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뷔페 (확장판) - Part15

삶을 다운로드하는 시대

by sarihana

제15장: 우리들의 버그


기타 줄에 닿아 생긴 손끝의 물집이 터지고 아물기를 반복할 무렵, 나는 라이언을 찾아갔다. 그의 아파트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지난번 그를 찾아갔을 때의 오만했던 내 모습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의 비효율적인 삶을 경멸했던 내가, 이제는 그에게 돌아가야만 했다. 문 앞에 서서 한참을 망설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리고, 며칠 밤을 새운 듯 땀으로 젖은 얼굴의 라이언이 나를 보고는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그의 작업실은 예전보다 더 어수선했고, 테이블 위에는 독촉장으로 보이는 붉은색 봉투 몇 개가 놓여 있었다. "어쩐 일이야?" 그의 목소리에는 경계심이 묻어 있었다.


나는 들고 있던 기타 케이스를 내려놓고, 서투르게 입을 열었다. "나... 칩 제거했어." 나는 그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뷔페의 화려한 미로, 감정 없는 성공, 제이슨의 붕괴, 그리고 텅 빈 껍데기로 돌아온 나의 이야기까지. 말을 마치고 나는 물집이 잡힌 내 손가락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이게... 지금 내가 가진 전부야."


라이언은 내 손가락을 잠시 바라보더니, 싸늘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게 네 전부라고? 그래, 넌 네가 경멸하던 삶을 맛보고 온 셈이군." 그의 목소리에는 노골적인 실망감이 담겨 있었다. "내가 밤샘 작업을 하며 쌓아 올린 이 모든 비효율이, 너에게는 한순간에 다운로드할 수 있는 데이터에 불과했겠지. 너는... 네가 그토록 싫어하던 가짜가 되었었구나." 그의 말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내 가슴에 박혔다.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한참의 침묵 끝에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네가 돌아왔네. 이 엉망진창인 세계로. 그거면 된 거 같아. 돌아온 걸 환영한다, 친구." 그의 따뜻한 한마디에 굳어있던 내 마음의 무언가가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그는 부엌으로 가 커피 두 잔을 들고 와 내게 한 잔을 건넸다.


그날부터 나는 라이언과 함께 그의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의 아파트는 우리의 작은 우주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의 협업은 처음부터 순탄치만은 않았다. 칩의 효율성에 익숙했던 내게 라이언의 방식은 종종 답답하게 느껴졌다. 어느 날, 게임 저장 방식을 두고 우리는 격렬하게 충돌했다.


"라이언, 이건 말도 안 돼. 저장 지점이 너무 적잖아. 이건 그냥 유저를 괴롭히는 거야! 최소한의 편의성은 있어야지!"


"편의성? 칩이 주는 게 바로 그 편리함이야! 우리는 그걸 거부하기로 한 거 아니었어? 쉽게 얻는 성취는 가짜라는 걸 벌써 잊었어?"


그의 날카로운 말에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나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 칩 세상의 생리를 경험한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었다.


"아니, 네 말은 맞아. 하지만 그들의 방식을 알아야 그들을 이길 수 있어. 뉴럴링크의 게임들은 완벽한 보상 시스템으로 유저의 뇌를 통제해. 그건 진짜 즐거움이 아니라 조건반사일 뿐이야. 우리는 그 반대로 가야 해. 예측 불가능한 실패와 거기서 오는 진짜 성취감을 설계해야만 해."


우리의 논쟁은 밤새도록 이어졌고, 결국 우리는 타협점을 찾았다. 단순한 불편함이 아닌, '의미 있는 어려움'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우리의 건강한 충돌은 게임을 더욱 깊이 있게 만들었다.


며칠 뒤, 게임의 초기 버전을 들고 우리는 투자자를 만났다. 낡았지만 가장 깨끗한 옷을 꺼내 입으며, 라이언은 책상 위의 독촉장을 힐끗 보았다. "어쩌면 이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 그의 목소리에는 희망과 절박함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매끈한 슈트 차림의 투자자는 감정 없는 표정으로 우리의 발표를 들었다. 그는 게임 화면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버그도 많고, 그래픽도 엉망이네요. 무엇보다 당신들의 개발 과정은 너무나 비효율적입니다. 칩을 쓰면 이 모든 걸 일주일 안에, 완벽하게 만들었을 텐데요."


투자자는 우리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혀를 차며 자리를 떴다. 차가운 회의실에 우리 둘만 남았다. 희망이 무너진 자리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나는 물집 잡힌 내 손가락을 내려다보며 나지막이 물었다. "라이언... 우리, 그냥 바보짓 하는 걸까?"


라이언은 대답 대신, 회의실 구석에 놓여 있던 내 기타 케이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시선을 따라 기타를 들어 품에 안았다. 그리고는 서툴지만 정직한 코드를 하나 퉁겼다.


'띠잉-'.


삐걱거리는 기타 소리가 차가운 회의실을 울렸다. 그 소리에, 라이언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그는 절망으로 가득했던 내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저 사람은 완성된 요리만 맛보려는 손님일 뿐이야. 우리는 우리만의 레시피를 만드는 요리사고."


나는 기타를 다시 고쳐 잡으며 웃었다. 그날 사무실에는 비효율적인 웃음과 따뜻한 커피 향, 그리고 희망의 멜로디가 가득했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진정한 성취감과 행복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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