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 길에서 만난 이혼 2편 - Part12

깨진 조각의 무게

by sarihana

12장: 용서 아닌 인정


지훈의 졸업 작품 전시회, '어느 가족의 해체'는 그 자체로 하나의 사건이었다. 비평가들은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로 가장 보편적인 아픔을 끄집어낸, 올해의 가장 정직한 시선"이라고 평했다. 갤러리 한쪽 벽면에는 행복했던 시절의 가족사진이 위태로운 행복을 증명하듯 컬러로 걸려 있었고, 그 반대편에는 현재의 파편들이 아릴 만큼 선명한 흑백 사진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회 마지막 날, 갤러리 문이 열리고 전남편이 들어섰다. 혜진의 심장이 불안하게 뛰었다. 그는 입구에 걸린, 네 식구가 환하게 웃고 있는 컬러 사진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그리고는 천천히, 마치 자신의 과거를 순례하듯 흑백 사진들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는 마침내 자신의 고독한 옆모습을 담은, 가장 큰 사진 앞에 섰다. 성공이라는 이름 아래 자신이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아들이 찍은 자신의 모습을 통해, 수십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비로소 마주하고 있었다.


마침내, 그는 지훈에게로 다가왔다. 아들의 눈앞에 선 그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투박하고 거친 손을 들어 올려, 아들의 어깨를 아주 서툴고 어색한 힘으로 한번, 꾹 쥐었다 놓았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것은 용서나 화해가 아니었다. ‘네가 본 것이 맞다’는, ‘네 아픔이 옳았다’는, 한 남자의 인생 전체를 건 패배의 인정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눈을 아주 잠깐 마주쳤을 뿐, 이내 시선을 돌려 갤러리를 말없이 빠져나갔다.


갤러리를 나선 그는 주차된 차에 앉아 한참 동안 시동을 걸지 못했다. 그는 조용히 핸들 위에 고개를 기댔다. 수십 년간 외면해왔던 자신의 삶의 무게를, 아들의 사진 앞에서 비로소 인정해야만 했던 한 남자의 길고 무거운 침묵이었다.


지훈은 아버지가 사라진 빈 공간을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손이 머물렀던 어깨가 화끈거렸다. 긴 세월을 넘어, 렌즈라는 매개를 통해 비로소 이루어진 부자간의 첫 번째 진짜 소통. 지훈의 뺨 위로 뜨거운 눈물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아주 길었던 자신의 어린 시절과 마침내 작별하는, 그런 눈물이었다. 그때, 혜진이 조용히 다가와 아들의 어깨, 아버지가 쥐었던 바로 그 자리에 자신의 따뜻한 손을 가만히 포개 얹었다. 과거의 상처가 남긴 자리 위로, 현재의 사랑이 조용히 스며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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