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 움 Part17

나는 유령이었다.

by sarihana

17장. 다시 타오르는 불씨


경영진의 압박은 더욱 노골적이고 잔인한 방식으로 우리 병동을 조여왔다. 그들은 숫자의 논리를 앞세워 우리가 몇 년에 걸쳐 쌓아 올린 견고한 팀워크와 문화를 공개적으로 무너뜨리려 했다. 병동의 핵심 역할을 하던 에이스 간호사 두 명을 단 한 시간의 여유만을 준 채 다른 병동으로 강제 전출시켰다.


그들의 빈자리는 즉시 병동 전체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경험 부족한 신입이 중요한 처치를 놓쳐 환자가 위험에 빠질 뻔한 아찔한 순간이 이어졌고, 감당 못 할 업무량에 결국 복도에서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리는 동료도 생겨났다. 나와 지은 선배는 쉴 새 없이 울리는 호출 벨 소리를 따라 복도를 뛰어다니며 이 모든 것을 수습해야 했다. 경영진의 조치는 단순한 인사 이동이 아닌, 환자와 간호사의 생명을 담보로 한 명백한 폭력이었다.


그날 밤,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하려던 내게 지은 선배가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희진 씨, 더는 안 되겠어. 이대로는 다 죽어. 오늘 밤, 사람들 좀 모아야겠어. 평소 가던 식당 말고, 뒤편 골목에 있는 곳으로. 혹시 모르니 조심해서 와." 그녀의 목소리에는 비장한 결심이 서려 있었다.


약속 장소인 허름한 식당의 작은 방은, 싼 소주와 들끓는 분노의 냄새로 가득했다. 각 병동에서 뜻을 함께하기로 한 대여섯 명의 간호사들이 모여 있었다. 모두의 얼굴에는 병원의 감시를 피했다는 안도감과,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다. 한 간호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단순한 불만이 아닌, 상처 입은 자의 증언이었다.


“지난주에 저희 병동에서 환자 한 분이 낙상하셨어요. 인력이 부족해서 스테이션을 비운 단 5분 사이에… 병원에서는 저희 책임으로 돌리더군요. CCTV를 돌려봐도, 인력 부족은 인정하지 않고 개인의 부주의라고 하더군요. 더는 이렇게는 못 하겠습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분노와 절망이 뒤섞여 있었다. 다른 간호사가 뒤를 이었다. “저는 열이 40도까지 올랐는데도, 대체 인력이 없다는 이유로 12시간을 일해야 했습니다. 이러다 정말 누구 하나 죽어 나가겠습니다. 환자가 먼저 죽든, 간호사가 먼저 죽든…” 그녀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목소리는 각자의 병동에서 겪었던 수많은 ‘수현의 비극’에 대한 증언이자,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절박한 외침이었다.


나는 처음에는 망설였다. 내가 이들을 이끌고 또 다른 싸움으로 내몰아도 되는 것인가. 그때, 나는 노트북을 꺼내 박진우 선생이 준 USB 파일을 열었다.


"여러분의 경험은 결코 개인적인 불운이 아닙니다. 이건 병원 전체에서 조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이 자료를 보세요. 인력이 부족한 병동의 의료사고율이 다른 병동보다 40%나 높다는 걸, 경영진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이건 사고가 아니라, 그들이 방치한 살인입니다."


노트북 화면의 차가운 데이터가 방 안의 모든 얼굴을 비추는 순간, 공기가 변했다. 흐느끼던 소리가 멎고, 모두의 얼굴에서 절망 대신 차갑고 단단한 분노가 피어올랐다. 우리의 고통이 우연이 아니라, 병원 측이 알고도 방치한 결과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때, 지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결국… 수현이에게 일어났던 일이, 지금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고 있는 거였어."


나는 모두를 둘러보며 결심한 듯 말했다. "맞아.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어. 수현이의 이름으로 싸울 거야. 다시는 우리 중에 수현이 같은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오늘부터 우리는… **'수현 연대'**야."


'수현 연대'. 그 이름이 처음 불리는 순간, 모두가 숙연해졌다. 그것은 단순한 단체명이 아니었다. 수현의 유령은 더 이상 나 혼자만의 슬픔이 아닌, 우리 모두가 함께 들어야 할 깃발이 되었다. 죽은 친구의 넋을 기리고, 그녀의 이름을 걸고 끝까지 싸우겠다는 우리의 비장한 맹세였다. 우리는 더 이상 각자의 외로운 섬이 아니었다. 상처 입은 자들의, 잊혀진 자들의 군대가 되어 거대한 폭풍에 맞서 함께 떠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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