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기록자
2025년 6월: 장마, 그리고 단절
장마가 시작되던 무렵, 세상은 퀴퀴한 곰팡이 냄새로 가득했다. 연일 쏟아지는 비에 젖은 아스팔트는 희망 없이 번들거렸고, 사회의 갈등도 빗물처럼 불어나 골목마다 고여 썩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개인의 관심사를 완벽하게 예측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견고한 필터 버블이 되었다. 우리는 각자의 달콤한 감옥에 갇힌 채, 세상의 다른 목소리를 점점 듣지 못하게 되었다.
가장 고통스러운 변화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찾아왔다. 나의 오랜 친구 현규는 '분노를 공유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깊이 빠져들었다. 한때 유쾌한 농담을 즐기던 그의 얼굴에서는 웃음기가 사라졌고, 그 자리를 병적인 확신과 냉소가 채웠다. 어느 날 그의 집에 들렀을 때, 나는 어두운 방 안에서 모니터 불빛에 의지해 키보드를 두드리는 그의 뒷모습을 보았다. 화면에는 익명의 아이디들이 쏟아내는 저주와 혐오의 언어들이 격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이게 다 틀딱들 때문이야. 그들이 젊을 때 꿀이란 꿀은 다 빨아먹고, 우리한테 남겨준 게 뭐가 있어? 빚더미랑 무너진 사회밖에 없잖아! 연금충들이 우리 미래를 다 갉아먹고 있다고!"
나는 그의 변화를 보며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의 언어는 더 이상 논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배설에 가까운 분노였다. 결국 며칠 뒤, 나는 용기를 내어 그에게 말했다. "현규야, 요즘 너 너무 극단적인 것 같아. 나랑은 좀 거리를 두는 게 좋겠다."
나는 그의 광기 어린 눈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그의 분노에 동조할 수도, 그렇다고 그것이 틀렸다고 설득할 자신도 없었다. 나는 그와 논쟁하며 내 감정을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가장 쉬운 길, 외면하는 길을 택했다.
현규는 내 말을 듣고 싸늘하게 웃었다. 그 웃음은 경멸과 연민이 뒤섞인 듯했다.
"걱정 마, 너도 곧 알게 될 거야. 이 세상이 얼마나 썩었는지. 그때는 나처럼 분노할 수밖에 없을걸."
나는 그저 기록할 뿐, 아무것도 바꾸려 하지 않았다. 나는 나의 기록이 그에게 닿기를 바라는 대신, 그와의 관계를 끊는 비겁한 길을 택했다. 그날 나는 친구 현규를 버렸다. 그리고 25년 후, 나는 그 선택이 드론 정비 기사 이준우의 얼굴에서 나를 향한 총구로 되돌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