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기록자
2025년 5월: 부동산 불패 신화
세상은 온통 신록으로 가득했다. 아카시아 향기가 바람을 타고 거리를 채웠고, 밤에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토록 생명력이 넘치는 계절이었지만, 사람들의 욕망은 다른 곳을 향해 더 짙어지고 있었다. 연일 신기록을 경신하는 아파트 가격 그래프는 사람들의 불안과 탐욕을 동시에 자극하는 거대한 불꽃이었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과 '빚투(빚내서 투자)'는 더 이상 무모한 선택이 아닌, 뒤처지지 않기 위한 유일한 생존 전략처럼 여겨졌다.
주말 저녁, 대학 동기인 친구 커플과 저녁 식사를 했다. 얼마 전 무리해서 수도권 외곽의 신축 아파트를 분양받은 그들의 대화는 온통 집 이야기뿐이었다. 그들의 눈은 희망과 불안이 뒤섞여 기묘하게 빛나고 있었다.
"우리 대출 원리금만 한 달에 300만 원이야. 둘이 숨만 쉬고 일해야 해. 그래도 어떡해, 지금 아니면 평생 못 살 것 같았는걸."
"맞아. 우리 옆 동은 벌써 프리미엄이 1억이나 붙었대. 3년만 버티면 집값이 10억은 될 거야. 그때 팔아서 빚 갚고, 작은 상가 하나 사는 게 우리 꿈이야."
나는 그들의 대화가 단순한 개인의 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부동산 불패 신화'라는 거대한 종교의 간증 집회와 같았다. '영끌'이라는 고통스러운 의식을 통해 믿음을 증명하고, '집값 상승'이라는 구원을 약속받으려는 신도들의 절박한 기도였다. TV와 인터넷에서는 매일같이 '오늘이 가장 싸다'는 전문가들의 설교가 흘러나왔고, 사람들은 미래의 모든 가치를 현재의 아파트 한 채에 저당 잡히고 있었다. 우리는 눈앞의 이익에만 매달렸다. '나만 뒤처질 수 없다'는 불안감과 '이번 생에 내 집 마련'이라는 절박한 꿈을 연료 삼아, 브레이크가 고장 난 열차처럼 미래의 재앙을 향해 질주했다.
나는 그때의 욕망을 기록했다.
그러나 25년 전의 나는 꿈에도 몰랐다. 그들이 모든 것을 걸었던 아파트가 2050년, 수많은 노인들의 발목에 채워진 거대한 족쇄가 될 줄은.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로 인해 그들이 평생을 바친 아파트는 더 이상 팔리지 않는 텅 빈 콘크리트 상자가 되었다. 그들의 유일한 노후 자산이었던 집은 휴지 조각이 되었고, 미래를 담보로 쌓아 올린 모래성은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날 친구의 빛나던 눈동자는, 25년 후 텅 빈 아파트 창가에 앉아 있던 한 노인의 공허한 눈빛으로 되돌아왔다.
아파트 단지에는 새로운 갈등이 싹트고 있었다. 12층에 사는 젊은 부부의 아이가 밤낮없이 뛰는 탓에, 아래층의 노부부와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었다. 엘리베이터에는 층간소음을 비난하는 익명의 대자보가 붙었고, 단지 커뮤니티에는 '맘충'이라는 단어가 공공연하게 오르내렸다. 결국 그 젊은 부부는 이사 온 지 1년도 되지 않아 아파트를 떠났다.
며칠 뒤, 나는 아파트 복도에서 11층 할머니를 만났다. 그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손주를 돌보며 활기가 넘쳤지만, 지금은 키오스크 앞에서 주문을 못 해 쩔쩔매거나, 정부 지원금 신청 방법을 몰라 내게 도움을 청하는 쇠약한 노인이 되어 있었다.
아이들의 소음은 '민폐'가 되었고, 노인들의 느림은 '무능'이 되었다. 한때 마을 공동체를 잇던 가장 약한 존재들은 이제 가장 먼저 배제되고 있었다. 나는 사라져가는 이웃들의 모습을 보며, 공동체의 붕괴가 이미 우리 아파트 복도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음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