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린의 별 Part2

별없는 하늘 아래

by sarihana

2부: 그림자의 시작

4장: 차가운 목소리

졸업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마지막 아이템 점검을 위해 나는 낡은 노트를 그에게 건넸다. 그 노트는 우리의 땀과 꿈이 스며든, 더없이 소중한 '보물 지도'였다. "우리가 만드는 서비스는 사람들에게 온기를 주는 것이어야 해. 그게 핵심이야." 나의 말은 흔들림 없는 확신에 차 있었다. 얀은 노트를 말없이 받아 들고 천천히 페이지를 넘겼다. 그의 눈이 우리가 함께 썼던 문장을 따라 움직였다. "온기를 나누는 앱...".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나는 그의 얼굴에서 희미하게 스치는 고뇌의 흔적을 보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곧이어 그는 내가 알던 따뜻한 목소리가 아닌, 낯설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온기? 그거 얼마나 돈이 될 것 같아? 결국엔 수익으로 이어져야 의미가 있지."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의 눈빛은 더 이상 별빛이 아니었다. 계산기처럼 차갑게 빛나는, 낯선 눈빛이었다. "따뜻한 서비스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잖아." 나의 항변에 그의 목소리는 더 날카로워졌다. "가치와 수익은 다른 문제지. 세상은 감정으로 움직이지 않아. 결국, 계산된 숫자가 성공을 만드는 거야." 그의 목소리는 이전과 달리 미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떨림은 분노인지, 슬픔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순간 우리의 세계가 완전히 갈라지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5장: 외로운 기다림

그날 이후, 얀은 돌연 연락을 끊었다. 내 전화는 수십 번 울렸지만, 그는 단 한 번도 받지 않았다. 메시지도 보냈지만 '읽음' 표시조차 뜨지 않았다. 나는 처음에는 그가 바쁘거나, 혹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리라 생각했다. 며칠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흘렀다. 내 마음은 불안과 희망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처럼 흔들렸다. 그가 혹시 아픈 것은 아닐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가득했지만, 한편으로는 그저 나를 피하는 것이라는 차가운 진실을 외면하려 애썼다.


밤마다 그의 SNS를 들여다보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올라오는 사진 속 그는 늘 사람들로 가득한 파티에 있었다. 화려한 조명 아래서 모두와 웃고 있는 그의 모습은, 나와 함께 낡은 노트에 꿈을 그리던 모습과는 너무 달랐다. 사람들의 축하와 성공을 향한 찬사들 속에서, 나는 그 사진 한구석에 있는 공허한 눈빛을 발견했다. 그 눈빛은 한때 내게 속삭였던 그의 불안을 담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그 공허함을 애써 외면하며, 그가 잠시 길을 잃었을 뿐이라고, 곧 돌아올 거라고 스스로를 기만했다. 기다림은 더 이상 순수한 희망이 아니었다. 그것은 고통이 되었고, 나의 마음은 서서히 지쳐갔다. 우리의 우정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믿었던 내게, 얀의 침묵은 가장 잔인한 형태의 배신이었다.


6장: 깨진 유리와 차가운 미소

몇 달 뒤, 초겨울 눈발이 탈린 구시가지의 돌길 위로 흩날리던 날이었다. 낡은 카페 창가에 앉아 나는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김이 시야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그때, 뉴스 화면에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화면 속에는 낡은 노트에서 보았던 아이디어의 로고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선 얀의 얼굴. 앵커는 활기찬 목소리로 "따뜻한 기술로 성공한 청년 사업가, 얀"이라는 자막을 띄웠다. 사진 속 얀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 미소는 내가 알던 따뜻한 얼굴이 아니었다.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마치 모든 것이 계산된 것처럼 차가움이 배어 있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 모든 것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내게 별빛 같던 그는, 사실 나를 등지고 혼자 빛을 향해 달려가던 사람이었다. 손에 쥐고 있던 유리컵이 그대로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쨍그랑!" 날카로운 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주변의 모든 소리가 사라진 듯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들었다. 수십 번 걸었던 번호였지만, 오늘은 받아주기를 바라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린 뒤, 드디어 수화기 너머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얀, 기사... 이게 무슨 일이야?"


수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는 그의 거친 숨소리를 들었다. "나도... 미안해." 그의 목소리는 이전과 달리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라도 성공해야만 했어. 너도 알잖아. 세상은 꿈만으론 움직이지 않는다는 거." 나의 불안과 꿈을 알고 있던 그였기에, 그의 말은 더욱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박혔다. "우리 꿈... 우리의 노력은...!" 나의 목소리가 절망으로 가득 찼다. "그건 나 혼자 성공하기 위해 필요했던 과정일 뿐이야. 미안하지만, 난 이제 더 이상 필요 없어. 가난한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압박감... 그 짐이 너무 무거웠어." 전화가 끊어지고, 나는 부정할 수 없었다. 내가 믿었던 별은 이미 나를 등지고 혼자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