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국선변호사입니다 (1편) - Part1

치자꽃은 밤에 핀다.

by sarihana

서문


사람들은 법의 여신이 눈을 가린 이유가 공정함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나는 그 눈이, 차마 외면하고 싶은 진실의 참혹함 때문에 스스로 감아버린 것이라 믿는다. 그날, 내 눈앞에서 진실이 어떻게 조각나고 짓밟히는지 목격한 이후로, 나는 단 한 번도 법정이 정의를 지켜낸다고 믿은 적이 없다. 단 한 번도.


법정은 진실을 가리는 성역이 아니라, 가장 화려한 거짓말을 공연하는 극장이다. 검사는 대중의 갈채를 받는 비극을 쓰고, 변호사는 의뢰인의 안위를 위한 희극을 쓴다. 그리고 판사는, 그날 가장 연기를 잘한 배우에게 트로피를 건네는 심사위원일 뿐이다. 진실은 조명 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다음 막이 오르기만을 기다리는 이름 없는 대역 배우에 불과하다.


변호사의 의무는 의뢰인을 변호하는 것이다. 설령 그 의뢰인이 사회가 손가락질하는 악마일지라도, 법은 그에게도 방어할 기회를 주라고 명한다. 하지만 내가 변호해야 했던 남자는 피 냄새를 풍기는 야수가 아니었다. 그는 분노나 탐욕 같은 원초적인 감정으로 움직이는 단순한 괴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법이라는 악보를 완벽히 이해하고, 인간의 심리라는 악기를 자유자재로 연주하는 지휘자에 가까웠다. 법정은 그의 무대였고, 나와 검사, 판사 모두는 그의 거대한 교향곡을 완성하기 위한 연주자들에 불과했다.


만약 당신의 손에 악마의 목줄이 쥐어져 있다면, 당신은 그 줄을 당길 것인가, 아니면 놓아줄 것인가.

이것은 그 정답 없는 질문에 대한 나의 처절한 대답이자, 변호사의 의무라는 이름 아래 괴물의 공범이 되어야 했던 한 남자의 고백이다.





프롤로그


상자가 배달된 것은 자정이 막 지났을 무렵이었다.


나는 텅 빈 국선 변호사실 소파에 누워, 싸구려 위스키로 얼룩진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국선 변호사실의 공기는 언제나 같은 냄새가 난다. 눅눅한 서류의 먼지 냄새, 식어버린 인스턴트커피의 시큼한 냄새, 그리고 수많은 패배가 남기고 간 희미한 절망의 냄새. 세상의 모든 소음이 잠든 시간, 낡은 형광등의 신경질적인 울음소리만이 내 귓가를 파고들었다.


승리는 달콤해야 했다. 하지만 나의 승리는 이 싸구려 위스키처럼, 목구멍을 태우고 지나가 위장에 쓰라린 상처만 남겼다. 나는 이겼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바로 그때, 정적을 깨고 퀵서비스 기사가 놓고 간 작은 상자만이 생뚱맞게 내 책상 위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발신인은 없었다.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천근만근이었지만, 무언가에 이끌리듯 상자를 향해 다가갔다. 검은색의, 아주 평범한 선물 상자. 하지만 그 표면의 매끄러운 감촉에서, 나는 법정에서 마주했던 그의 완벽하게 다듬어진 거짓 미소를 떠올렸다. 손이 떨렸다. 나는 어쩌면 이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변호사의 손은 서류를 열고 사실을 파헤치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이 상자 안에는 사실이 아닌, 내가 세상에 팔아넘긴 이야기의 끔찍한 '후기'가 들어있을 터였다.


상자를 열자, 향기가 먼저 나를 덮쳤다. 그 향은 장례식장의 흰 국화보다도 무거웠고, 내가 변호했던 수많은 시신들의 사진 속에서 피어 나오던 바로 그 '정원사'의 냄새였다. 살아있는 자의 숨을 옥죄는, 우아한 죽음의 향기. 달콤했지만, 그 끝에는 죽음의 서늘함이 뱀처럼 혀를 날름거렸다.


검은 벨벳 위, 갓 꺾은 듯 싱싱한 새하얀 치자꽃 한 송이가 놓여 있었다. 그 꽃은 이 누추한 사무실의 모든 것을 비웃듯, 불가능할 정도로 완벽하고 순결했다. 마치 방금 전까지 누군가의 차가워진 심장 위에 놓여 있었던 것처럼. 그것은 선물이 아니었다. 판결문에 찍히지 않은, 마지막 증거물이었다.


그리고 그 꽃 아래, 작게 접힌 메모지 한 장.


나는 떨리는 손으로 메모를 펼쳤다. 감정 한 점 섞이지 않은, 타이핑된 단정한 글씨가 사형선고문처럼 내 눈에 박혔다.


나의 변호사님께. 당신이 설계한 자유 위에서, 나의 정원은 비로소 만개합니다. 다음 꽃은,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나는 메모를 떨어뜨렸다.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창밖으로 도시의 불빛이 아득하게 보였다. 저 수많은 불빛 아래, 내가 풀어준 악마가 지금 어디선가 다음 무대를 준비하고 있을 터였다.


