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자꽃은 밤에 핀다.
다음 날 아침, 사무실은 어제와는 다른 종류의 활기, 혹은 발작적인 불안감으로 술렁이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는 쉬지 않고 '정원사'의 얼굴, 혹은 그가 저지른 범죄의 이미지를 쏟아냈다. 법조계 패널들은 사건 기록을 보지도 않은 채 김민석의 사이코패스적 성향을 분석했고, 화면 하단의 실시간 댓글 창은 재판이 아닌 공개 처형을 요구하는 디지털 단두대처럼 보였다.
"국민적 분노에 기름을 부은 사법 시스템!"
"범죄자 인권이 피해자 인권보다 중요한가!"
모두가 '정원사 사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어젯밤 9시 뉴스에서 김민석이 변호사 선임을 포기했으며, 사건이 국선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그러나 가장 승산 없는 사건. 동료 변호사들의 얼굴에는 '제발 나만 아니길' 하는 이기적인 기도가 역력했다.
"권도윤 변호사님, 부장님께서 찾으십니다."
사무실 막내의 말에 모든 소음이 거짓말처럼 멎었다. 동료들의 시선이 내 등에 와서 박혔다. 동정, 안도, 그리고 약간의 조롱이 섞인 그 시선들을 애써 무시하며 부장 변호사실로 향했다. 그는 낡은 결재 서류 뒤에 얼굴을 숨긴 채, 들어오라는 말도 없이 입을 열었다.
"권 변호사, 알지? '정원사' 사건."
"...네."
"김민석이 국선 신청했어. 자네한테 배당될 거야."
그것은 질문이 아닌 통보였다. 나는 마른 입술을 혀로 축였다. 문득 10년 전, 처음 국선 변호사가 되었을 때 맡았던 첫 사건이 떠올랐다. 명백한 증거 조작으로 억울한 누명을 썼던 청년. 나는 그의 무죄를 확신했지만, 검찰의 거대한 벽 앞에서 처참히 패배했다. "당신 같은 사람 때문에 법이 욕을 먹는 거야!" 청년의 마지막 외침은 나의 심장에 영원히 박힌 상처가 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정의를 믿지 않게 되었다.
"부장님, 이 사건은..."
"알아. 이길 수 없는 싸움인 거. 그러니까 자네가 맡아줬으면 하는 거야." 부장 변호사는 서류에서 눈을 떼고 나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어떤 연민도 없었다. "권 변호사, 자네는 이런 일에 딱 맞는 사람이지. 쓸데없는 정의감으로 소란 피우지 않고, 조용히 절차를 마무리하는 것. 이건 재판이 아니야. 국가가 국민에게 보여줘야 하는 의무적인 퍼포먼스일 뿐일세. 가서 깔끔하게 연기하고 와."
그의 '의무'라는 단어는 내 냉소적인 태도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나는 법률 기술자가 아니라, 법률 장의사로 취급받고 있었다.
내 자리로 돌아와 의자에 주저앉자, 신입 국선 변호사 박수진이 다가왔다. 그녀의 눈은 밤샘으로 충혈되어 있었지만, 그 안의 빛은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선배님, 포기하실 건가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실망감이 묻어났다.
"박 변호사, 괜한 데 힘 빼지 마. 이런 사건은 시스템이 제물을 원하는 거야. 우리가 할 일은 제물이 고통스럽지 않게 목을 내밀도록 돕는 것뿐이라고."
"제물이요? 하지만 그 제물이 정말 억울한 사람일 수도 있잖아요!"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 말을 이었다. "저희 아버지도... 평생을 범죄자라는 누명을 쓰고 사셨어요. 법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빼앗겼죠. 저는 법이 얼마나 무서운 무기가 될 수 있는지 압니다. 그래서... 이런 사건일수록 더 외면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녀는 내게 자신이 밤새 정리한 파일 뭉치를 내밀었다. 경찰 기록의 허점, 증거의 모순점들이 빼곡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10년 전의 나처럼 순수한 열정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 빛이 아프게 나를 찔렀다.
나는 서류 위로, TV 화면에 나온 김민석의 얼굴을 보았다. 그의 얼굴 위로, 10년 전 그 청년의 얼굴이 겹쳐졌다. 그때 내 안에서 고개를 든 것은 정의감이 아니었다. 그것은 훨씬 더 뒤틀리고 냉소적인 감정이었다. 언론, 대중, 심지어 내 상사까지 모두가 이 이야기의 결말을 이미 써놓았다. 모두가 이 완벽한 그림에 만족하고 있었다. 바로 그 오만함이 나를 자극했다.
나는 겉옷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섰다. 박수진 변호사가 놀란 눈으로 나를 보았다.
"의뢰인을 만나러 가야지. 우리 첫 번째 회의는 구치소에서 하지."
나는 진실을 찾으러 가는 것이 아니었다. 모두가 완벽하다고 믿는 그림에, 지울 수 없는 흠집을 내러 가는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