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국선변호사입니다 (1편) - Part4

치자꽃은 밤에 핀다.

by sarihana

2부: 균열

4장: 완벽한 그림


구치소에서 돌아온 나를 맞이한 것은 산더미처럼 쌓인 사건 기록 원본이었다. 박수진 변호사는 이미 기록의 절반을 분류해 중요 부분에 포스트잇을 붙여놓았다. 그녀의 책상 위에는 밤샘 작업의 흔적인 식어버린 커피와 잔뜩 구겨진 라면 용기가 놓여 있었다. 나보다 한참 어린 그녀의 얼굴에서, 10년 전 나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열정과 순수, 그리고 현실의 거대한 벽을 아직 모르는 순진함.


"선배님, 검찰 쪽 자료, 정말 혀를 내두를 수준입니다." 그녀는 자료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까지 완벽할 수 있나 싶을 정도예요. 모든 증거가 피고인을 향하고 있습니다."


나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사무실에서 가장 큰 벽면을 가리켰다. "저기 붙어있는 낡은 판례 포스터들, 전부 떼어버려. 지금부터 저 벽은 우리의 전쟁터가 될 거야."


우리는 밤을 새워 사건의 타임라인과 증거 목록을 벽에 붙여나갔다. 한쪽에는 피해자 안희연의 사진을, 다른 쪽에는 피고인 김민석의 사진을 붙였다. 그리고 그 사이를, 검찰이 제시한 '증거'라는 이름의 붉은 실들로 엮기 시작했다. 압정 하나가 박힐 때마다 김민석의 인생 한 조각이 맥락 없이 벽에 고정되었다. 붉은 실타래가 풀리며 사실과 사실 사이를 이을 때마다, 그것은 피고인의 목을 옥죄는 핏빛 거미줄처럼 보였다.


"이게 최진혁 검사가 만든 '이야기'야." 내가 말했다. 박수진 변호사가 의아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이야기요? 이건 목격자 진술과 과학적 증거, 즉 사실(Fact) 기록이잖아요."


"아니." 나는 붉은 실 한 가닥을 손끝으로 튕기며 말했다. "지문, 발자국, 진술. 각각은 그냥 사실이야. 하지만 검사가 그것들을 선택하고, 배열하고, 이 붉은 실로 엮어 '동기'라는 제목을 붙이는 순간, 그건 사실이 아니라 '이야기(Story)'가 되는 거야. 우리의 일은 이 이야기의 허점을 찾아내고, 더 설득력 있는 다른 이야기를 만드는 거고."


나의 냉소적인 말에 그녀의 표정이 굳었다. 그녀는 진실을, 나는 이기는 이야기를 찾고 있었다. 우리의 동상이몽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순간이었다.


검찰의 이야기는 세 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첫째, 동기. 안희연의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의 진술서는 김민석을 편집증적인 집착남으로 묘사하고 있었다. "너무 전형적이야." 나는 진술서를 벽에 붙이며 중얼거렸다. "복잡한 인간 관계를 '치정'이라는 한 단어로 납작하게 눌러버리는 것. 검찰이 가장 좋아하는 손쉬운 서사지. 대중이 원하는 악마의 서사를 완벽하게 충족시켜주니까."


둘째, 기회. 사건 당일 저녁 7시부터 다음 날 새벽 4시까지, 김민석은 완벽한 알리바이 공백 상태였다. 경찰은 이 시간을 '범행 시간'으로 특정하고, 그 외의 다른 모든 가능성을 배제했다.


셋째, 증거. 와인잔의 지문, 현관문 손잡이의 쪽지문, 김민석의 운동화와 일치하는 족적. "완벽하던 놈이 왜 갑자기 이렇게 멍청한 실수를 하지?" 나는 사진을 보며 혼잣말을 했다. "'정원사'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나르시시즘으로 가득 찬 예술가야. 그는 치자꽃이라는 우아한 서명을 남기는 자이지, 이렇게 지저분한 흔적을 흘리는 아마추어가 아니야. 이건 그의 스타일이 아니야. 마치 누군가 그를 범인으로 지목하기 위해 일부러 증거를 남겨 놓은 것처럼 부자연스러워."


박수진 변호사가 완성된 '증거의 벽' 앞에서 망연자실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배님... 이건... 정말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완벽한 벽 같아요. 마치 모든 증거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한 폭의 완벽한 그림처럼 보입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압도적인 절망감이 묻어났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최진혁이 만든 그림은 완벽했다. 너무나도 완벽해서, 오히려 부자연스러웠다. 나는 벽에 붙은 수많은 증거 자료들 중, 가장 작고 눈에 띄지 않는 보고서 한 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수사 기록 맨 끝에 첨부된, 국과수의 미세 섬유 감정서였다.


"박 변호사. 세상에 완벽한 그림은 없어. 자세히 보면, 반드시 물감이 뭉치거나 엇나간 붓 자국이 있기 마련이지. 벽은, 가장 약한 벽돌 한 장부터 무너지는 거야. 우리의 싸움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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