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령이었다.
이 이야기는 한 인간이 영혼마저 타들어 가는 것 같았던 '하얀 지옥'에서 살아남은 기록이자, 우리 모두가 겪었을지 모르는 상처에 대한 고백입니다. 이것은 한 간호사의 개인 이야기이지만, 어쩌면 당신의 거울일지도 모릅니다. 사람을 살리는 가장 순결한 흰색이, 어떻게 영혼을 태우는 가장 뜨거운 불길이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녀는 꿈과 존엄이 잿더미가 되는 것을 보며, 그 모든 비극이 본인 탓이라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은 단순한 피해의 기록이 아닙니다. 잿더미 속에서 가장 소중한 친구의 비극을 마주하고서야, 어떻게 다시 일어서려 했는지에 대한 처절한 싸움의 기록입니다. 한 간호사의 이야기는 동시에 이 세상 속에서 우리 모두가 어떻게 피해자가 되고, 또 가해자가 되어가는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가 당신에게 작은 위로와 용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당신이 걷고 있는 그 길 위에서, 결코 혼자가 아님을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빳빳하게 다림질된 보라색 간호사복이 처음 살에 닿던 서늘한 감촉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아직 풀이 죽지 않은 새 옷감에서 나던 낯선 소독약 냄새와, 움직일 때마다 뻣뻣하게 스치던 옷깃 소리까지도. 그것은 단순한 옷이 아니었다. 지긋지긋한 입시 경쟁과 고된 실습의 시간을 함께 견뎌낸, 빛나는 미래에 대한 맹세의 증표였다.
거울 앞에 선 우리는, 어른의 무거운 옷을 입고 어설픈 흉내를 내는 두 소녀 같았다. 어색하게 서로를 바라보다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꿈을 이뤘다는 벅찬 환희인 동시에, 이제 정말 어른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서늘한 공포가 뒤섞인, 위태로운 웃음이었다.
가슴에 달린 명찰의 무게는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다. 그 무게를 느끼는 순간, 십 년 전 추운 겨울, 중환자실 복도에서 하나의 캔커피를 나눠 마시며 우리가 함께 다짐했던 그 밤의 공기가 되살아나는 듯했다. 그날의 다짐이 오늘, 내 이름 석 자가 새겨진 명찰이 되어 가슴에 달렸다. 그 무게는 언젠가 나를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되겠지만, 내 가장 소중한 친구를 깊은 어둠 속으로 끌어당기는 무거운 앵커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그때의 우리는 알지 못했다.
"희진아, 우리 진짜 간호사 된 거 맞지? 꿈 아니지?"
수현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명찰을 만지작거렸다.
"그러게.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 우리, 끝까지 함께 그런 간호사가 되자."
우리는 서로의 손을 꼭 잡았다. 그러나 우리는 몰랐다. 이 유니폼이 우리의 꿈을 지켜줄 갑옷이 아니라, 우리를 집어삼킬 거대한 불길의 시작이라는 것을. 우리가 함께 걷기로 맹세했던 이 길 위에서, 가장 먼저 불에 타 재가 될 것이 바로 우리의 맹세라는 것을.
영혼마저 재가 되는 '하얀 지옥'의 문턱에서, 우리의 약속은 이미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