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블루스 1편 - Part13

1억 5천만원의 무게

by sarihana

13장. 두 번째 배신


박진영 기자의 기사로 세상이 뒤집혔다. 사회적 공분이 일면서 마침내 경찰과 검찰은 합동 수사팀을 꾸려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체포된 조직원들은 굳게 입을 다물거나 ‘꼬리 자르기’를 시도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단순한 전달책일 뿐이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거대한 먹이사슬의 꼬리만 잡은 셈이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더 결정적인 증거가 필요했다. 지우는 박 기자의 도움을 받아 외장하드의 암호화된 파일들을 하나씩 해독해 나갔다. 며칠 밤낮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씨름했다. 희망과 좌절이 교차하는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그러던 중, 그는 수많은 코드와 파일 속에서 유독 눈에 띄지 않는 '개인장부_23'이라는 폴더를 발견했다.


포기하려던 순간, 문득 아주 오래전 윤호가 술에 취해 말했던, 어릴 적 키우던 강아지의 이름이 떠올랐다. '마루'. 그는 떨리는 손으로 그 이름을 타이핑했다. '딸깍'. 폴더가 열리는 경쾌한 소리가 마치 거대한 비밀의 문이 열리는 것처럼 들렸다.


그 안에는 엑셀 파일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파일을 여는 순간, 지우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화면에는 윤호가 직접 관리한 것으로 보이는 피해자 명단과 '특이사항'이 빼곡히 정리되어 있었다. '신혼부부, 대출 많아 급함', '독거노인, 자식 연락 두절', '사회 초년생, 부모님 지원'… 사람들의 가장 깊은 약점과 개인 정보들이 냉혹한 단어로 기록되어 있었다. 그저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삶의 취약한 부분들이었다. 지우는 마우스를 스크롤하며 자신의 이름을 찾았다. 그리고 발견했다.


[이지우 / 1억 5천 / 사회초년생, 순진함, 부모님 지원]


그의 이름 옆에는 다른 계약보다 눈에 띄게 높은 수수료가 적혀 있었다. 그 숫자를 보는 순간, 지우의 머릿속에 잊고 있던 기억 하나가 섬광처럼 떠올랐다. 대학 시절, 돈이 없어 며칠을 굶주리던 추운 겨울날이었다. 우연히 그를 마주친 윤호는 "지우야, 힘내라"라며 그를 허름한 국밥집으로 데려가 뜨거운 국밥 한 그릇을 사주었다. 그 국밥 한 그릇이 그에게는 세상의 모든 위로였다.


그 선의로 가득했던 얼굴 위로, 엑셀 파일 속 '순진함'이라는 잔인한 단어가 겹쳐졌다. 그때 윤호의 친절은 진심이 아니었던 걸까. 모든 것이 이 잔혹한 계획의 일부였던 걸까.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그가 베풀었던 모든 친절과 격려가 사실은 사냥감을 재단하기 위한 계산이었을까. 분노보다 더 깊은 허무함이 지우의 온몸을 잠식했다. 그 배신감은 1억 5천만 원을 잃은 것보다 더 아프고 시렸다.


지우는 고개를 푹 숙였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순진함'. 그 단어는 지우가 스스로를 믿어왔던 모든 것을 산산조각 냈다. 자신의 순수했던 희망, 타인에 대한 믿음, 그리고 선배에 대한 존경심까지. 이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그는 단순히 돈을 잃은 피해자가 아니었다. 거대한 악의 먹이사슬에 순진하게 걸려든, '순진함'이라는 단어 하나로 규정된 존재였다. 그 자리에 한참을 앉아 있던 지우는, 마침내 떨리는 손으로 마우스를 움직여 그 엑셀 파일의 내용을 캡처하기 시작했다. 개인적인 복수를 넘어, 이 잔인한 기록을 세상에 드러내야만 했다. 그들의 아픔을 돈과 숫자로만 기록한 이 파일을, 이제는 그들의 목소리로 채워야 했다. 이 증거가 빛을 본다면, 어쩌면 윤호의 마지막 양심도 헛되지 않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이 그의 마음속에서 차가운 불꽃처럼 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