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ukushima Tape 1편 - Part12

마지막 밸브

by sarihana

12장. 완벽주의자 아키라


임시로 마련된 현장 지휘소는 바깥의 묵시록적인 혼돈과는 대조적으로 서늘할 만큼 질서정연했다. 공기 중에는 희미한 오존 냄새와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의 땀 냄새, 그리고 갓 내린 커피 향이 기묘하게 뒤섞여 있었다. 한쪽 구석에서는 교대를 마친 엔지니어들이 간이침대에 쓰러져 죽은 듯 잠들어 있었고, 바닥은 며칠째 닦지 못한 끈적한 자국들로 얼룩져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인간적인 흔적들 위로, 거대한 기계의 심장 소리 같은 서버의 저음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었다.


벽면을 가득 채운 거대한 모니터에는 원자로의 압력, 온도, 수위 등 수백 가지의 데이터가 붉고 푸른 숫자가 되어 쉴 새 없이 흘러가고 있었고, 사람들은 낮은 목소리로 암호 같은 정보를 교환하며 유령처럼 움직였다.


그곳의 중심에 현장 책임자인 아키라가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점프슈트 차림이었지만, 흐트러짐 없는 자세와 모니터의 빛을 반사하는 날카로운 안경 너머의 눈빛만으로도 이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임을 알 수 있었다. 유진이 다가가 자신을 소개하려 입을 열자, 그는 쳐다보지도 않은 채 손바닥을 들어 제지했다. 그의 시선은 오직 쉴 새 없이 변하는 데이터의 흐름에만 고정되어 있었다.


"미국 측에서 파견된 유진 킴입니다. 현장 상황에 대한 브리핑을…"


"2호기 압력 용기 데이터입니다."


아키라는 유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모니터 한쪽을 가리켰다. 그의 목소리는 마스크를 뚫고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감정 한 점 섞이지 않은, 기계가 만들어낸 듯한 금속성의 톤이었다.


"현재 시간당 0.1 메가파스칼씩 압력이 하락하고 있습니다. 유의미한 변곡점입니다. 매뉴얼 3-B항에 의거하여, 냉각수 주입량을 시간당 8톤으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오차는 없습니다."


유진은 그의 무시에 피가 거꾸로 솟는 것을 느꼈지만, 다시 한번 접근을 시도했다. "데이터는 잘 알겠습니다만, 이 추세에 대한 책임자님의 '판단'을 듣고 싶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격납용기가 파손될 가능성이…"


"가능성은 논하지 않습니다. 오직 데이터에 기반한 절차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아키라의 대답은 언제나 똑같았다. 그는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말하는 대신, 데이터 수치를 읊거나 닳고 닳은 비상 대응 매뉴얼의 특정 조항을 손가락으로 가리킬 뿐이었다. 그에게 있어 이 재앙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정해진 절차에 따라 오차 없이 '처리'해야 할 과업에 불과한 듯했다. 그의 세계에는 불확실한 변수나 인간적인 동요가 들어설 자리가 없어 보였다. 그는 완벽한 통제와 절차라는 제단을 쌓고, 그 위에서 혼돈이라는 신을 달래려는 냉혹한 사제와도 같았다.


유진은 그의 모습에서 차갑고 단단한 벽을 느꼈다. 그것은 아버지의 침묵과는 또 다른 종류의 벽이었다. 아버지가 너무 많은 고통과 진실을 끌어안은 채 그것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벽을 쌓았다면, 아키라는 눈앞의 끔찍한 현실과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공포를 외면하기 위해 데이터와 매뉴얼로 벽을 쌓고 있었다.


진실을 마주하지 않으려는 그들의 방식은 달랐지만, 결국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고립시키고 있다는 점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었다. 아버지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죄인이 되었고, 아키라는 시스템을 지키기 위해 기계가 되기를 자처했다. 유진은 깨달았다. 이곳 후쿠시마의 진짜 비극은 원자로의 폭발이 아니라, 진실 앞에서 눈을 감아버리는 이 수많은 아키라와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아버지 같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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