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 길에서 만난 이혼 2편 - Part10

깨진 조각의 무게

by sarihana

10장: 상처의 연대


며칠째 혜진은 잠을 설쳤다. 민우와의 냉전으로, 그녀가 쌓아 올린 평온의 세계는 다시 균열이 가고 있었다. 그들은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각자의 외로운 섬에 갇혀 있었다.


그날 밤, 가게에 단둘이 남게 되자 혜진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난 엄마예요. 내 아이들이 아파하는데, 그냥 멀리 서서 지켜만 보는 건… 저한테는 고문이에요. 과거에 내가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아직도 나를 괴롭혀요."


민우는 조용히 그녀에게 다가와 처음으로 자신의 가장 깊은 과거를 고백했다.


"내 아내가 마지막을 준비할 때… 나는 몇 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방안을 가득 채운 약 냄새, 점점 말라가는 손을 그저 잡아주는 것밖에는. 그 무력감이 얼마나 끔찍한지 나는 알아요."


그는 혜진의 떨리는 어깨를 부드럽게 감쌌다. "하지만 혜진 씨, 이건 달라요. 내가 겪었던 무력감은 내가 바꿀 수 없는 '끝'을 지켜보는 고통이었지만, 당신이 지금 느끼는 건 아이들이 스스로 써 내려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고통이에요. 아이들은 무너지는 게 아니에요. 더 단단해지기 위해 자기만의 껍질을 깨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 믿어줘야 해요."


그의 눈에 서린 깊은 슬픔과 진심을 본 순간, 혜진은 깨달았다. 그의 조언이 차가운 이성이 아니라, 상실이라는 같은 종류의 아픔을 먼저 온몸으로 겪어낸 사람이 건네는, 가장 깊은 사랑과 이해에서 비롯되었음을. 그의 흔적과 그녀의 생채기는 다른 모양이었지만, 같은 깊이의 비애를 품고 있었다.


혜진은 그의 품에 얼굴을 묻고 아이처럼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한참 후, 눈물을 그친 혜진을 위해 그는 따뜻한 차를 내왔다. 찻잔의 온기를 느끼며, 혜진은 문득 민우의 죽은 아내를 떠올렸다. 언제나 아름다운 시와 따뜻한 추억으로만 존재하는 그녀. 혜진은 나직이 입을 열었다. “가끔은… 당신의 아내가 부러워요. 그녀는 아름다운 기억만을 남기고 떠났잖아요. 그런데 나는… 진흙탕 같은 싸움과 상처, 지긋지긋한 미움을 끌어안고 당신 앞에 서 있어요. 내가 당신 옆에 있어도 되는 사람인지, 가끔은 자신이 없어져요.”


민우는 말없이 일어섰다. 그는 서가에서 그가 가장 아끼던, 아내의 손때가 묻은 낡은 시집 한 권을 꺼내 들었다. 잠시 그 책을 말없이 바라보던 그는, 책장을 넘기다 꽂혀 있던 마른 꽃잎 하나를 가만히 쓸어보았다. 그리고는 시집을 다시 조용히 서가에 꽂았다. 과거를 소중히, 그러나 제자리에 두는 그만의 의식처럼 보였다. 그리고는 혜진의 앞으로 돌아와, 그녀가 만든 비뚤어진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그는 혜진의 눈을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이게 현실이에요. 지금 내 손을 따뜻하게 해주는 건, 바로 이거예요.”


그날 밤, 두 사람은 서로의 상처를 진심으로 마주하고, 그 상처의 연대를 통해 비로소 흔들리지 않는 하나의 뿌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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