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다운로드하는 시대
칩 제거 수술 후 며칠이 지났다. 세상은 여전히 희미했고, 나는 무기력하게 방 안을 서성거렸다. 칩이 걸러주던 세상의 모든 소음과 정보가 무자비하게 뇌로 쏟아져 들어왔다. 창밖의 자동차 소리, 윗집의 물소리, 냉장고의 모터 소리까지 모든 것이 날카롭게 신경을 긁었다. 완벽하게 해내던 모든 일들이 이제는 불가능해 보였다. 나는 다시 아무것도 아닌, 아니 그보다 못한 존재가 된 것 같았다.
그때, 방 한구석에 세워져 있던 낡은 기타 케이스에 발이 걸려 넘어질 뻔했다. 대학 시절, 수많은 밤을 새워가며 연습했지만 결국 F코드를 넘지 못하고 포기했던 나의 첫 번째 꿈, 첫 번째 실패의 증거였다. 칩 이식 후, 기타는 그저 쓸모없는 고물, 나의 불완전함을 상징하는 흉물에 불과했다.
나는 먼지가 뽀얗게 쌓인 케이스를 열었다. 익숙한 나무 냄새와 함께,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좋아하던 선배에게 잘 보이고 싶어 서툰 솜씨로 코드를 연습하던 밤들. 손가락 끝이 아파 끙끙 앓으면서도, 단 하나의 멜로디를 완성했을 때 터져 나오던 벅찬 웃음. 그 기억은 칩이 주입했던 그 어떤 화려한 경험보다 희미했지만, 비교할 수 없이 따뜻했다.
나는 기타를 꺼내 들었다. 여섯 개의 줄은 녹슬어 있었고, 조율은 엉망이었다. 칩이 있었다면 1초 만에 완벽한 튜닝을 마쳤겠지만, 이제 내게는 내 귀와 서툰 손가락뿐이었다. 한참을 낑낑대며 줄을 감고 튕기기를 반복했다. 불협화음이 방 안을 어지럽혔다.
마침내 대강의 조율을 마치고, 나는 코드를 잡아보려 했다. 손가락은 굳어 있었고, 뇌는 코드를 기억하지 못했다. 다운로드했던 완벽한 음악 지식은 사라졌다. 나는 서툰 손으로 음을 더듬었다. 손가락 끝이 아파왔다. 쇠줄이 연한 살을 파고드는 감각이 생생했다. 굳은살 하나 없는 내 손가락은 고통을 비명처럼 호소했다.
"틱... 틱... 츠으윽..."
기타는 제대로 된 소리를 내주지 않았다. 그저 죽어가는 소음만을 뱉어낼 뿐이었다. 수십 번, 수백 번의 실패 끝에 포기하려던 순간, 겨우 하나의 음을 제대로 짚는 데 성공했다.
"띠잉—"
결코 아름답다고는 할 수 없는, 어딘가 삐뚤어지고 투박한 소리. 하지만 그 소리가 울리는 순간, 기타의 나무 몸통을 타고 전해진 진동이 내 가슴까지 울렸다. 내 심장은 칩으로 완벽한 교향곡을 연주했을 때보다 더 세차게 뛰었다.
그 소리에는 나의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잊었던 꿈, 서툰 노력, 손가락 끝의 고통, 그리고 포기하지 않았던 한순간의 의지. 다운로드했던 완벽한 연주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내 땀과 심장의 떨림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나의 소리'였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진짜 삶은 완벽한 결과물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서툰 실패와 그로부터 다시 일어나는 '과정' 속에 있다는 것을. 기타를 켜고, 땀을 흘리고, 고통을 느끼고, 마침내 단 하나의 불완전한 소리를 만들어내는 이 순간이야말로, 내가 칩으로 살았던 그 어떤 완벽한 삶보다 진짜였다. 나는 아픈 손가락을 어루만지며, 다시 한번 줄을 튕겼다. 이번에도 소리는 엉망이었지만, 나는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