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조각의 무게
같은 가을 하늘 아래, 둘째 지훈은 싸늘한 공기가 감도는 대학의 공동 작업실에 홀로 앉아 있었다. 그의 앞 모니터에는 지난 몇 주간 찍어온, 기술적으로 완벽한 사진들이 스크린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 사진들 속에서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마치 실력 좋은 기술자가 찍어낸, 영혼 없는 상품 목록 같았다.
며칠 전 있었던 중간 크리틱 시간이 지독한 이명처럼 귓가에 맴돌았다. 그의 동기인 한 여학생은 치매를 앓는 할머니의 모습을 담은, 거칠고 흔들린 사진들을 선보였다. 그 모든 기술적 실패 속에는 피사체에 대한 깊은 사랑과 다가오는 상실에 대한 비애가 고스란히 담겨 보는 이들의 마음을 울렸다.
노교수는 오랫동안 그 사진들을 바라보더니, 지훈의 완벽하게 아름다운 풍경 사진들로 시선을 옮겼다. "지훈아, 자네 사진은 흠잡을 데 없이 아름다워. 하지만 이건 자네가 본 풍경이지, 자네가 느낀 세상이 아니야. 사진은 결국 너 자신을 찍는 거란다. 이 완벽한 사진 속에, 자네는 어디에 있지?"
그 말은 그의 정곡을 찔렀다. 완벽함이라는 갑옷이 한순간에 벗겨지고, 텅 빈 맨몸이 드러난 기분이었다.
문득, 그는 아주 오래전, 엄마가 간직하던 낡은 가족사진 한 장을 떠올렸다. 아빠가 그를 목말 태우고, 엄마는 그런 부자를 보며 세상 가장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기술적으로는 실패한 사진이었지만, 그 안에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행복이라는 감정이 온전히 박제되어 있었다.
어쩌면 자신은 너무 오랫동안 진짜 감정을 애써 외면하고, 뷰파인더라는 네모난 틀 뒤에 숨어 세상을 안전하게 관찰만 해왔는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부서져 내리던 그 시절, 어린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방문 틈으로, 혹은 모퉁이 뒤에 숨어, 위태로운 세계를 그저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카메라는 어른이 된 그가 찾아낸, 가장 안전하고 완벽한 숨을 곳이었다.
진짜 자신을 찍으라는 교수의 말은, 결국 그 안전한 방에서 나오라는, 자신의 가장 깊은 곳, 애써 묻어두었던 상처의 근원을 똑바로 들여다보라는 뜻이었다. 지훈은 ‘탁’ 소리가 나게 노트북을 덮었다. 그리고 가방 깊숙이 넣어두었던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는 대신, 그는 까맣고 차가운 렌즈를 향해 자신의 얼굴을 비춰 보았다. 초점 없는 눈동자와 희미하게 일그러진 표정. 그는 고통스럽게 깨닫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