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밸브
표트르는 낡은 거실 의자에 몸을 파묻은 채, 알록달록한 블록으로 성을 쌓고 있는 어린 유진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아들이 블록이 무너질 때마다 까르르 터뜨리는 해맑은 웃음소리가 들릴 때마다, 그의 심장은 날카로운 유리 조각에 긁히는 듯했다. 무너지는 블록의 소리가, 폭발한 원자로의 지붕 위에서 흑연 더미를 던질 때 들려오던 그 섬뜩한 파열음과 겹쳐 들리는 듯했다. 저 순수한 기쁨의 세계와 자신이 갇힌 고통의 세계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었다. 진실을 밝힐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모든 것을 안고 갈 것인가. 심장을 갉아먹는 분노를 터뜨리고, 국가의 위선과 거짓을 세상에 외칠 수도 있었다. 죽어간 동료들의 이름을 부르며,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을 증언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다음은 무엇인가. 그는 머릿속으로 그 끔찍한 결과를 그려보았다. 늦은 밤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검은 코트의 사내들, 차가운 취조실의 눈부신 조명, 반역자로 낙인찍힌 자신의 이름이 실린 신문. 그리고 '반역자의 아들'이라 손가락질 받으며 살아갈 유진의 모습. 얼마 남지 않은 생은 차가운 감옥의 시멘트 바닥에서 끝나게 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이 끔찍한 진실의 무게를 사랑하는 아내와 어린 아들의 어깨에 지게 할 수는 없었다.
자신이 보이지 않는 방사능에 피폭되었다는 사실, 매일 밤 죽음의 그림자와 싸우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목숨 바쳐 충성했던 조국으로부터 철저히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아내와 아들이 알게 된다면. 아내 엘레나의 강인한 눈빛이 절망으로 무너져 내릴 것이고, 아들 유진의 맑은 눈에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공포의 그림자가 드리워질 것이다. 그들의 삶 또한 자신이 겪은 지옥과 다르지 않은 곳으로 무너져 내릴 것이다.
그래서 표트르는 침묵을 선택했다. 그것은 비겁한 체념이 아니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한, 한 남자의 마지막이자 가장 고통스러운 투쟁이었다. 그는 체르노빌의 불길과 국가의 배신,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까지, 모든 진실과 고통을 자신의 영혼 안에 가두고 단단한 침묵의 벽을 쌓아 올렸다. 가족들에게 자신의 고통을 결코 물려주지 않기 위해, 그는 기꺼이 혼자만의 감옥에 갇혔다.
어린 유진은 그런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점점 더 말이 없어지고, 텅 빈 눈으로 창밖만 바라보는 아버지가 낯설고 두려웠다. 유진은 자신이 새로 쌓은 성을 보여주기 위해 아버지의 무릎으로 기어 올라갔다. "아빠, 보세요! 멋지죠?" 아이의 기대에 찬 눈망울을 보며 표트르는 필사적으로 미소를 지으려 애썼다. 그는 천근만근 같은 팔을 들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려 했다. 하지만 그의 손은 아이의 머리에 닿기 직전 허공에서 힘없이 떨리다 내려앉았다. 그의 얼굴에 맺힌 것은 희미한 슬픔의 그림자가 전부였다.
아이는 아버지의 몸을 감싸고 있는 차가운 슬픔의 기운을 느꼈다. 자신을 밀어내는 듯한 그 미묘한 거절에, 아이의 심장이 작게 내려앉았다. 하지만 그 거대한 비극의 원인이 국가라는 거대한 시스템의 은폐와 기만 때문이라는 것은 알지 못했다. 그저 해답 없는 질문만이 아이의 여린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처럼 남았다.
아버지는 왜 아픈 걸까.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걸까.
왜 더 이상 나를 보고 웃어주지 않는 걸까.
왜… 나를 안아주지 않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