길고 긴 재판은 끝났다. 그리고 이제, 진짜 심판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1부: 버려진 패

1장: 정원사


서초동 법원 417호 소법정. 나는 판사의 입술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지만, 그의 말을 듣고 있지는 않았다. 대신 천장의 오래된 누수 자국이 몇 개인지 세고 있었다. 저 얼룩들은 이 방에서 증발해버린 수많은 진실의 눈물 자국일까.


"피고인, 징역 10월에 처한다."


기계처럼 무감정한 목소리가 낡은 법정에 울렸다. 방청석에서 피고인의 어머니인 듯한 노파의 흐느낌이 터져 나왔다. 상습 절도, 이번이 네 번째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집행유예라는, 들어주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읊어야 하는 주문을 외우는 것뿐이었고, 판사는 내 주장을 2초 만에 기각했다. 또 하나의 패배. 아니, 애초에 승리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정해진 수순이었다.


법정을 나와 창문 하나 없는 지하 1층의 국선 변호사실로 향했다. 복도를 지나는 동안 스산한 공기 속에서 모두가 같은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정원사'. 그 이름은 단순한 별명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대의 불안과 대중의 욕망이 뒤엉켜 만들어낸, 잔혹한 예술가의 호칭이었다.


"어젯밤 뉴스 봤어? 세 번째 희생자, 소름 끼치더라."


"인터넷에선 거의 영웅 취급이야. 썩은 세상 청소한다나 뭐라나."


"영웅은 무슨. 그냥 미친놈이지. 그런데 흔적 하나 안 남긴다며? 경찰은 도대체 뭐 하는 건지."


'정원사'. 최근 몇 달간 대한민국을 공포로 몰아넣은 연쇄살인마의 별명이었다. 그는 젊은 여성만을 노렸고, 자신의 범죄 현장을 마치 예술 작품처럼 완벽하게 통제했다. 외부 침입 흔적 없이, 피해자는 자신의 가장 안전한 공간에서 잠든 듯 발견되었다. 살인마의 유일한 서명은, 희생자의 심장 위에 놓인 한 송이의 새하얀 치자꽃이었다. 그 흰 꽃잎은 순수와 죽음의 역설적인 조화를 이루며 현장에 기묘한 정적을 드리웠다. 언론은 그의 범죄를 단순 살인이 아닌, 부패한 세상에 경종을 울리는 잔혹한 퍼포먼스라 떠들어댔고, 그 잔혹한 낭만성에 대중은 열광하고 공포에 떨었다.


내 사무실은 전쟁터에서 막 퇴각한 참호 같았다. 서류더미는 아무렇게나 쌓여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했고, 구석의 낡은 소파 위에는 언제 벗어뒀는지 모를 겉옷이 널브러져 있었다. 이곳은 나의 패배가 쌓여 만들어진 무덤이었다. 열정은 십 년 전에 이미 소진되었다. 내가 믿었던 진실이 나를 배신했을 때, 나는 더 이상 진실을 쫓지 않기로 맹세했다. 지금의 나는 그저 월급날을 기다리는, 법률 기술자에 불과했다.


그때, 사무실 구석에 놓인 작은 TV 화면에 속보 자막이 떴다.


[속보] 연쇄살인 '정원사', 네 번째 희생자 발견... 서초동 자택에서...


모두의 시선이 TV로 향했다. 명문대 음대생 안희연. 스물세 살. 환하게 웃고 있는 그녀의 증명사진 아래로, 앵커의 흥분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번에도 현장에서는 '정원사'의 시그니처인 치자꽃이 발견되었습니다. 경찰은..."


사무실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세 건의 완벽한 범죄로 경찰을 조롱하던 '정원사'가 마침내 실수를 저지른 것일까, 아니면 이것 또한 그의 거대한 연극의 일부일까. 그 후 이틀 동안, 세상은 안희연 사건으로 들끓었다. 경찰은 전례 없는 압박감 속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한다며 허둥댔지만, 결국 그들이 선택한 길은 가장 쉽고 빠른 길이었다. 대중이 원하는 명쾌한 해답을 던져주는 것.


"용의자, 피해자의 연인 김민석 긴급 체포!"


TV 화면에 흐릿한 CCTV 영상과 함께 김민석의 얼굴이 공개되었다. 평범한 회사원.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선량해 보이는 인상. 하지만 나는 그 얼굴에서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그는 그저 비어있는 캔버스였다. 그리고 미디어와 경찰은 그 위로 '두 얼굴의 연인', '정체를 숨겨온 희대의 살인마'라는 제목의 그림을 거칠게 그려대기 시작했다. 대중은 그 그림이 진실이라 믿으며 의심하지 않았다. 마침내 악마의 꼬리가 잡혔다며 안도했다. 이 사회는 진실보다, 불안을 해소해줄 하나의 완벽한 서사를 더 갈망하고 있었다.


나는 컵라면에 물을 부으며 중얼거렸다. "불쌍한 놈. 이제 어떤 국선 변호사가 저 폭탄을 떠안게 되려나."


그 폭탄이, 정확히 24시간 뒤 내 책상 위로 떨어질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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