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린의 별 Part3

별없는 하늘 아래

by sarihana

3부: 무너진 성

7장: 흑백으로 변한 세상

그날 이후 나의 세상은 흑백으로 변했다. 마치 세상의 모든 색이 한 번에 지워진 듯, 모든 것이 무채색으로 변해버렸다. 강의실의 소음도, 탈린 시내의 활기찬 웃음소리도 더 이상 내게 닿지 않았다. 모든 것이 희미한 그림자처럼 느껴졌다. 나는 강의가 끝나면 곧장 집으로 돌아와 방문을 걸어 잠갔다. 밤에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눈을 감으면 환하게 웃던 얀의 얼굴과 차가운 뉴스 속 그의 미소가 번갈아 나타나 나를 괴롭혔다.

나는 서서히 식욕을 잃어갔다. 음식의 맛도, 향도 느낄 수 없었다.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았다. 몸은 무거웠고, 심장은 공허하게 쿵, 쿵 울렸다. 나는 마치 현대화된 에스토니아의 오래된 유령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도시 속에서 길을 잃은 듯했다. 모든 것을 의심하고, 모든 것을 거부하는 감정이 나를 잠식해갔다. 세상은 더 이상 내가 알던 따뜻한 곳이 아니었다.


8장: 끝없는 자책

가장 견딜 수 없었던 건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이었다. 내가 그토록 굳게 믿었던 사람에게 이렇게 쉽게 배신당할 수 있다니.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걸까?', '내 순수한 믿음이 결국 나를 갉아먹은 건가?' 이런 생각들이 뱀처럼 머릿속을 기어 다녔다. 나는 내 안의 순수함이 어리석음이었음을 깨달았다고 생각했다. 세상의 냉혹한 현실을 보지 못한 대가라고, 나 자신을 끝없이 책망했다.


'나는 왜 이렇게 어리석었을까?' 수많은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얀의 행동을 이해하려 할수록, 내 어리석음만 더 크게 다가왔다. 그의 웃음이 가면이었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그의 불안이 나를 향한 진심이 아니었음을 왜 알아채지 못했을까? 내가 순수한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얀에게 '과도하게 내어주었다'는 생각에 끔찍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내 마음이 도둑맞은 것 같았다. 배신당한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나의 소중한 감정과 노력이 한낱 성공을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믿었던 것은 얀의 진심이 아니라, 내 안의 이상적인 환상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산산조각이 났다.


9장: 찢긴 노트 속의 진실

'다시는 누구도 믿지 않겠다.'

나는 그날 이후, 모든 것을 닫아버렸다. 사람들의 친절은 위선으로 보였고, 모든 말은 가시처럼 박혔으며, 모든 시선은 나를 비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단단한 껍데기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세상의 모든 온기를 차단했다. 책상 위에 남겨진 낡은 노트는 더 이상 빛나지 않았다. 손때 묻은 글씨 하나하나가 나의 순수했던 과거를 조롱하는 듯 보였다. 그 노트가 나의 어리석음을 증명하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나는 노트 표지를 거칠게 찢고, 페이지를 구겨 쓰레기통에 내던졌다. 내 안의 분노와 절망을 종이에라도 표출하고 싶었다.


그때였다. 찢긴 종이 틈에서 익숙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만드는 서비스는 사람들에게 온기를 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 문장은 분명히 얀의 글씨가 아닌, 내가 썼던 글씨였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구겨진 노트를 다시 펼쳤다. 그 노트 속에는 수없이 많은 나의 생각들이 담겨 있었다. 내가 꿈꾸던 세상, 내가 만들고 싶었던 서비스, 그리고 나의 불안과 두려움까지. 그 모든 것들이 얀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순전히 나의 열정과 진심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배신의 그림자는 내 안의 나약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나는 단지 그에게 나의 믿음을 '과도하게 내어주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