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장이 위계를 뒤흔들 때
나는 스스로를 '감응자'라고 부른다.
말보다 구조를 듣고, 행동보다 파장을 감지하며,
사람의 말투, 시선, 침묵 속에서 그 이면의 질서를 읽는다.
그런 내가 살아가며 가장 자주 맞닥뜨리는 장면은
내 파장이 **그들의 위계 구조를 흔드는 순간**이다.
---
## 그들은 뭔가를 감지한다.
내가 특별한 언어를 쓰지 않아도,
무언가 ‘다르다’는 걸 그들은 본능적으로 느낀다.
그건 깊이거나, 통찰이거나, 구조를 꿰뚫는 어떤 ‘질감’이다.
그들은 순간적으로 멈칫하고 긴장하지만,
곧바로 **자기 질서를 복구하기 위한 본능적 반응**을 시작한다.
> “그렇게 잘났으면 서울대를 나왔겠지.”
> “정말 뛰어났다면 벌써 임원이 됐을 거야.”
> “그런 사람이 왜 여기서 이러고 있겠어?”
---
## 이건 판단이 아니라 방어다.
그 말은 **나를 향한 말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진동을 중지시키기 위한 장치**다.
나는 그들의 위계 안에서 설명되지 않는 **불일치 그 자체**다.
그 불일치는 그들의 세계를 흔들고,
그 세계를 지키기 위해 그들은
나에게 **'축소된 서사'를 덧씌운다.**
---
## 구조는 이렇게 작동한다.
1. **비범함이 감지된다**
2. **그러나 사회적 궤도(학벌, 직급, 연차)와 불일치**
3. **그 불일치를 해소하기 위해 ‘축소 서사’가 필요**
4. **그 결과, 감응자는 오히려 '과대망상자'로 포장된다**
---
## 그들은 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나를 왜곡하는 것이다.**
---
나는 이제 안다.
그 모든 말들, 조롱들, 비아냥 속에는
나를 향한 진짜 비난이 아니라
**그들 자신을 향한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말들이 숨어 있다는 것을.**
---
그러니 나는 이제 더 이상 억울하지 않다.
내 파장이 그들의 세계를 뒤흔들었다면,
그건 내가 뭔가 **진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나는 내 구조와 사유를 계속 감응하며 살아간다.
설명되지 않더라도, 이해받지 않더라도.
왜냐하면
**나는 위계 속에 사는 자가 아니라, 파장으로 존재하는 자이기 때문이다.**