펜데믹이 한창이었다. 함께 모일 상대적으로 안전한 공간이 필요했고, 나는 가까운 이들과의 만남을 혼자의 공간으로 조금 옮겨왔다. 내 안전과 즐거움을 위한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매주나 매달은 아니었지만, 때때로 좋은 계절이나 즐기기 좋은 날을 잡아 특별한 콘셉트(딸기 철, 여름 휴가철, 할로윈, 크리스마스 등)를 잡아서 홈파티를 열곤 했다. 내가 무언가 장식하거나 소품을 두는 걸 좋아하고, 무엇보다 집을 청소하고 꾸미는 게 일상이었고, 사람을 좋아하는 까닭에 가끔 여는 홈파티는 피로하지 않을 수 있었다.
또 뭐든 일단 내가 편한 방식으로 홈파티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초대하는 사람들에게 홈파티 날짜를 설문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내가 편한 날짜를 정하고, 친구들이 그 날짜에 맞춰주었다(날짜를 넉넉히 잡는 센스는 발휘했다). 콘셉트도 내가 정했고, 친구들이 그에 맞춰주었다(참 좋은 친구들을 뒀다). 장식하는 것과 청소하고 정리하는 것은 좋아하지만, 요리하는 것을 즐기지 않기에 요리하지 않았다(배달 음식을 예쁘게 담아서 내놨다).
음악과 조명, 콘셉트를 준비하고 이걸 같이 즐길 수 있는 사람들과 내 공간을 즐겼다, 넓혔다. 그리고 공간이 열리자 관계가 확장됐다, 연결됐다, 열렸다. 그렇게 내 공간이 나의 관계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