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령이었다.
그날 오후, 병동의 모든 공기가 쇠가 찢어지는 듯한 경보음과 함께 얼어붙었다. 심정지 환자 발생. 내 안의 모든 슬픔과 분노가 순간 하나의 목표를 향해, 생존이라는 본능을 향해 타올랐다.
병실은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수간호사는 평소처럼 고함을 치며 지시를 내렸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공포에 질린 간호사들의 귀에 닿지 못하고 허공에서 흩어졌다. 한 명은 엉뚱한 약물을 가져왔고, 다른 한 명은 제세동기 전원을 켜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며칠 전 린넨실에서 울던 지나마저 카트 앞에서 "안돼, 안돼…"라고 중얼거리며 과거 수현처럼 완전히 얼어붙어 있었다. 환자의 바이탈 사인은 바이탈 모니터 위에서, 죽음의 마지막 비명처럼 길고 단조로운 직선을 그리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얼어붙은 동료들의 모습 위로, 도움을 청하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던 수현의 마지막 얼굴이 겹쳐졌다. 그 순간, 내 안에서도 똑같은 공포가 고개를 들었다. 심장이 차갑게 식고 손발이 굳어지는, 익숙한 무력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나는 이미 최악의 결과를 겪은 사람이었다. 친구를 잃는 지옥을 경험한 내게, 선배의 질책 따위는 더 이상 공포가 될 수 없었다. 나는 주머니 속에서 바스러질 듯한 수현의 메모를 쥔 손의 감촉을 느꼈다. '아니, 다시는. 다시는 누구도 그렇게 보내지 않겠어.' 나는 내 안의 두려움을 짓밟고 일어섰다.
"모두 정신 차려요!"
내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그 안에는 슬픔으로 단련된 강철 같은 서늘한 명료함이 있었다. 그것은 더 이상 신입 간호사 이희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친구의 죽음을 딛고 일어선, 살아남은 자의 절박한 외침이었다. 나는 수간호사의 지시를 가로막고, 지난 몇 달간 머릿속에서 수천 번이고 반복했던 그대로 침착하고 정확하게 역할을 분담했다.
"민지 선생님, 제세동기 준비! 지나 씨는 기도 확보! 약물은 제가 투여하겠습니다!"
모두가 놀라 나를 쳐다보았다. 지은 선배는 잠시 멈칫했지만, 내 눈빛에서 무모함이 아닌 확신을 읽은 듯 고개를 끄덕하며 자신의 역할에 집중했다. 마침 병실로 들어서던 박진우 선생은 이 광경을 보고 문가에 멈춰 섰다. 그는 혼돈을 예상했지만, 눈앞에 펼쳐진 것은 신입 간호사가 지휘하는 의외의 질서였다. 그는 말없이 팔짱을 낀 채 상황을 지켜보았다.
다른 동료들의 눈빛 속에서 '네가 뭔데'라는 의문이 스쳤다. 나는 그들의 흔들리는 눈을 피하지 않고, 가장 강력한 주문을 외웠다.
"수현이었다면 분명 이렇게 했을 겁니다!"
'수현'이라는 이름이 병실의 혼돈을 가르고 울려 퍼지는 순간, 마법처럼 모든 것이 변했다. 그 이름은 지나에게 죄책감의 망치가 되어 공포를 깨부쉈고, 민지에게는 후회의 가시가 되어 심장을 찔렀다. 얼어붙었던 지나의 눈빛이 흔들리더니, 그녀는 울음 섞인 얼굴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민지는 입술을 깨물며 그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제세동기를 준비했다. 그들의 움직임은 단순한 업무 수행이 아닌, 속죄를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우리는 한 몸처럼 움직였다. "민지 선배, 차지 시작! 200줄!", "지나 씨, 앰부배깅 계속해요! 내가 카운트할게!" 내 침착한 지시에 따라 각자의 손발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그것은 혼돈의 잿더미 속에서 피어난 부활의 교향곡이었다. 몇 분이 지났을까. 기적처럼, 모니터 위로 희미한 심전도 그래프가 다시 그려지기 시작했다. 환자는 살아났다.
상황이 정리되고, 숨 가쁜 안도의 한숨이 병실을 채웠다. 모두가 탈진한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때, 분노와 경악이 뒤섞인 얼굴의 수간호사가 내게로 다가왔다. 병실의 모든 시선이 우리 둘에게로 향했다. 모두가 숨을 죽였다. 폭풍 전의 고요. 구겨졌던 위계질서가 다시 나를 심판하리라는 것을 모두가 예감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과거의 내가 아니었다. 나는 그녀를 향해, 수현의 죽음 이후 삼켜왔던 모든 슬픔과 분노를 터뜨리며 절규했다.
"보셨어요? 이게 사람을 살리는 방식이에요! 서로를 믿고, 함께 움직이는 것! 당신들의 방식은 내 친구를 죽였어! 살고 싶어서 발버둥 치던 내 친구를 괴물로 만들고, 결국 잡아먹었단 말이야!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 공범이야. 침묵했던 나를 포함해서, 우리 모두가!"
내 처절한 외침에, 병동의 모두가 얼어붙었다. 수간호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마치 거울 속에서 20년 전, 자신의 동료를 잃고 절규하던 어린 자신을 마주한 사람처럼, 그저 망연히 서 있었다. 그녀의 눈빛이 파도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단단했던 얼음 갑옷에, 비로소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한 줄기 눈물이, 20년의 세월을 거슬러 그녀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모든 것을 지켜보던 박진우 선생은 조용히 병실을 나갔다. 그의 입가에는 알 수 없는,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것은 한낱 냉소가 아닌,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것을 목격한 자의 경외감이 담긴, 씁쓸하고도 만족스러운 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